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를 보호하는 일은 버거운 과제였지만, 아빠를 보호할 때만 나는 인간의 지위를 얻었다.
아빠의 아빠가 됐다 中 조기현
짬짬이 시간을 내서 읽는 책 중에 조기현 작가님의 글이 인용되어 있었다. 직접적으로 글을 읽은 건 아니지만, 읽는 순간 눈물이 엉켰다. 심장에 상처가 나는 걸 모르니, 대신해 눈물을 흘린다는 말을 읽는 적이 있다. 아마도 아빠의 아빠가 됐다는 저 제목은 제 부모를 떠나보내기까지 쉽지 않은 길을 겪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건드렸을 거다.
아는 분이 추천을 해 준 책이 있다. 상당히 좋은 책이지만 내용이 쉽지는 않다는 첨언과 그래도 읽고 나면 새로이 정립되는 지식을 머릿속에 넣을 수 있다는 말이 인상적이어서 당장 온라인 서점에 주문을 넣었다.
《사람, 장소, 환대》 김현경 저
에세이나 가벼운 책을 주로 읽던 나는 프롤로그인 그림자를 판 사나이에서 쭈뼛거렸다가, 제1장인 사람의 개념을 읽어내리는 데 여느 책보다 배의 시간을 보냈다. 결국은 적당히 책에 띠지를 붙이고 책상 한쪽에 밀어두었다. 언젠가 다시 읽어야겠다는 이루어지지 않을 계획만을 잡으면서.
그러다가 조기현 작가님의 글을 읽고 다시 책을 열어보게 되었다. 반드시 완독하리라는 결심과 함께. 완전한 이해를 추구하지도 않고, 조금이라도 어느 부분이라도 내게 들어오면 그걸로 족하다는 마음을 가졌다.
네가 사람이냐?
드라마에서 인간 말종에게 주로 발화되는 대화체의 문장이다. 종종 주변인들에게도 미간을 찌푸리며 말할 때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경우는 없길 바란다. 사람이지 않은 인간이 주변에 있다는 건 포화 맞은 전쟁의 한가운데처럼 주변이 바스러진 경우가 많을 테니까.
즉 사람임은 일종의 자격이며, 타인의 인정을 필요로 한다. 이것이 사람과 인간의 다른 점이다. 이 두 단어는 종종 혼용되지만, 그 외연과 내포가 결코 같지 않다. 인간이라는 것은 자연적 사실의 문제이지, 사회적 인정의 문제가 아니다....중략... 어떤 개체가 인간이라면, 그 개체는 우리와의 관계 바깥에서도 인간일 것이다. 즉 우리가 그것을 보기 전에도, 이름을 부르기 전에도 그 고유한 특성에 의해 이미 인간일 것이다...중략.. 반면에 어떤 개체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사회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사회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어야 하며, 그에게 자리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사람, 장소, 환대 中 김현경 저
- 아빠를 보호하는 일은 버거운 과제였지만, 아빠를 보호할 때만 나는 인간의 지위를 얻었다.
아마도 저 문장의 “인간”은 구태여 따지자면, “사람”일 테다. 병상에 누운 부모를, 아이를 또는 누군가를 돌보는 일은 힘에 겨운 일이다. 발걸음을 떼거나 외면하는 일이 만연하다. 어디까지 내가 할 수 있을지를 가늠하는 것조차도 쉽지 않다.
인간인 나는 사람의 자격이 있는가.
인간인 나는 사람의 자격을 갖출만한 양심의 크기를 지니고 있는가.
인간이 되고 싶었던 곰이 어두컴컴한 동굴 속에서 쑥과 마늘을 먹고 고통을 삼켰듯이, 인간인 나는 사람이 되기 위해 어디까지 감내할 수 있는가.
끝없이 내 양심의 범위를 건드린다. 어디까지, 얼마까지 갈 수 있느냐고 물어오듯이. 너는, 인간이라는 개체 중의 하나인 너는, 과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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