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그만 끝낼까 해> 그리고 언니네 이발관
어젯밤 넷플릭스에서 찰리 카프먼의 <이제 그만 끝낼까 해>를 보았다. 영화는 '걸프렌드(제시 버클리)'가 남자 친구 제이크(제시 플레몬스)의 부모님 집에 초대받아서 자동차 여행을 하면서 벌어지는 하루를 그린다. 영화 초반부터 걸프렌드는 제이크와 이별을 할지 고민하면서 오만가지 생각을 하는데 이를 알고 있는 건 관객들 뿐이다. 영화에서 자아와 타아의 시점의 이동은 명확하게 분절되지 않고, 시간이 흐르는 방향 또한 두서없고 혼란스럽다. 걸프렌드의 시선을 통해서 제이크의 부모뿐 아니라 그의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의 기억을 회상하면서 제이크를 둘러싼 음습하고 불길한 세계, 즉 제이크라는 존재 자체를 탈출해야만 하는 이유는 점차 명확하고 절박해진다. 그를 떠날 수 없다는 사실 자체가 극도의 공포를 유발할 만큼 제이크에 대한 설명할 수 없는 '이것들(things)'은 불쾌감과 역겨움마저 자아낸다.
영화를 보면서 몇 가지 노래가 떠올랐다. 그중에서도 선우정아의 <당신을 파괴하는 순간>과 언니네 이발관 5집 <가장 보통의 존재> 앨범 전곡. 먼저 <당신을 파괴하는 순간>은 이별을 당한 경험을 갖고 있던 아티스트가 이별을 고하는 상대의 마음을 헤아려보면서 쓴 노래이다. (선우정아는 그때의 경험을 승화해서 이 명곡을 남기고 당시 상대와는 결혼을 했다고 한다. 남편분은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쫄리겠지?) 따라서 노래하는 화자는 이별을 고하는 자와 당하는 자의 마음이 동시에 표현된 복잡 미묘하고 양면적인 감정을 전달한다. 상대방의 시점으로 이동하여, 나 자신이 얼마나 지긋지긋하며 짐이 되는 존재인지 역으로 느껴보는 이 곡은 잔인할 정도로 스스로에 대한 확인 사살이다.
태생적으로 천재가 아닌 보통의 존재인 사람들은 수많은 족속(genus)으로 나뉜다. 그중에서도 마이너한 부류의 족속들이 있다. 이들은 가끔 서로를 알아보기도 하고, 같은 족으로 엮일까 봐 일부러 서로를 외면하기도 한다. 사랑에 있어서 그들은 만나는 상대에게 푹 빠져서는 상대를 이상화하는 동시에 불안감도 느낀다. 초반에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상대의 마음을 의심하기도 하며, 관계가 무르익으면 내가 자라고 익숙한 환경이 상대에게 불편하고 이상하게 보이지는 않을지 수도 없이 시뮬레이션해본다. 세속적인 기준에서 내가 이렇게 잘 나가는 사람이었다면 어땠을까? 그(녀)가 나를 더 좋아했을까?라는 쓸모없는 상상도 한다.
천재도 수재도 못 되는 사람들은 내면의 열등감을 특이한 행동과 취향, 그리고 선택을 통해 특별함으로 포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정량적인 잣대를 들이밀었을 때 결코 당당하게 자랑할 수 있는 자식, 애인, 배우자가 못 되는 것이 현실이며, 이들은 툴툴거리며 그런 현실을 받아들인다. '지너스'를 '지니어스'라고 착각하는 엄마에게 제이크가 짜증을 부리면서 정정해 주는 마음이랄까.
망상의 종착점은 언제나 익숙하고 안락한 고독의 공간, 제이크에게는 고등학교 같은 곳이다. 이들은 누군가와의 미래를 망상하는 것은 어느 순간 멈춘다. 그렇게 나만의 이상한 세계로 타인을 초대하고, 좀 더 내밀한 것을 공유하는 것을 그만둔다. 상대가 그동안 왜 내 제안을 부담스러워했는지 그제야 이해한다. 내 족속에 어떤 매력이나 이점을 발견하고 있든, 아니면 그저 관성적으로든, 아직은 떠나기 전의 유보 상태라는 것에 만족한다. 그러다 그도 내 부모마저도 모두 나를 떠나고 나면 쓸쓸하고 이상한 혼자만의 세계에서 고독히 늙어갈 수밖에 없음을 잘 안다. 쓰레기통 안에 수없이 쌓여가는 오레오 아이스크림처럼, 시뮬레이션을 통해 수없이 예비 연습을 하고 사전에 받아들이니 그제야 따뜻한 안도감이 밀려든다.
이석원은 '이런 이런 큰일이다 너를 마음에 둔 게'라고 노래했다. 나는 살면서 숱하게, 어딘가 특별하고 잘난 구석이 있는 사람들에게 순간적으로 반하기도 했다. 그러한 호감은 반짝하고 사라질 때도 있었다. 그런데 이들과 대부분 이어지지 않은 것은 그 사람들의 눈에 내가 대수롭지 않은 보통의 존재로 여겨졌기 때문이리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케치북에 'To me, you are perfect'까지는 아니더라도 'To me, you are special'이라고 쓴 채로 눈길을 헤치고 찾아올 누군가를 늘 기다렸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을 스케치북처럼 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런 건 애초에 없었다. 나는 여전히 상대가 나를 사랑해야 할 이유보다도 떠나야 할 이유를 찾는 것에 더 익숙하다. 자기애와 자기혐오가 뒤범벅된 채로 벌이는 망상 여행/파티도 언젠가는 끝날 것이다. 내가 평생 곁에 함께할 누군가를 찾거나 끝내 찾지 못한 어느 순간에, 밤새 퍼부은 눈이 어느새 그쳐 있듯이 말이다.
보통이거나 보통의 존재가 되고 싶은 사람들이, 이들의 심정에 대해 절절히 말하는 비범한 영화를 보고 비범한 노래들을 들으면서 위안을 받는 것은 역설적이다. 그러나 우리 눈에 대단해 보이는 이들마저도 살아가면서 무언가 일이 잘 안 풀리기도 하고, 여러 의미에서 보통의 존재로 전락하는 불안감을 느껴보았기에 그렇게 노래할 수 있으려니 짐작할 뿐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토록 감정을 디테일하게 쌓아 올릴 수 없었을 것이다...) 내가 지금 제이크라는 사람에 대해 심리묘사를 꽤나 자세히 할 수 있었던 것도, 안타깝지만 내가 그의 속내를 잘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식탁에서 불안하게 안절부절못하는 모습도, 영화를 열심히 보고 나름대로 잘 떠들다가도 더 높은 식견을 자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꼼짝도 못 하는 시무룩한 얼굴조차도 어딘가 내 모습과 닮아 익숙했다.
이 때문에 순수하게 걸프렌드의 시점으로 볼 때 제이크의 집은 이질적이고 음울하고 위협적으로까지 느껴졌지만 어느 순간 그 이질감이 모두 깨지는 순간이 온다. 제이크는 나조차도 탈출하고 싶은 나 자신이다. 어젯밤 영화를 보고 나서, 스스로에 대해 자조적인 글을 쓰지 않기 위해 이런저런 노래를 듣다가 곧장 잠이 들었다. 그래서 과연 성공했는지는 모르겠다. 마치기 전에, 이제는 은퇴한 그분들의 노래 가사를 다시 한번 곱씹어본다.
당신을 애처로이 떠나보내고
내가 온 별에선 연락이 온 지 너무 오래되었지
아무도 찾지 않고 어떤 일도 생기지 않을 것을 바라며
살아온 내가 어느 날 속삭였지 나도 모르게
이런 이런 큰일이다 너를 마음에 둔 게
당신을 애처로이 떠나보내고
그대의 별에선 연락이 온 지 너무 오래되었지
너는 내가 흘린 만큼의 눈물
나는 니가 웃은 만큼의 웃음
무슨 서운하긴, 다 길 따라 가기 마련이지만
그래도 먼저 손 내밀어 주길 나는 바랬지
나에겐 넌 너무나 먼 길
너에게 난 스며든 빛
이곳에서 우린 연락도 없는 곳을 바라 보았지
이런 이런 큰일이다 너를 마음에 둔게
평범한 신분으로 여기 보내져
보통의 존재로 살아온 지도 이젠 오래되었지
그동안 길따라 다니며 만난 많은 사람들
다가와 내게 손 내밀어 주었지 나를 모른채
나에게 넌 허무한 별빛
너에게 난 잊혀진 길
이곳에서 우린 변하지 않을 것을 약속했었지
이런 이런 큰일이다 너를 마음에 둔게
이런 이런 큰일이다 나를 너에게 준게
나에게 넌 너무나 먼 길
너에게 난 스며든 빛
언제였나 너는 영원히 꿈속으로 떠나버렸지
나는 보통의 존재 어디에나 흔하지
당신의 기억 속에 남겨질 수 없었지
가장 보통의 존재 별로 쓸모는 없지
나를 부르는 소리 들려오지 않았지
언니네 이발관 5집 <가장 보통의 존재> 중 <가장 보통의 존재>
2021년 1월 10일 씀.
이미지 출처
https://screen-queens.com/2020/09/18/everything-is-nothing-in-im-thinking-of-ending-things/
https://www.thrillist.com/entertainment/nation/im-thinking-of-ending-things-ending-explained-book-oklahoma
https://www.shethepeople.tv/film-theatre/im-thinking-of-ending-things-review-charlie-kauf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