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따운 우리 한복展 - 대망의 프로젝트 공개
<12화에서 계속>
코로나19로 인해 오프라인 전시가 불가하다니...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코로나19 심화로 인해 LCK(League of Legends Champions Korea, LoL게임으로 운영하는 한국 프로리그)조차 경기장에서의 경기 진행이 어려울 정도였기에 롤파크에서의 전시를 우겨볼 여지가 없었다.
물론 시일이 지나면 상황이 나아질 수도 있겠지만... 그러한 불확실성에 기대 전시를 기획하기는 무리였다. 이에 어떻게 하면 제작된 2벌의 한복과 한국화 2점을 최고로 아름답게 보여드릴 수 있을까.. 고민하고 준비하던 전시 부스 계획 등은 전면 중단했다. 한복 2벌과 한국화는 이미 제작의 최종 단계에 오르고 있었기에, 시일을 두고 작품 마무리를 강행키로 했다.
가만히 앉아 고민했다. 봄부터 준비한 프로젝트. 수개월에 거쳐 수십 번의 미팅과 다큐멘터리 촬영까지 겸해 준비한 작품들을 우리 게임 플레이어와 대중 앞에 선보일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한복의 아름다움을 보여 드리기에, 각각의 작품에 대한 자부심과 자신감은 충분했다.
대안은 온라인 전시라 생각했다. 코로나19 상황이 나아지길 막연히 기다리기보단, 풍성한 볼거리와 금번 프로젝트의 의도, 숨은 의미 등을 담아 온라인상에 별도의 페이지를 꾸리는 형태로 가기로 했다. 제작된 작품들을 전문 스튜디오를 통해 한 점, 한 점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촬영하고 그간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다큐멘터리 영상까지 더한다면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하지만 뭔가 임팩트가 부족한데...라는 생각이 자꾸만 뒷덜미를 잡았다.
"무언가"를 더해내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는 와중에, 온라인 전시 이름부터 지었다. LoL 한국 서비스 런칭을 기념하여 글로벌 서비스 내 첫 등장한 여성 캐릭터 <아리>. 그녀의 이름은 게임 플레이어들이 투표를 통해지어 준 특별한 이름이기도 했다. 하여 금번 한복전시의 이름을 고심하던 중 <아리땁다>는 우리 표현에 중의적으로 캐릭터의 이름을 반영해 넣어 <‘아리’따운 우리 한복展>으로 소개하면 좋겠구나 무릎을 쳤다. 영문으로의 표현 또한 로컬라이제이션 팀과 논의해 Be'ahri'ful Exhibition으로 정했다. 아리(Ahri)의 이름을 Beautiful이라는 표현에 녹여냈다. 후일 전시가 공개된 뒤 한글 또 영문으로의 전시 이름을 너무 멋들어지게 잘 지었다는 평을 많이 들었는데 그럴 때마다 엄청나게 뿌듯했다. 집에 누워 끙끙 대며 고심하던 나에게 멋진 전시 이름을 위해 아낌없이 아이디어를 함께 고민하고 나눠 준 남편에게도 또 한 번 감사한 대목이기도.
온라인을 통해 제작 한복과 한국화를 공개하는 데 "임팩트"를 더할 방법이 묘연했다. 자다가도 일어나 앉아 생각하기를 반복했다. 곧잘 이러다 보면 엉뚱한 생각이 해답을 만들기도 하는데... 이번에도 그랬다.
바로 "의상의 아름다움을 전할 가장 좋은 방법은 전시, 패션쇼 아니면 바로 화보 아니겠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언젠가 패션 매거진의 화보 중 할머니들께서 한복을 입으신 모습을 담은 화보가 참 멋지게 기억에 남았던 적이 있었는데... 이것이 같이 떠올랐다. 그렇지, 한복 화보를 추진해야겠다!! 패션 매거진들 중 내 기억 속 한복 화보를 제작했던 곳을 찾았다. 보그 코리아였다. 2020년 9월, 패션 매거진 보그(VOGUE) 코리아에서 '희망'이라는 주제로 순, 곡성, 담양에 거주하는 100세 전후의 할머니들에 대한 기획 화보를 진행했던 건이었다. 우리에게 희망은 어떤 모습일지 고민했다며, 100세 전후 할머니들을 담아봤다는 해당 화보는 꽃 같은 세월은 아니지만 꽃처럼 피어 계신 할머니에게 희망이 보이지 않는가... 라며 다양한 컬러와 패턴의 한복을 입고 계신 할머니들을 담아내 그야말로 "참 고왔다".
이곳이라면 우리 한복의 아름다움을 전하기 위해 글로벌 온라인 게임사와 무형문화유산 선생님들 그리고 한국화 작가가 맞손을 잡은 이번 프로젝트에 대해 이해해 주지 않을까, 기대가 생겼다. 그래서 그날로 바로 홍보 에이전시 인원들과 함께 보그 코리아에 측에 대화를 걸기 시작했다.
사실 패션 매거진과 게임사, 온라인 게임 간에는 평소 큰 연결고리가 없는 편. 하지만 평소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와 그 E스포츠에 대해 이해와 관심을 갖고 있던 에디터를 비롯해 보그 코리아 측에서도 한복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다소 이색적이고 희한한 본 프로젝트에 관심을 주는 이들이 있었다. 와우! 결국 진심은 통하기 마련. 무형문화유산 선생님들과 함께 제작한 여성 한복 1벌, 남성 한복 1벌을 입은 모델들의 모습을 멋들어진 패션 화보로 담아내기로 마음을 모았다. 이후에는 기획 화보의 주제와 콘셉트를 정하는 부분부터, 제작 한복을 소화할 남성/ 여성 모델 선정까지 일사천리로 진행했다. 모델 선정 뒤에는 이들이 본 화보의 콘셉트와, 이 화보를 진행하게 된 배경 등을 이해한다면 훨씬 좋겠다는 생각에 라이엇 서울 오피스로 이들을 초대해 한참의 설명을 더하기도 했다.
그리하여 탄생된 것이 바로 아래의 아름다운 화보 컷들이다. 청담동에 위치한 스튜디오에 찾아가 소품 하나하나에 대해 직접 의견을 더했고... 화보 속 색감을 극대화하기 위해 색 조명 활용 등 여러 가지를 함께 논했다. 하다못해 무형문화유산 선생님들께서 제작하여 전달해 주신 한복 한 점, 한 점을 가장 아름답게 보이기 위해 근처에서 한복을 전문적으로 클리닝, 다리미질하는 세탁소까지 종종걸음을 반복했지만... 힘들기보다는 설렘이 넘쳤다. 구미호 전설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한 여성 캐릭터 '아리'가 주인공인 만큼 화보에도 '구미호'의 신비로운 매력을 담았고... 매듭부터 금박, 전통 신발까지 전통 의복의 요소요소가 잘 드러날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해 화보 촬영을 진행했다.
이렇게 촬영을 완료한 화보 컷은 온라인 전시 시작에 맞춰, 보그 코리아의 소셜 플랫폼으로도 공개됐으며 이후 멋지게 매거진에 실렸다.
화보 컷뿐 아니라 한복의 요소요소, 그리고 이동연 작가의 손을 통해 탄생된 아리, 그리고 이즈리얼의 한복 초상화 작품 또한 스튜디오에서 별도로 촬영했다.
그리하여 결국 2020년 10월 21일, 라이엇 게임즈가 4분의 무형문화유산 선생님 그리고 1분의 한국화작가님과 협업하여 준비한 <‘아리’따운 우리 한복展>이 온라인으로 공개가 됐다. 10월 21일은 "한복의 날"이기에, 일부러 이 날을 타깃 데이로 골랐다. 누구나 알아야 하지만, 누구나 모르고 있는 날이구나 싶기도 하여 더 알리고픈 마음에서였다.
본 전시에 대한 홍보를 위해 LoL 등의 게임 공식 홈페이지를 비롯해, 각 게임의 소셜 플랫폼, LCK 소셜 플랫폼 등의 모든 OWNED 채널을 동원했다. (공지) 미디어 측에도 공식 보도자료를 통해 온라인 전시 사이트 미 다큐멘터리 영상, 화보 이미지 등을 전했다. 게임 전문 미디어는 물론, 연합뉴스, 중아일보 등의 레거시 미디어부터 아이즈 매거진(영상 기사 링크) 등 다양한 미디어들이 전시 소식을 최대한 널리 알려주었다.
사실 이 프로젝트에는 물리적으로 정말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었다. 본인의 연재북에서도 무려 3편의 긴 호흡을 통해 소개할 수밖에 없었을 만큼 조심스럽고 또 쉽지 않았던 프로젝트이다. 무형문화유산선생님, 한국화 작가님과의 콜라보레이션인 만큼 더 각별히 마음을 썼고... 우리 한복에 대한 새로운 접근인 만큼 혹시나 오해를 사거나, 무지로 인해 결례를 범할 부분은 없는지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오프라인 전시 구상에서 패션 화보 진행까지... 급변하는 상황을 최대한 잘 읽어내고 겪어내려 했다.
하지만 돌아보면 이토록 보람이 큰 프로젝트가 또 있었던가 싶을 정도다.
많은 게임 플레이어들이 프로젝트의 가치를 알아봐 주셨다. 온라인으로 공개된 다큐멘터리 영상은 누적 조회수 100만 뷰를 바라봤다. 게임 속 한복을 재해석한 한복을 비롯해 패션 화보, 한국화 작품들까지 모두 호평에 호평을 받았다. 게임을 잘 모르는 이들도 <‘아리’따운 우리 한복展>의 의도와 그 작품들에는 큰 관심을 주고, 칭찬을 덧붙였다.
때문인지 프로젝트 공개 이듬해인 2021년, 라이엇 게임즈는 '아리'따운 우리 한복전을 이유로 <한복사랑 감사장>을 받기도 했다. 문체부 장관 명의의 본 상은 그야말로 한복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린 이들에게 주어지는 상으로, 당시 라이엇 게임즈 외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킹덤'의 권유진, 채경화 의상감독 등도 이 상을 함께 받았다.
포기하지 않으면 또 다른 재미있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배웠던 프로젝트였다. 또 생각보다 더 많은 이들이 우리 한복의 아름다움을 알고 자랑스러워하는구나를 느낄 수 있었던 프로젝트이기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