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곁에도, 당신의 곁에도
"근데 무엇보다 네가 완전 회복된 것이 보여서 너무 좋더라~ ㅋㅋ
이 얘기 대표님께 네 번했어 ㅋㅋ"
어느 날 문득, 내게 질문이 찾아왔다.
"당신이 가장 행복한 공간은 어디인가요?"
이 질문이 다가온 순간부터. 아니, 사실은 훨씬 전부터 나는 나를 잃어가고 있었다. 아주 조금씩, 스스로도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30분 넘게 고민하다가 내놓은 답은 '사무실 내 책상 앞'이었다. 내가 가장 행복한 공간이 사무실 내 책상 앞이라는 것이 무척이나 쓸쓸하고 고통스러웠다. 내가 떠올린 모든 장소에서 나는 이방인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답을 내놓고 펜을 내려두고선, 나를 찾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때론 결심은 상실을 동반한다. 상실의 아픔은 그것을 가졌던 크기에 비례하지만, 그 또한 견뎌내야 한다. 그것이 결심의 대가이기 때문이다. 극복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특히나 생각을 정리하고 글을 쓰는 것이 매우 도움이 되었다.
그렇게 시간과 아픔이 함께 흘러가고 나를 채우던 것들이 빠져나갔다. 나를 비워내고 나니 그제야 내 모습이 보였다. '나는 이런 사람이었구나.'하고 깨달았다. 뾰족하기도 하고, 동그랗기도 한 내 모습은 나 같아 보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이런 내 모습을 외면했지만, 이내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내가 직접 확인 한 내 모습을 내가 인정해주지 않으면, 누구도 인정해주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타이밍에 시작된 장난스러운 대화를 새벽까지 주고받으며 낄낄대는 모습도,
새벽에 #Nightjazz #paris 태그가 달린 유튜브 속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감성에 빠져있는 모습도,
우울감에 빠져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골방에 갇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있는 모습도,
새벽에, 해 질 녘에 강아지와 산책하며 텁텁하지만 상큼한 여름 공기를 맡으며 개똥을 치우는 모습도,
오래된 LP판에서 새어 나오는 꿉꿉한 냄새가 가득한 LP바에서 러스티 네일을 마시며 궁상떠는 모습도,
모두 나였다.
그 어느 곳에도 없던 내가, 이곳저곳에서 발견되는 듯한 느낌이 조금씩, 아주 조금씩 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를 찾아가다 보니 조금 더 밝아지고 사소한 것에 행복을 느끼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나를 발견하다 보니 내 주변이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런 모습이 나를 지켜보고 있던 내 주변 사람들에게 전해졌나 보다.
"근데 무엇보다 네가 완전 회복된 것이 보여서 너무 좋더라, 올 초만 해도 말하기도 힘들어해서 맘이 참 안 좋았는데, 5년 전의 너를 다시 만나서 반가웠다"
내 모습을 잃고 있었던 시간에도 나를 지켜봐 주고 있던 사람이 있다는 것. 참으로 축복받은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이야기를 하니 '주변에 좋은 분들이 많이 계신 것 같아요. 당신이 좋은 사람이니까 그런 거겠죠'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나는 늘 내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좋은 사람이라고 하니 정말 좋은 사람이 되는 듯했다. 그래서 나는 "좋은 사람 곁에는 항상 좋은 사람이 있죠. 당신도 마찬가지예요."라고 대답했다. 그 사람도 좋은 사람이다.
문득, 요즘 힘들어하는 동기가 생각났다. 그리고 동기를 안아 주면서 해준 말이 떠올랐다.
"저는 아주 조금씩이지만 행복해지고 있어요. 조금뿐이지만 이 행복 나눠줄 수 있으니, 힘들 때 연락해요"
아주 잠깐 힘들어하고 있지만, 그는 좋은 사람이기 때문에 이내 곧 회복할 것이라는 믿는다.
이렇게 내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나를 비우고 나를 찾아가다 보니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하나둘씩 발견하다 보니, 나도 좋은 사람이 되어간다.
주변을 둘러보면 좋은 사람은 꼭 있다.
이 글을 읽는 그 누군가도 그 좋은 사람을 찾아 좋은 사람이 되기를,
그리고 오늘의 발견,
늦은 오후에 마시는 벤티 아메리카노는
저녁에 독한 술을 마셔도 새벽까지 눈을 뜨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