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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 바로, Blooming Season

by 알펜


매일 쓰기 팀의 이번 주 과제는 <당신이 가장 아름다운 때를 보여주세요.>였다.

곰곰이 머릿속을 뒤적여봤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결론은 하나다.


Present


항상 나에게 찬란하게 빛나는 계절은 현재다.

지구라는 땅에 두 발을 단단하게 딛고 서서 주위를 살펴보는 성향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렸을 적, 해가 서쪽으로 넘어가고 자줏빛 노을이 그림자를 드리우면, 마음이 슬퍼졌다. 평소에는 황토색으로 뒤덮인 지면이 화사한 분홍빛으로 반사되는데도, 그걸 보는 나는 내일이 두려워 가슴을 웅크렸다.


기억이라는 것은, 어쩌면, 애써 지우려 하면 지워질 수도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다행이다. 안 좋았던 기억들은 종이가 누렇게 변하듯이 퇴색해서 선명하던 몸체를 잃어버렸으니까.


외로움으로 가득 찼던 과거를 김장독을 묻듯이 땅속에 꾹꾹 묻은 채 항상 현재를 바라본다. 한 시간, 일분, 일초, 째깍이며 지나가는 지금 이 순간을.


그래서, IF 가정법이 힘들다.

과거에 네가 이것 말고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땠을 것 같아?


이런 질문을 들으면, 대답하는 데 애를 먹는다.

나는 지금 현재를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데, 과거에 다른 선택을 했다는 가정을 왜 해야 하는 건지 MBTI 중 대문자 S를 가지고 있는 나는, 의문을 느낀다. "만약"이라는 단어가, 마법을 부려서 정말 무언가를 "다시" 선택하게 해주지 않는 한.


내 인생 짝꿍은, 그 짧은 "만약"이라는 가정이 주는 특별한 만족감이 존재한다고 했다. 월요일에 로또를 사서 토요일에 결과를 기다리는 그 기간 동안이 그래서 행복하다고 했다. 수많은 꽃이 피어오르듯 생겨나는 결괏값에 현재의 힘든 일을 버틸 수 있는 힘을 주니, 5000원이라는 커피 한 잔의 값이 아깝지 않다고.

각자의 인생을 바라보는 시선 속에 자리한 각도가 달랐다. 발목에 매어진 무게를 지고 가는 방법이 조금 달랐다. 그 사이 존재하는 교차점에서 우리는 서로를 지지하고 있는 거겠지만 말이다.


20대 때는 찬란한 젊음이 있었던 대신, 어리숙함과 미래에 대한 불안이 삶을 삼켜왔었고, 30대는 건강함과 활기가 있었지만, 내 손길을 필요로 하는 아가들을 등에 업은 채 시간을 건너왔다.

40대인 차분해진 현실이 있지만, 노안이 오는 듯한 두 눈과, 잘려나간 난소로 인한 급성 갱년기, 삶을 마무리할 시기가 도래한 부모님으로 채워지고 있다.


어느 순간에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빛났다고 생각한다.

20대 때는 그 젊음으로, 반짝이는 눈으로 세상을 휘저었으며, 30대는 아가들의 보송보송한 솜털을 내 볼에 비비면서 행복감을 느꼈고, 40대인 지금은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운동을 하고, 오롯한 내 삶을 살아가고 있으니까.



andrew-small-EfhCUc_fjrU-unsplash.jpg 사진: Unsplash의Andrew Small


매해, 매시간, 매 순간 속삭인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인생을 반들반들 윤이 나게 닦아보자고.

화려하게 돋보이지 않아도, 광채가 번뜩이지 않아도 그래도 괜찮다고.


푸른 계절이 돌아오는 그 시기에, 할 수만 있다면, 다시 하늘로 돌아가자고.

천상병 시인의 시처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해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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