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관리 Risk Management
한 기업에서 기업과 프로덕트에 대한 홍보, 외부 커뮤니케이션 및 브랜딩 등의 역을 맡다 보면 때로 예측되는, 또는 이미 눈앞에 들이닥친 위기이슈를 관리하는 데 집중해야 할 때가 있다. 바로 <위기관리(Risk Management)>말이다.
한 번의 위기 또는 부정 이슈가 단기적으로는 기업이나 프로덕트의 현 이미지, 그리고 매출 등의 성과 지표에 즉각적인 타격을 줄 수 있고, 성공적인 위기관리를 해내지 못할 시 두고두고 회복할 수 있는 부정적 잔상이 남기기에 위기관리는 기업에게 있어 필수적이다.
아니, 위기관리는 그야말로
홍보 및 브랜딩의 정수라 할 수 있다.
기업이 알리고자 하는 내용을 최대한 다양한 채널을 통해, 타깃 오디언스에게 전달하는 Proactive PR / 마케팅 보다 <위기관리>가 훨씬 더 어렵다. 상황에 따라 기민하고도 가변적으로 움직여야 하기에 신속하고도 전략적인 판단이 주효하다. 프로세스적으로도 임원진을 비롯해 다수의 유관부서와 국내외 파트너까지, 끊임없이 소통하며 답을 내야 한다. 또 회사가 정한 해결 방향과 방안 대해서도 이를 언제, 어떠한 채널을 이용해 어느 정도의 수위와 표현의 외부 커뮤니케이션으로 풀어낼지 심사숙고해야 한다.
요약하자면 <위기관리>는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한 제대로 된 인지부터... 상시로 준비된 프로세스와 즉각적 투입이 가능한 노련한 전문가 등이 필요한 영역이다.
라이엇 게임즈에서의 위기관리는 어떠했을까? 13년의 경험에 근거해 단언컨대 라이엇 게임즈도 이슈가 꽤나 많은 회사였다.
게임 서버, 서비스의 불안정부터 랭크시스템이나 특정 챔피언/아이템 업데이트 등 게임 내 콘텐츠 업데이트나 밸런싱, 시스템 변화와 관련해서도 다양한 이슈가 있었다. E스포츠 관련해서도 파트너십의 확대나 셀프 프로덕션 등의 새로운 도전에 있어 위기관리가 필요했던 경우가 많았다. 선수 관리나 프로팀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논의와 해명이 필요한 순간들이 있었고, 그 위기관리의 끝에 새로운 제도나 정책 수립까지 병행한 경우도 있었다. 외에 CEO 등 TOP Management 관련 위기이슈가 발생했던 경우도 있었고... 본연의 의도와 다르게 게임 플레이어나 E스포츠팬들로부터 반발과 실망의 소리를 들은 사례들도 작게, 또 크게 이어졌다.
하지만 “이슈”의 발생은 어찌 보면 피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했다. 글로벌의 다양한 지역을 비롯해 한국 시장에서 십 년 이상 절대적인 인기를 이어온 회사이고, 지속적인 업데이트가 끊이지 않는 살아있는 프로덕트를 갖고 있는 회사이니 말이다. 모두가 만족할 만한 미래를 척척 예상하고, 누구나 좋아할 만한 답만을 내놓을 수 있는 자가 어디 있겠는가.
다행히 라이엇 게임즈는 <위기관리>에 굉장히 진심인 회사였다. 통상 위기관리를 정의할 때 이야기하는 예방, 준비, 대응(응답) 및 회복의 4단계에 있어 모든 단계에 굉장히 진지한 편이었달까.
라이엇 게임즈는 사전에 위기요소들을 다방면으로 예측하고 분석하기 위한 여러 툴과 프로세스를 마련해 뒀었다. 미국에 본사를 둔 글로벌 게임 회사인 만큼 콘텐츠 업데이트 시점이나 마케팅/ 이벤트 기획의 시점마다 문화에 따라, 지역에 따라 혹여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요소는 없는지. 의도와 다르게 확대해석, 또는 다르게 받아들여질 여지는 없는지 등을 끊임없이 서로 질문하고 검증했다.
일례로 로컬라이제이션 부서에서는 글로벌리 새롭게 추가되는 게임 콘텐츠와 관련해 각 명칭이나, 챔피언(온라인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League of Legends, 이하 LoL)의 게임 내 캐릭터를 지칭하는 표현이다)의 이름, 발음, 대사 등에 있어 지역별로 문제가 될 우려점이 없는지를 1차적으로 센싱하고 이후 마케팅이나 홍보, 법무, 대외협력 등 다수의 유관부서에서도 해당 내용을 공론화해 한번 더 체크를 이어가는 프로세스가 존재했다. 경영에 대한 관여가 없음에도 텐센트 측의 투자를 받은 회사라는 점에서도, 각종 콘텐츠나 마케팅 활동/ 홍보 활동에 있어 "중국색"으로 읽힐 부분이 없는지도 신중하게 견제하고 가능한 한국적으로 변형해 풀어낼 수 있는 부분은 그렇게 지역팀의 의견을 세웠다.
뿐만 아니라 게임 내 또는 이스포츠 관련해 주요 변동결정과 이에 대한 외부커뮤니케이션을 진행할 시에도 늘 홍보는 물론 다수의 유관부서들이 예측되는 위기요소는 없는지, 사전에 끝까지 보완할 수 있는 면은 없는지를 함께 논했다. 이슈사항에 따라 필요시 본사 및 타 지역 인원까지 함께 머리를 모으는 식이었다.
그게 뭐 대단한 일인가... 라고 쉽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 꾸준히 업데이트되는 각 게임의 콘텐츠 전반에 대해 십 여 년간... 지역별로 가능한 많은 인원이 주의에 주의를 기울인다는 것은 결코 당연하거나 쉬운 일은 아니다. 그리고 그럼에도, 늘상 그렇게 진행했다.
철저한 사전 감지와 이슈에 대한 즉각적이고도 성공적인 ‘대응’을 위해서는 탄탄한 대응 프로세스도 필요하다. 사전 공유된 업데이트/변동 예정의 내용, 또는 논의사항 중 우려사항이 있을 시 누구든 플래그를 올리고, 재논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구조. 또 외부 커뮤니티나 미디어, 인플루언서들의 동향과 이슈, 반응을 실시간으로 살필 수 있는 프로토콜. 또 사전 예방 단계부터 실질 위기이슈에 대한 대응의 단계 등에서 조언 또는 실행을 더할 수 있는 외부의 전문가들. 이 모두가 <위기관리>의 준비 단계에 해당된다.
라이엇은 그 각각의 프로세스와 프로토콜을 수년에 거쳐 고도화해 왔다. 또 굴지의 홍보대행사, 이스포츠대행사, 법무법인 등 외부의 전문가집단들의 필요성을 인지, 인정하고 필요시점마다 기꺼이 협업했다.
위기가 감지되면 그 사실확인이나 시장동향, 타사분석 및 유관부서 간의 논의, 그리고 외부 전문가집단과의 추가 논의 등을 위해 낮, 밤을 가리지 않는 식이었다. 낮밤을 가리지 않는 업무형태는 추천할 만하지 않으나 안팎으로 위기에 대해 대응할 ‘준비’가 이토록 철저해야 하는 것은 맞다.
그리고 결국 <위기관리>의 핵심은 예상되는, 또는 닥쳐온 이슈와 부정 이슈에 대해 어떻게 "대응(응답)"하고 이후 "회복"까지 이를 것이냐 라는 부분이다.
그리고 그 대응, 응답부터 회복에 이르는 과정은 사실 각 이슈에 따라, 그 이슈의 영향력이나 사회적 주목도, 업계의 트렌드 등 굉장히 여러 가지 조건들에 따라 정말 하나, 하나 다르게 이뤄지기 마련이다. 때문에 라이엇 게임즈에 있을 때 이런 식으로 <위기관리>의 대응과 회복 단계를 진행했단 단언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대체로 기업에서의 <위기관리>에 있어 대응 및 회복 단계는 "기업의 판단", "Top Management의 판단"에 근거하는 바 회사의 색, 철학이 반영되기 마련이다.
이런 면에서 얘기하자면 라이엇 게임즈의 <위기관리> 대응과 회복의 방식에서는 아래 몇 가지를 참고할 수 있다.
라이엇은 기초적으로 "덮어두고 간다고 완전히 비밀이 되지 않는다", "솔직히 배경과 이유를 설명하면 외부서도 자사의 선택과 현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가능한 내부의 정보를 외부에 투명하게 드러내기를 택하는 편이었다. 이런 선택이 때로 불필요한 추가적 관심이나, 기대를 만들어 내는 경우가 있긴 했지만... 원천적으로 오늘의 이슈를 덮어, 내일의 이슈로 만드는 경우 자체를 최소화하는 데 큰 근간이 됐던 부분이다.
또 게임 이용자들에게 최고의 게임 및 게임 관련 경험을 주자는 것은 기업의 미션으로 삼은 만큼, "우리가 모든 정답을 모를 수 있다", "우리의 생각이 짧거나, 의도치 않게 잘못된 이해 또는 불편을 드렸을 수 있다"는 전제를 인정하는 편이었다. 이 또한 이슈가 나올 때마다 지나치게 반복하면 무책임하게 보일 수 있는 면이지만, 꼭 필요한 순간에 한해 인정하고 반성하고 개선하는 대응은 오히려 게임 사용자들과 E스포츠 팬들로부터 신뢰를 얻었다.
그리고 미디어 등을 통해 잘못된 정보나 기업의 이미지가 고착화될 시, 사실여부와 상관없이... 거스를 수 없는 브랜딩의 손상을 입을 수 있다는 점 또한 PR의 주도 하에, 내부 인원들의 이해가 높은 편이었다. 이에 <위기이슈>를 묵묵부답으로 대응하거나, 순간의 모면을 위해 부분적인 정보를 오픈해 언론 플레이를 삼는 경우는 지양했다.
사실 위기에 대한 대응과 회복의 노력에, 어느 회사에서나 차용할 수 있는 만능 답안은 없다. 하지만 위의 부분들은 기업 차원에서 참고할 수 있는 좋은 판단 기준이다 싶다.
정리하고 보면 매우 체계적이고 단단하게 준비하고, 실행해 온 듯 하지만... 사실 <위기관리>의 순간, 순간은 그 많은 예방과 준비에도 불과하고... 예상대로 흘러가지도, 손쉽게 컨트롤되지도 않기에 언제나 까다롭다. 언제나 대응을 하면서도, 또 회복의 노력을 하면서도 "이게 정답이 맞나"라는 자문자답을 끝없이 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경험을 통해 다듬고, 노하우를 축적할 수밖에 없다.
이에 다음 편을 통해서는 어느덧 10년 전인, 2014년 어느 날... 생애 최초로 머리가 숭덩 숭덩 빠지는 원형 탈모까지 선사했던 위기관리 이슈 사례에 대해 이야기하겠다. [2014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에 대해서 말이다.
<15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