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롤드컵, 위기관리/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15화에서 계속>
한국이 미국에 비해 땅 덩어리가 작아서 그래? 예선도 못하게 좁아? 도대체 뭐야!!
라이엇은 2014년 6월 26일, 공지를 통해 2014 LoL(리그 오브 레전드, League of Legends) 월드챔피언십의 세부 일정과 진행 계획을 공개했다. 그리고 이 내용은 삽시간에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됐다. 허나 애석하게도 커뮤니티에서의 뜨거운 반응은 회사가 기대한 것과 달랐다. 완. 전. 히 정반대의 방향이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2014년 준비 및 진행된 LoL E스포츠계의 세계 최고 권위의 대회 2014 LoL 월드챔피언십. 일명 2014 롤드컵은 <Road to Korea>라는 타이틀을 내세웠다. 그리그 그 타이틀 하에 공개된 2014 롤드컵의 세부 일정과 진행 계획은 기존과 조금 달랐다.
당해 롤드컵 진출에 성공한 총 16개의 각 지역 대표팀들이 9월 하순부터 동남아시아의 대만 및 싱가포르에서 예선전, 즉 2주간의 그룹스테이지를 치르고 이후 8강, 4강, 결승을 한국서 소화한다는 계획이었던 것. 구체적으로 한국에서는 10월 3일부터 6일까지, 부산 벡스코(Bexco)에서 8강이, 또 10월 11일과 12일, 양일 간 서울 잠실에 위치한 올림직 체조 경기장에서 4강이... 그리고 대망의 결승은 10월 19일 상암동에 위치한 서울 월드컵 경기장에서 마련되는 형태였다.
그리고 이렇게 기존과 다르게 설계된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우선 회사 측 입장에서 그 설명을 보태보자면, LoL 월드챔피언십은 2011년 북미, 유럽 대표팀 간의 경합 구조로 시작해 이후 2012년, 2013년 두 해만에 빠르게 성장했다. 게임 서비스 및 E스포츠 대회 진행의 지역이 늘어나, 롤드컵 참여 지역도 크게 늘었고 손에 땀을 쥐는 각 지역 대표팀 간의 경합에 이 대회에 대한 게임 플레이어 및 E스포츠 팬들의 기대와 관심도 크게 늘었다. 이런 성장은 오프라인 대회장소의 규모 및 흥행과도 직결됐다. 단적으로 2012년 롤드컵 결승은 미국 LA의 USC아레나에서 진행됐고, 2013년 롤드컵 결승은 미국 LA 스테이플스센터에서 치러졌다.
그리고 라이엇은 기존 유럽, 북미에서의 롤드컵 진행서 한 발 더 나아가 이 대회를 세계의 또 다른 지역에서 진행코자 결심했다. 직접적인 E스포츠 시청의 즐거움은 그야말로 그 지역의 게임 플레이어와 E스포츠 팬들께 특별한 경험과 만족을 남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새로운 시도에 있어 제1의 후보지는 단연 <한국>이었다. 한국은 세계적인 게임의 메카이자, E스포츠의 탄생지이지 않던가!
한데 여기까지는 기존과 크게 다르지 않았으나… 아시아권에서의 첫 롤드컵 진행을 고심하다 보니 욕심을 좀 더 부렸다. <한국>에서의 본격적인 본선 진행에 앞서 <예선>은 동남아시아 지역서 진행함으로써, 해당 지역 게임 플레이어와 E스포츠 팬들의 관심과 만족도 키우고... 이후 한국으로 향하는 대 여정의 롤드컵을 만들면 멋지지 않을까?! 란 생각이었다.
한국 오피스의 라이어터(Rioters, Riot Games 임직원을 의미한다)들도 처음 본사로부터 이런 대회 진행 계획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하지만 더 많은 팬들과 함께 하기 위해, Multi cities/ Multi countries에서의 롤드컵 진행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본사 측 의견에 그럴 수 있지, 라 동의가 됐다. 또 8강부터의 본격적인 경합은 모두 부산과 서울, 한국에서 진행되는 구조였기에 나쁘지 않은 구조라 막연히 생각했다.
하지만 팬들의 생각은 달랐다. 예선전인 그룹스테이지부터 결승에 이르기까지, 한 달 여 간의 모든 2014 롤드컵 여정이 한국에서 펼쳐지는 줄 알았는데... 뜬금없이 동남아시아를 거쳐 8강에서야 한국에 들어온다니 의아했다. 무엇보다 앞뒤 설명이 없이 접하게 된 이 소식은 게임 플레이어와 LoL E스포츠 팬들을 놀라게 했고... 금세 그 놀라움과 의아함은 분노로 바뀌었다. "반쪽짜리 분산 개최"라며 한국 팬들을 우습게 아는 것 아니냐는 소리들이 나왔고,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이럴 바엔 2014 롤드컵을 아예 보지 말자는 보이콧 의견까지 등장했다.
이렇게 심각한 상황이 도래한 데에는 커뮤니케이션의 부재, 아니 어찌 보면 거꾸로 되어 버린 커뮤니케이션이 화근이었다. 필요한 커뮤니케이션은 늦어지거나 누락되고, 그보다 빠르게 진행되어 버린 커뮤니케이션은
톤 조절 실패로 기대감만 더 키워놨다. 그리고 이 두 문제상황이 환장의 콜라보를 이뤘다.
1) 라이엇은 E스포츠 팬, 특히 한국의 E스포츠 팬들을 대상해 왜 2014 롤드컵은 기존과 조금 다른 방식으로 도전해보고자 하는지... 를 설명치 않았다. 스테이지별 상세 일정과 대회 장소에 대한 고지 등의 정보 공개보다 앞서 진행됐어야 하는 부분임에도, Road to Korea라는 타이틀에 함축해 설명을 빠뜨렸었다.
2) 한국 팬들 입장에서는 특히 어느 해보다 일찍, <한국에서 진행될 결승전>에 대한 사전 발표가 진행됐다. 공식 보도나 공지에서는 "결승"을 콕 집어 언급했지만... 발표 현장서 "한국 유치 성공" 등의 과한 표현이 사용되는 걸 막지 못했다. 또 이미 당시에 아시아권의 다양한 대회 진행 장소 옵션을 고민하고 있었음에도... 해당 후보 지역들에 혼선과 잘못된 기대를 줄까 염려한 나머지... 다 지역에서의 대회 진행을 고려하고 있다는 언급도 해당일 발표에서는 제했다. 팬들 입장에서는 들은 바 없는 이야기이니, 당연히 2014 롤드컵의 전 일정이 한국서 진행된다 기대하지 않았겠는가. 또 결승전에 대한 발표가 너무나 화려하게 일찍 고지된 탓에, 실제 대회 일정을 접했을 때의 실망감은 배가 됐다.
한국 오피스에서도 모두가 아차, 싶었다. 내부적으로는 수 차례 본사 및 한국 라이어터들 간에 많은 토론과 준비를 거듭했기에 이미 여러 지역과 도시를 거치는 새로운 롤드컵 계획에 대해 익숙해진 상황이었지만 게임 플레이어와 팬들께는 더 단계적이고, 구체적인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했음을 통감했다. 이 날 퇴근을 했다가 다시 사무실로 출근을 했다. 본사와 빠르게 논의해 우리 잘못을 인정하고, 가능한 모든 부분들을 투명하게 커뮤니케이션하고자 주말에도 각종 커뮤니티 반응들과 한국 오피스 측 의견 등을 정리했다.
1) 변경 가능 사항에 대한 확인/ 의사 결정
우선 대만과 싱가포르에서 진행하려 준비하고 있던 16강, 즉 예선전 계획을 전면 초기화하고 한국에서의 진행 안을 찾을 수 있을지/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게 맞을지부터 본사 측과 즉각 논의했다. 하지만 충분한 관객을 들일 수 있는 동시에, 프로게이머들을 위한 공간과 방송을 위한 공간이 충분하고... 안정적인 대회 진행을 위한 기술적 환경이 가능한 장소를 며칠 만에 찾아내는 것은 불가했다. 또 이미 계획을 발표한 상황에서 한국의 팬들의 꺾여버린 기대를 채우기 위해, 대만 및 싱가포르의 팬들에게 <이번 계획은 안 되겠어요, 취소할게요>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 또한 옳은 결정이 아니라 판단했다.
2) 진정성 있는 사과 및 누락됐던 커뮤니케이션 보완
무엇보다 중요한 부분은 E스포츠 팬들을 향해 지금에라도 필요한 커뮤니케이션을 빠르고 정확하게, 또 촘촘하게 진행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어떤 내용을 어떻게 담을지 쓰고 지우기를 수십 번. 본사 측 담당자들과도 낮밤을 가리지 않고 컨퍼런스 콜을 이어갔다.
결국, 결국 이번 2014 롤드컵에 관련한 추가 커뮤니케이션을 최대한 빠르고, 진솔하게 진행키로 결정했다. 화자는 회사의 수장이자 창업자인 브랜던 벡(Brandon Beck)이 직접 나섰다. 다행히 TOP Management의 의사 결정이 아주 빨랐다. 메시지에는 아래와 같은 내용을 담았다.
1) 사과의 말씀
한국 E스포츠 팬들께 혼란과 실망을 드린 부분에 대한 명료하고 진정성 있는 사과의 말씀
2) 회사 측 의도 및 총체적 상황/ 경위에 대한 설명
다양한 도시와 국가에서 롤드컵을 진행코자 기획하게 된 이유& 의도
2013년 11월, 한국서 진행될 결승전 외 타 지역에서의 대회 진행 고려사항 등을 공개치 못한 이유
단계적 커뮤니케이션의 부재로 팬들께 실망을 드린 부분 인정, 사과
3) 팬들께서 궁금증에 대한 즉각적 답변
향후 대회 진행 계획 - 조별 예선전, 한국에서의 진행으로의 전환 가능여부 및 불가한 상세 이유
프로게이머 컨디션 조절 서포트를 위한 휴식 일정 고려 등
4) 마무리말씀
2014 롤드컵을 통해 더 좋은 경험을 드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다짐
이 공지는 한국어와 영어로 모두 작성됐다. 한국에서의 초안 제언, 본사 측에서의 수정과 또 수정... 최종적인 공지 내용의 로컬라이제이션 작업을 곧바로 진행했고, 이후 6월 28일 게임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했다. 사전에 더 다각도에서 고민하고 고려해 이런 사태를 미리 방지할 수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그래도 고객의 반응에 최대한 빠르고 진솔하게 기업의 수장이 직접 나서 추가적인 소통을 진행한 것은... 다분히 라이엇다운 대응이었다 생각한다.
이후 브랜던 벡, 마크 메릴 공동대표를 비롯해 라이엇 게임즈 E스포츠 부문을 이끌던 더스틴 벡 부사장까지 모두가 2014 롤드컵의 결승을 앞두고 한국을 찾아... 한국 및 세계의 200여 명 미디어 앞에서 QnA행사를 가졌는데, 이때에도 한국 팬들께 심려를 끼쳐드리고, 실망감을 드린 부분…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리기도 했다.
3) 만회를 위한 노력
이후 라이어터들은 재미있고 알찬 롤드컵 준비와 진행에 집중했다. 8강, 4강, 결승 현장서 펼칠 각종 이벤트부터 E스포츠 직관을 오시는 팬들께 드릴 선물 등. 또 이매진 드래곤스와 함께 웅장하고 멋들어진 결승 오프닝 무대를, 또 엔딩 무대를 준비했고 온라인에서 즐길거리도 풍성히 준비했다. 물론 매끄럽고 능수능란하게 현장이 잘 운영되었는가,에 있어서는 앞서 15화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 또 있었기도 하지만… 게을리하지 않았다. 자만하지 않았다. 또다시 혹시나 우리가 팬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할까 서로 견제하고 또 확인하며 최선을 다해 준비했다.
그리하여 2014년 한국의 부산과 서울에서, 뜨겁고 뜨거운 롤드컵 8강, 4강, 결승이 펼쳐졌고 한국팀의 우승!이라는 최고의 승전보와 함께 대단원의 막이 내려졌다.
“한 번 더, 한발 다른 각도에서 더 깊이 고민하고 또 다른 각도까지 생각했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실시간으로 실망과 분노의 피드백을 듣고 또 들었던 2014년 10월 하순. 한국 라이어터들은 누구랄 것 없이 단체로 엄청난 우울감을 겪었다. 지나고서 보니 매우 선명했던 실수, 부족함이었지만… 왜 우리가 이런 팬들의 반응을 미리 예측지 못했는가. 왜 미연에 방지하지 못했는가 라는 회한이 사무실에 가득했다. 아마도 당시에는 대회 준비에 모두가 너무 몰입해 있었고, 정보에 지나치게 가까운 위치에서 고민하다 보니 게임 플레이어 및 E스포츠 팬들의 시각에서의 이해의 감을 잃었던 것 같다. 매일매일 직원들 간에 우리 모두의 미션은 게임 플레이어와 E스포츠 팬들께 최고의 경험과 즐거움을 드리는 것이다! 외쳐왔던 회사인 만큼... 스스로 놓친 커뮤니케이션과, 팬들의 실망의 소리는 뼈저리게 다가왔다. (당시 본인은, 난생처음 머리 곳곳에 원형 탈모가 생겼었다. 그럼에도 매일이 빠르게 흘러가 전혀 모르고 있다 한참 지나 방문한 미용실에서 "머리가 다시 잘 나고 있으니 걱정 말라"는 소리를 듣고 얼마나 놀랐던가)
하지만 모든 경험은 배움을 남기나니. 이 강렬한 10년 전 기억은 항상!! 소비자, 사용자의 입장서 충분히 고민하고, 우리가 보지 못하고 있는 면은 없는지 확인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남겼다. 또 위기가 발발했을 시, 무엇이 이 위기의 발단이고 핵심인지를 파악하는 것부터... 회사 내외적으로 어떤 내용을, 언제, 누구의 입을 통해 어떻게 밝힐 것인가 등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의 실례를 아주 절절하게 배웠다. 그래도 10년 전, 롤드컵. 다시 생각해 보니 나름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