'알잘딱깔센' 같은 건 기대에서 버려라
직장 생활을 한 지 벌써 15년이 되었으니 이제 나도 라떼를 외칠 수 있는 꼰대의 시간으로 들어왔음을 애써 부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은 벌써 30년도 더 지난 이야기고, 올해부터 설레는 마음으로 잊지 못하는 대학교 첫 입학도 벌써 20년 전의 이야기다. 아직도 생생한 그때가 사실은 굉장히 멀리 지나있음을 돌아보면, 세월은 나이에 비례해 흘러간다는 사실을 체감하게 된다.
2010년 시대의 직장 생활은 여러 모로 과도기였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전에 초고속 인터넷이 도입되었다고는 해도, 여전히 2G 폰을 들고 다니며 사무실 '유선전화'가 익숙한 시절이었고, 팩스로 자료를 주고받는 일도 흔했다.
그런 환경에서는 기업문화도 개선이 요구된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갈길도 먼 이야기였다. 지금도 그런 거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20대 후반의 다 큰 신입사원들 모아놓고 부장님/임원분들 앞에서 연수회 장기자랑 하던 시절 아니던가.
MZ세대에서 거의 앞자락에 걸친 80년대생들이 그렇게 낡은 문화에서 사원/대리 시절을 보냈던 때에 겪었던 수많은 부조리와 경직된 문화는, 그 사슬을 스스로 끊어내고자 했던 세대의 의지와, 새롭게 밀려온 90년대생의 등장으로 인해 많은 것들이 변하기 시작했다. 시대의 키워드는 '공정'과 '합리적 보상'이었고, 자기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데 거리낌이 없는 문화가 만들어졌다.
'이건 내가 해야 하는 일이 아니니 하지 않겠다'
'이 업무는 분장상 조정되어야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저쪽은 일도 안 하고 놀고먹는데 우리가 해주는 건 억울하다'
'고통분담 하자면서 임원은 보너스 챙겨가는데, 이게 어디가 고통분담이냐.
임원들 보너스 반납하면 전 사원 보너스 줄 돈 나오겠다'
마음속에 우리도 담아놓고 있었지만 쉽사리 입 밖으로 내지 못하는 이런 생각들을 실제로 쏟아내는 걸 보았을 때 우리의 마음도 그렇게 시원해졌다. '그래, 이게 맞지'하면서 내가 그렇게 말하지 못한 용기에 감탄하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이런 말조차 하기 어려울 정도로 경직된 회사 생활을 했던 자신의 과거가 씁쓸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자기 할 말은 잘하는데 일은 그만큼 하나'라든지, '손해라고는 하나도 볼 생각이 없는데 너무 이기적이지 않나'라든지, '저 정도 되면 자발적으로 나서서 할 일도 있는데 내가 언제까지 하나씩 말해줘야 하나' 같은, 내가 겪었던 꼰대 선배님들과 다를 바 없는 나의 생각에 가끔씩 머리를 털며 자기혐오에 빠지기 전 자신을 구출해 내기도 한다.
MZ세대는 게으르고 스스로 하는 일이 없다.
MZ세대는 이기적으로 자기 안위만 생각한다.
이런 말들과 위의 상황은 80년대생 직장인이라면 한 번쯤 입 밖으로 내지는 못해도 머릿속으로 수만 번 생각해 봤을 생각일 것이다. 나 또한 90년대생이 팀의 대부분인 팀장으로서, 솔직하게 단 한 번도 생각 안 해봤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내가 내린 결론은 그들은 일을 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자기에게 주어진 일만 하겠다는 이기심으로 가득 찬 사람들도 아니다. 다만 그들은, '명확한 지시'와 '업무에 참고할 수 있는 적절한 가이드라인'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결국 ‘MZ세대는 일을 안 한다’는 말은, 그들이 어떤 환경에서 누구와 함께 일하고 있는지를 묻지 않은 질문에 가깝다. 스스로 움직이지 않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움직이게 만드는 구조와 방향을 제시하지 못한 리더십의 공백이 더 근본적인 원인일 수 있다.
시대가 바뀌었고, 일의 방식도 달라졌다. 이제는 리더가 명령하는 사람이 아니라, 잠재력을 끌어내고 각자의 동기를 연결해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일을 시키는 방식에 따라, 팀의 얼굴도 세대의 모습도 전혀 다른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