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lano 8.3-8.4, 2007
밀라노까지 4시간을 기차 안에 앉아있는 건 아이들에게 아주 지루한 일이었다. 호텔에서 9시에 아침을 먹고 기차에 올랐지만 밀라노에 오후 3시에 도착한 다음 점심을 먹겠다는 계획은 잘못 둔 한 수였다. 책 읽고 창밖을 보는 것 외엔 딱히 할 일이 없으니 스낵 카트의 과자라도 먹어줘야 시간이 빨리 갈 텐데... 전날 밤 초콜릿 가게에서 갖고 있던 현금의 대부분을 써버렸는데 기차 안에선 카드결제가 안된단다. 런던에서 제네바까지 줄곧 긴 팔을 입고 다녔는데 밀라노 중앙역을 나오자 햇살이 따갑다. 허기진 우리 애들처럼 모노톤의 무표정한 건물들 외벽을 빠르게 훑어 ATM을 찾아 현금을 인출하고 지하철로 한 정거장을 이동해 호텔에서 늦은 점심을 해결했다.
체크인을 하는 동안 누군가 한국말로 애들에게 말을 건네는 소리를 듣고 돌아보니 샤넬 선글라스를 쓰고 루이뷔통 가방을 든 20대로 보이는 여성이 우리 애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고 그 옆에 40대로 보이는 구릿빛 피부의 백인 남자가 서 있었다.
"너네들 반에서 이렇게 외국여행 나온 애들이 몇 명이야?"
황당한 질문에 우리 애들은 그녀를 올려다보며
"모르겠는데요."
객실 키를 건네받고 프런트 데스크에서 몸을 돌려 그녀에게 가볍게 눈인사만 한 뒤 아이들과 함께 재빨리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한국인을 만나면 언제나 반가웠지만 그 여성은 예외였다.
밀라노에선 완공하는데 6백 년이 걸린 흰 대리석 두오모 성당과 스칼라 극장,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다빈치 과학박물관을 둘러보았다. 최후의 만찬 그림 속에서 누가 예수를 배반한 사람인지를 두고 첫째와 둘째가 실랑이를 하더니 내게 판결을 요구했다.
"저기 앞에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한테 가서 물어봐."
둘째가 이모뻘 되는 두 명의 여자 관광객에게 다가가 공손히 물었다. 그들은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씩 웃으며 8살 꼬마의 눈높이에 맞춰 무릎을 굽히고 벽화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속삭인다.
"저기 파란 옷에 얼굴이 갈색인 사람."
레오나르도 다빈치 과학박물관은 최후의 만찬이 그려진 Santa Maria della Grazie 성당에서 한 블록 뒤인데도 찾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하지만 내부엔 다빈치가 만들었던 기계들의 모형들 외에도 고악기와 시계들이 전시 중이었다. 다빈치가 드로잉 한 인체 해부도의 예리한 필선과 기계 설계 노트의 생동감 있는 글씨들을 둘러보며 큰애는 집에서 책에서나 보던 다빈치의 유품들을 직접 보는 게 믿기지 않는다며 흥분해서 저만치 앞서 전시물을 둘러본다. 며칠 후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 기념품점에서 다빈치의 노트들을 모아 편찬한 두꺼운 영문판을 발견한 아들은 하드커버 위에 한 손을 얹고 나를 쳐다본다.
"영어네. 괜찮겠어?"
"배우면 되겠죠."
다음날 호텔을 나올 때 듬직한 체구의 직원이 호텔 입구까지 짐가방 두 개를 들어다 주며 택시를 탈 거냐고 물었다. 지하철로 중앙역에 간다고 했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Then keep in mind this."
로 시작해 다음과 같이 행동요령을 가르쳐준다: 역 앞과 역사 안에 도둑들이 많고 두리번거리면 관광객인 줄 바로 알아채고 슈트케이스를 낚아채 도망간다. 그러니 플램폼에서도 기차에 오르기 전까진 정신 바짝 차리고 가방은 앞으로 밀어야 한다. 그 후 이탈리아의 다른 도시의 역에서도 소매치기를 당하지 않고 여행을 이어갈 수 있었던 건 그가 가르쳐준 데로 했기 때문이다. 세상엔 잠시 스쳐 지나가지만 두고두고 고마운 사람으로 기억되는 인연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