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uring. 내 일은 회계
하나, 둘, 셋.
1.2.3.4.5.
조판의 부호는 간단하다. 언제나. 그렇듯이.
다만, 하나 이상의 숫자가 사칙연산을 하려고 나란히 줄 서기를 할 때, 뇌의 혈관이 막히는 느낌이랄까. 사실, 이런 표현을 쓰는 것도 두렵다. 실제적으로 혈관이 막힐 나이가 되었기 때문에. (웃사~, 내 혈관은 팽팽 흐르고 있다. 팽팽 흐르고 있다.) 속으로 자기 암시적인 말이라도 몇 번 뱉어내야 한다. 정말 무서우니까.
4,763,827,394,000
343,438,823,938,000
3,724,000,000,000,000
그래요. 저도 글을 그만 쓰고 싶어지네요. 저 많은 0이 포함된 아라비아 숫자들. 저 쉼표는 3개마다 한 번씩 찍어줘야 한다.(쉼표 안 찍은 거 있다고 상사에게 한번 깨진 건 안 비밀.)
숫자에 밝은 사람들은 바로 얼마인지 읽어내린다. 나 같은 사람은 매번 똑같다. 뒤에서부터 일십백천만 십만 백만 천만...... 매번, 이렇게 읽어 올라간다. 도대체 얼마인지 알 수가 없어서.
한 번은 전화상으로 상대방이 얼마냐,라고 물었을 때, 삼천이백오십만 원입니다를 하지 못해서, 마음이 급해진 나는 “삼이 오 땡땡 땡땡이에요.”라고 숫자를 그대로 읽어준 적도 있다.
스스로 방긋 웃었다.
울 수는 없으니까.
세상에서 “산수”가 제일 싫고, 수능에서도 수학은 죄다 찍었는데 사무실에서의 내 일은 숫자다. 실제적으론 집행을 주로 한다지만, 각종 자료를 내라는 문서가 턱턱, 떨어질 때마다 머리를 쥐어짜게 된다.
여기 이 숫자가 맞나?
0은 안 틀렸나?
1000 단위 쉼표는 잘 들어갔나?
아니, 이건 억 단위로 쓰라는 건가? 이건 왜 천 단위야?
오류가 난 숫자는 없나?
합이 틀리거나 하진 않았겠지?
몇 프로라는 거지?
분명하다.
확실하다.
이 자리에 배치되고 나서 흰머리가 열다섯 가락쯤은 자랐을 테고, 주름은 최소 3개쯤은 더 굵어졌을 거다.
빅 픽처를 그려본다.
곧 인사 시즌이니까. 저쪽 구석 자리로 어떻게든 옮겨야겠다고. 바로 무릎 꿇을 각오도 되어있다고.
내 얼굴보다 크고, 색이 선명한 계산기를 타타타 두드렸다.
어쨌든, 일은 마무리를 지어야 하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