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케이션 전문가, Karen Koo
누군가의 이야기를 귀기울여 들음에 있어 때로 그가 누구인가, 그가 어떠한 경험을 하였는가가 굉장히 중요한 경청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이에 PR, 그리고 기업 브랜딩 등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기에 앞서 자신에 대한 간단한 소개로 개인 블로그를 시작하겠다
구기향 아름다움을 가진 사람이 되라는 의미로 아버지께서 지어주신 이름이다. 같은 이름을 마주치기 어려울 정도로 특이하다. 어린 시절에는 주변 친구들의 유치한 말장난이 반복돼 특이한 이름이 갖는다는 것은 좋지 않은 일이라 생각한 적도 있다. 하지만 점차 나이를 먹고 여러 사회적 활동을 할 수록 그 흔치 않음이 또 하나의 무기이고 무게임을 배웠다.
Karen Koo 12년 전 새롭게 사용하기 시작한 또 하나의 이름. 외국계 기업에서 업무를 시작하면서 활용키 시작했다. 외국계 기업에서는 세계 각 지역의 오피스 간 협업이 많고, 외부 파트너 또한 다양한 국적인 경우가 많아 영어를 공통어로 상호 소통하는 경우가 많은데… 때로 한국어 이름 그대로를 외국인 동료들이 쓰거나 발음하기 쉽지 않아해 보다 효율적인 소통을 위해 영문 이름을 병행 사용했다.
신문방송학/경영학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 경영학은 부전공했다. 본인은 사실 어린시절, 주변의 어른이나 선생님께서 장래희망이 무엇이냐 물으시면 “아직 생각 중입니다”라고 답했다. 나의 강점은 무엇이며,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이고… 그것이 내 직업, 일이 되었을 때 하루 종일 피아노를 쳐도, 과학 실험을 하여도 진짜 즐거울까…까지 고민해 장래희망을 정해야 한다 생각했던, 다소 복잡한 사고를 가진 아이였다. 그리고 창의적이면서도 현실적인 효용, 사회적 가치도 놓치기 싫다는 모순적 바람 끝에 찾은 답이 신문방송학이었다. 전공, 부전공을 통해 공부한 내용과 대학 시절의 경험들은 나의 소중한 기반 중 하나다. 하지만 돌이켜보니 꼭 개인의 학력, 전공이 직업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기도 했다. 나 역시도 전공 공부 중 ‘홍보학’은 오히려 관심 밖이었다. 어쩌다 홍보의 영역에 발을 들이게 되었는지 이는 후일 따로 이야기를 풀어내겠다.
NEXON 2003년 12월 스노우보드를 타며 신입사원 교육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2004년 1월부터 온라인 게임 개발 및 서비스사 <넥슨> 에서 약 6년 간 근무했다. 게임, 기업에 대한 홍보 및 사회환원 사업 개발, 진행 등의 영역을 맡았으며 사회 초년생임에도 초반부터 굵직한 기회와 역할을 많이 맡았다. 일명 국민게임이라 불리우는 <카트라이더> 런칭과 5–6년 간의 서비스에 대한 홍보, 또 하나의 장수 온라인 게임 <메이플스토리>에 대한 홍보 등을 홀로 꽤 오랜 시간 담당했다. E스포츠에 대한 고민과 홍보 또한 당시 시작했다. 또 넥슨의 사회환원 사업의 초석이 된 완치 아동에 대한 후원 행사를 기획, 규모를 점진적으로 키워냈다.
SK Communications 2009년 여름부터는 SK커뮤니케이션즈에서 SNS <싸이월드> 및 인스턴트 메신저 서비스 <네이트온>, 그리고 검색 엔진 <네이트> 홍보를 두루 맡았다.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등 새로운 흐름의 등장에도 흔들리지 않기 위한 홍보에 노하우가 쌓였던 시기다. 특히 2011년 7월 발생했던 네이트, 싸이월드 회원 3,500만 명의 개인정보 유출 사건에 대한 대응은 본인으로서도 역대급 위기관리 대응 경험이었다. 전국의 인터넷 사용자 인구가 3,700만 명이던 시절… 제 3자 정보 제공 등의 마케팅 활용조차 전혀 하지 않던… 그저 갖고만 있던 3,500만 회원들의 개인정보가 유출됐던 사건. 또 겪고 싶은 경험은 아니지만, 실로 배운 것이 많았던 또 돌이켜보면 그것이 최선의 대응이었다 싶은 사건이다. 이 또한 나중에 블로그에서 다루겠다.
Riot Games 2012년 2월 하순 조인한 회사다. 사실 라이엇 게임즈는 2011년 6월 한국에 작은 오피스를 세우고, 그 해 12월부터 이 회사의 대표작이자 유일작이었던 <리그 오브 레전드>의 한국 서비스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 게임 서비스 시작 한참 전부터 본인에게 한국 오피스 합류를 제안했다. 개인적으로 북미 서버에 접속해 먼저 즐겨볼 정도로 게임은 참 재미있었고, 오피스의 초창기 인원들은 반짝여 보였지만 총 인원 30여 명 남짓에 이제 막 지역 서비스를 시작한 라이엇 게임즈로의 이직 결정은 쉽지 않았다. 허나 인연은 돌아 돌아 다시 만들어지기도 하는 것. 2012년 초 라이엇 게임즈의 첫 한국 오피스 지사장을 다시 뵙는 자리가 마련됐고, 그와의 대화는 확신을 줬다. 그 후 12년 2개월을 이 회사에 몸 담았다. 조직을 갖추고 PR의 방향성을 세우는 것부터, 프로 플레이어들에 대한 미디어 트레이닝 등 완전히 초석을 다지는 것부터 시작했다. 시간이 갈수록 전략적인 메시징, 고도화된 미디어 활용 등 고민의 범위와 깊이가 증폭됐다.
구체적으로는 LoL, LoL Esports에 대한 홍보부터 <발로란트> 등 신작 PR, <아케인> 등 IP콘텐츠 PR, CI, PI, 기업 브랜딩 그리고 일명 <문화재 지킴이>로 알려진, 더 없이 영리하고 성공적이라 평가되는 해당사의 사회환원 사업 기획부터 10여 년간의 진행 등을 모두 이끌었다.
PR, 브랜딩의 영역은 경험할 수록 무한하다. 이미지와 콘텐츠의 시대가 깊어질 수록 이는 더욱 자명하다.
본 블로그를 통해 PR, 기업 브랜딩의 이모저모를 특히 본인이 경험한 실제적 사례와 느낀 바 등을 나눠보고자 한다. 홍보, 게임 업계 외 디지털 콘텐츠, 사회환원 사업에 대한 고민 등 연계된 영역, 본인의 관심 영역에 대해서도. 적어도 2주 1회 이상의 글을 업데이트하자, 스스로 다짐한다. 누군가에게는 재미가, 누군가에게는 영감이, 또 누군가에게는 지침이 될 수 있는 부분이 있기를 바란다.
많은 관심을 부탁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