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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어를 겹치자, 반짝반짝 빛나도록.

by 알펜


ann-savchenko-H0h_89iFsWs-unsplash (1).jpg 사진: Unsplash의Ann Savchenko

한창 자신만의 홈페이지를 만드는 게 유행인 시절이 있었다. 네이버가 정형화된 블로그 툴을 제공하기 전에 html을 만지면서 개성 있는 나만의 주소를 가진 인터넷 홈페이지를 가꾸는 시절이 있었다.



화살표로 나오는 마우스 표시를 대신해서 반짝이는 마술봉을 만들어서 배포하기도 하고, 새로운 색감을 찾아 홈페이지 꾸미기에 열중했다. 홈페이지를 더 멋지게 꾸미려면 포토샵과 일러스트레이터를 배우는 게 필수였다. 포토샵 강의를 찾아 인터넷을 검색하고, 즐겨찾기를 하고 짬을 내어 하나하나 배워서 적용했다.



포토샵을 다루다 보면 멋진 사진을 만들기 위한 과정이 있다. 기본 바탕 사진을 하나 깔고, 그 위에 새로운 창을 깐다. 그걸 레이어라 부른다. 한 겹 두 겹 레이어를 깔면서 작업을 진행해야 한다. 레이어에는 글자를 쓰기도 하고, 새로운 사진을 얹어 투명도를 조절하기도 하면서 전체적인 결괏값을 만들어 간다. 모든 작업이 끝나면 여러 겹으로 쌓인 레이어를 하나로 통합한다. 그러면 처음에는 단순했던 사진이 완전히 다른 작품으로 탈바꿈해서 하나의 완전한 이미지로 보인다.



사실 나는 조그만 웹소설을 쓴다. 소위 “지망생”이다. 창조력이 뛰어나다거나, 구성력이 탁월하다거나 하는 천재적인 지망생은 아직 아니다. 꾸역꾸역 쓰다가 멈춘 글들도 있고, 간신히 짧게 완성한 웹소설도 있다. 상반기 목표 중 하나는 10만 자 정도로 소설을 완결하기였다. 출판하기에는 아직 부족한 글을 경력 삼아 무료 연재 사이트에 올린다.



연재를 하다 보면 내 글이 시장에 어느 정도의 반응을 얻는지 적나라하게 알 수 있다. 그래. 망했다. 선작수도 별로 없고 조회수도 별로 없는 소위 “심해작”이다. 중반까지 글을 올리면서 그런 소설을 쓰는 나 자신에게 자괴감이 많이 들었다.



누가 보지도 않는데 이걸 굳이 쓸 필요가 있을까.
나만 재밌는 글을 올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만 쓸까?




몇 번의 위기가 찾아왔다. 포기하고 싶고, 그만 쓰고 싶고, 재능이 없다고 여겨지고 열등감이 들었다. 그런 마음을 꾸역꾸역 보따리에 담아서 등에 짊어졌다. 이왕 하기로 한 거 완결까지는 한번 해보자고 마음을 다잡으면서.



완결은 초고가 아니었다. 맨 처음 초고를 쓰고, 다시 그 원고를 다듬고, 완결까지 전체적인 내용을 몇 번이나 고쳐야 했다. 그렇게 다듬어도 재미있고 반응이 좋은 글을 쓰기란 요원했다. 완결까지 달려가는 길이 손끝에 거스러미가 난 것처럼 고단했다. 그런데도 완결을 지었다. 15만 자로 대략 기승전결을 마무리 짓고 마지막 글을 감사 인사와 함께 연재처에 올렸다. 울컥거리는 마음을 조금 눌렀다.



매일매일을 열심히 살다 보면 눈처럼 차곡차곡 시간이 쌓일 테다. 뭉툭하고 단조롭고, 어딘가 거친 얇은 장면들이 나도 모르게 겹겹이 누적되겠지. 얇은 장면이 한 겹 두 겹 모이면 내 삶이 총체적으로 완성이 되는 날이 다가올 것이다. 언젠가는 내 레이어의 도합이 청남색과 자줏빛이 한데 섞인 찬란한 노을처럼 아름답길 기대한다. 어그러지고 빗금처럼 얼룩진 곳도 전체로 보면 아름다운 장면 중 하나가 될 테니까. 내 삶도, 이 글을 읽는 당신의 삶도 꼭 그러하기를.






#베스트셀러작가가되고싶어

#내글에도댓글이많이달렸으면

#레이어를겹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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