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브랜딩] 사회환원사업 中 ‘아리’따운 우리 한복 제작 과정
<11화에서 계속>
지난 2019년... 나는 라이엇 게임즈의 대표작인 온라인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League of Legends, 이하 LoL)속 캐릭터 '아리(Ahri)'의 한복 이미지(스킨)를 현실 속의 진짜 한복으로 탄생시키기 위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 프로젝트에는 침선장과 매듭장, 화혜장, 그리고 금박장까지 총 4분의 무형문화유산 선생님들이 함께 해주셨다.
초기 기획부터 디자인, 제작까지의 총 기간을 6개월 남짓으로 설정…그 해 가을 무렵에는 게임 플레이어들 앞에 선보이고자 타임라인을 잡았다. 한데 사실 게임 속 아리의 한복은 짧고 겹쳐진 형태로 그려진 치마를 비롯해, 반스타킹처럼 긴 버선까지... 다분히 게임적 해석을 담고 있었다.
그 게임의 상상력, 현대적인 해석을 현실 속으로 옮겨내면서도 무형문화유산 선생님들의 손을 통해 가장 전통적인 아름다움까지 담아내는 게 프로젝트의 목표였다. 한 발 더 나아가서는 이번 프로젝트를 게임 플레이어들와 더 많은 대중에게 우리 한복의 아름다움을 적극적으로 전하고 싶었다.
내부적으로, 또 LA개발진(스킨팀) 측에도 문의하여 금번 프로젝트를 사전 공유하는 동시에, LoL 게임 속 아리의 한복 관련해 모을 수 있는 모든 이미지를 모았다. 그리고 이를 바탕해 국가유산진흥원 및 무형문화유산 선생님들과 여러 차례에 거쳐 각 디자인부터 상의했다. 실질 복식 제작 단계는 오히려 각 영역에서 최고 전문가이신 무형문화유산 선생님들이 계셨기에 걱정이 전혀 없었지만, 제작에 앞선 기획과 디자인 단계에서는 스스로 고민하고 의사결정할 부분이 매우 많았다. 이 프로젝트는 게임 속 캐릭터의 모습을 그대로 구현하는 코스튬을 만드는 것과는 달랐기에 모든 의사 결정을 아주 신중하게 진행했다.
제일 먼저 고심한 것은 아리가 게임 속에서 입고 있는 한복이 다리가 드러날 정도로 짧은 길이라는 점이었다. 이런 한복은 없다, 고 지레 외면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게임 속 한복의 모습 그대로 미니스커트와 같은 한복 치마를 제작하는 것도 전통 복식의 아름다움을 전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기에 고민이 됐다. 이에 침선장 구혜자 선생님의 도움을 빌어 전통 복식 중 이런 게임 속 표현과 맞아떨어지는 접점을 찾고자 했다. 그리고 며칠에 거쳐 정말 많은 과거 자료와 서적을 뒤져 결국 조선시대 궁중 결혼식예복 중에 긴 한복 치마의 앞단을 켜켜이 겹쳐 올려 마치 서양의 복식처럼 입체적으로 표현한 경우가 있다는 점을 찾아낼 수 있었다. 오호! 여기서 영감을 받아 금번 프로젝트 속 아리의 한복 치마는 전통 복식 스타일로 제작하되, 풍성한 속치마 등을 함께 제작해 입체적으로 표현키로 했다.
아리의 신발에는 지극히 현대적인 문양인 <하트>를 넣기로 했다. 이는 화혜장 황해봉 선생님께서 먼저 제안을 주신 부분이었다. 매력적인 구미호 캐릭터인 아리는 게임 속에서 '매혹'의 기술을 통해 상대를 매료시키고 공격하는 데, 이런 캐릭터 설명을 들으신 뒤 황해봉 선생님께서 오히려 전에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시도인 만큼 젊은 세대들에게 더 가깝게 느껴질 것이라며, 전통 신발에 하트 무늬를 넣어보자 하셨다.
게임 속에서는 만날 수 없는 남성 캐릭터, 이즈리얼의 한복과 전통신발에는 <장로 드래곤>의 이미지를 넣었다. 장로 드래곤은 LoL게임 속에 등장하는 강력한 몬스터로, 리그 오브 레전드를 플레이하는 사용자라면 누구나 알아볼 법한 대상이다. 더군다나 장로 드래곤은, LoL E스포츠에 있어 끝판왕을 겨루는 자리라 할 수 있는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일명 롤드컵) 관련해 2017년 중국 베이징에서 마련됐던 결승전 무대에 증강현실(AR) 기술을 통해 멋들어지게 등장해 압도적인 임팩트를 남기기도 했던 존재. 그러하기에 이번 한복 프로젝트에 게임 속 느낌을 가볍지 않게 더해내기에 적격이라 생각했다. 이즈리얼 남성 한복에 금박으로 장로 드래곤을 찍어 넣기 위해 판을 몇 번이나 고치며 제작하셨던 금박장 김기호 선생님께서도 이렇게 게임을 알게 된다고 웃음을 지으셨다.
매듭장 정봉섭 선생님께는 게임 속 아리가 한복 스킨에 착용하고 있는 나비 모양의 매듭에 기반해 아리와 이즈리얼 각각의 느낌이 담긴 크고, 화려한 매듭을 부탁드렸다. 매듭 제작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매듭 짓기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그 매듭을 만들어 낼 실을 뽑고, 염색하여 꼬아내는 모든 단계가 포함돼 색부터 모양까지 정성이 가득 담겼다.
프로젝트 기획 및 제작할 한복들의 디자인과 구성을 모두 마치고 본격적인 제작에 돌입했다. 그리고 그 무렵부터 이 한복 2벌을 게임 플레이어들 앞에 전시할 계획도 세우기 시작했다.
전시는 라이엇 게임즈의 E스포츠 공간인 롤파크(LoL PARK)에 마련코자 했다. 이곳은 라이엇이 서울 종로 그랑서울에 2018년 대대적으로 오픈한 복합 게임공간인 동시에, LoL 프로리그인 LCK(League of Champions Korea)가 매주 진행되는 경기장 LCK아레나를 품고 있는 장소이기도 했다. 정말 많은 게임 플레이어, E스포츠 팬들이 찾는 장소인 바, 이곳 한편에 별도의 전시 부스를 마련하고 치마, 저고리, 배자, 매듭과 신발... 그리고 바지, 저고리, 배자, 두루마기, 매듭과신발에 이르는 아리와 이즈리얼의 한복 한 점, 한 점을 아름답게 전시하고자 했다. 그리고 이에 대해 며칠 간 라이엇 내 크리에이티브 팀과 이런 논의를 계속하던 중, 그리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등장했다.
4인의 무형문화유산 선생님들의 손을 거쳐 재탄생될 아리, 그리고 이즈리얼의 한복을 진짜 그 캐릭터들이 입으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는 것이었다. 듣고 보니 그 또한 흥미로울 수 있겠다 싶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순간 회의에 참석했던 많은 이들의 입에서 같은 분의 이름이 나왔다. 바로 이동연 작가님. 이 분은 현대적 요소가 포함된 새로운 '미인도' 작품들을 다수 선보인 바 있으신 한국화 작가로 2015년 라이엇 게임즈에서 한국화 작가 6분과 함께 마련했던 LoL <소환전> 전시에 함께 하시기도 했었다. 당시 작가분의 '아리 미인도' 등이 화제가 되기도 했었는데... 이 분이라면 장인들의 손에서 탄생된 한복을 곱게 입은 아리, 그리고 이즈리얼을 멋지게 표현해 주실 수 있을 텐데! 싶었다. 이 작품들까지 롤파크 전시에 함께 공개하면 얼마나 멋지겠는가. 그 길로 바로 양세현 마케팅 본부장, 그리고 김현명 크리에이티브 팀장의 도움을 받아 작가님께 본 프로젝트를 설명하기에 나섰다. 그리고 너무 다행스럽게 이동연 작가께서도 라이엇의 러브콜에 응해주셨다. 이로써 <'아리'따운 우리 한복전> 어벤져스의 마지막 멤버까지 모두 합류, 본격적인 작품 제작이 시작됐다.
'아리'따운 우리 한복전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또 하나 매우 공을 들였던 부분이 바로 다큐멘터리 촬영이다. 한국화작가를 비롯하여 무형문화유산 선생님들의 작품 제작 과정이라니... 평소에는 절대 마주할 수 없는 부분이지 않는가. 게임 플레이어들, 우리 젊은 세대들이 이를 접하고 공감하기에도 "영상"이 최적의 방안이라 생각했다. 이에 프로젝트 초반부터 내부 크리에이티브 팀의 도움을 받아 전문적인 다큐멘터리 영상 촬영팀을 구했다. 그리고 각 무형문화유산 선생님과 이동연작가님의 주요 작업 구간마다 이 촬영팀과 함께 각각의 작업실을 직접 방문했다. 제작 현황에 대해 말씀을 나누고 작업하시는 모습을 담아내기를 반나절... 하루 온종일에 거쳐 몇 차례씩 반복했다.
다큐멘터리 촬영이기에 소품부터 공간 전체를 담는 장면, 여러 차례의 인터뷰까지... 쉽지 않은 면들이 있었는데 그럼에도 무형문화유산 선생님들과 이동연 작가님 모두 본인과 다큐 촬영팀 인원들을 항상 반갑게 맞아주셨다. 선생님들의 작업 과정은 완벽이라는 목표 하에 반복과 반복이 거듭됐고, 그 과정에서 우리 복식에 대한 자긍심도 느낄 수가 있었다. 그중에서도 화혜장 황해봉 선생님의 작업실은 자택과 연결이 된 형태였는데, 하루 온종일 댁에 앉아 이야기를 묻고, 촬영을 하고 또 따라다니고 하다 보니... 나중에는 댁에서 키우시는 강아지가 본인의 무릎에 너무나 능청맞게 앉아 있어서 선생님과 선생님의 가족 분들이 놀랬던 것이 생각나기도 한다. 그만큼 많은 시간을 충분히 들여, 정성껏 팔로업하고 촬영했다.
이후 이 영상은 프로젝트 공개 시점 유튜브를 통해 오픈됐는데, 한국은 물론 세계 각지의 게임 플레이어들이 관심을 가져... 100만에 가까운 누적 조회수를 기록키도 했다.
쉽지는 않은 프로젝트였지만 이모저모 잘 이뤄져가고 있다... 싶을 즈음, 어려움이 닥쳤다. 코로나19의 악화가 지속되어 롤파크에서의 오프라인 전시가 불가할 상황이 된 것. 아름답게 제작하고 있는 2벌의 한복과 2점의 한국화... 이를 어떻게 게임 플레이어 앞에, 또 대중 앞에 선보일 수 있을까 머리가 무거웠다.
<13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