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부터 꿈꿔온 건 젊은 아빠였다.
아이 따라 운동회에 나가면, 아빠들 달리기 1등 하는 멋진 아빠.
아빠가 학교에 따라가는 걸 아이가 좋아하는, 그런 아빠.
그러나 현실은 운동장 반 바퀴만 뛰어도 헥헥거리는 그냥 덩치 큰 곰 같은 아빠다.
그리고 이런 나를 “아빠”라고 불러줄 나의 아이가
2025년 12월 29일, 11시 51분. 3.09kg, 51cm의 모습으로 태어났다.
아빠가 되면 뭔가 극적으로 많이 달라질 줄 알았다.
이제 가족 구성원은 둘이 아닌 셋이 되었고, 그에 따른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이 무겁게 짓누르지만
견디고 성장하는 든든한 아빠가 될거라고 생각했다.
아이가 태어나기전에는, 탯줄을 자르며 감격에 눈물을 흘리는 장면도 상상했다.
탯줄을 멋있게 자르고, 아이보다 먼저 아내를 챙겨 “정말 고생했어”라는 말을 건네는
세상 스윗한 남편이 되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은, 단 하나도 내가 생각한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11시 55분.
‘○○○ 보호자님’으로 부르는 간호사를 따라, '○○○ 보호자'가 되어 분만실로 부리나케 달려갔다.
분만실로 달려가는 와중에도 휴대폰은 손에 꼭 쥐고 있었다. 아내가 영상과 사진을 잘 찍어 달라고 미션을 줬기 때문이다.
허둥지둥 도착한 분만실에서 아이를 처음 봤을 때, 가슴 깊은 곳에서 알 수 없는 감정이 꿈틀거리며 울컥 쏟아져 나왔다. 터져나오는 감정을 가까스로 추스른 건 간호사님의 말 덕분이었다.
“아버님, 지금부터 아이 설명해 드릴 테니 다 듣고 나서 사진 찍으시면 됩니다.”
간호사님께서 해주시는 이야기가 어떤 이야기인지는 몰랐지만,
눈물 흘린다고 놓쳤다가는 불호령이 떨어질 것이 분명했다.
벅차오르는 감정에 차가운 이성이 한바가지 쏟아져
정신을 차리고나서 간호사님의 말에 집중했다.
바다(태명)는 다행히 손가락도, 발가락도, 생식기도, 피부도, 생김새도 모두 정상이었다.
특이한 건 유난히 반짝이고 새빨갛게 빛나는 입술이었다.
간호사님은 입술이 아내를 꼭 닮았다고 했다. 그 순간, 아내의 입술이 이렇게 매력적인 입술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새로운 발견이랄까)
입술에 홀려 사진을 몇장밖에 찍지 못했다. 신생아실로 이동해야한다는 간호사님의 말씀에, 더 찍고 싶은 욕심을 접어두고 인큐베이터를 밀었다. 정말 다행이도, 분만실에서 신생아실로 옮기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바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얼굴과 코와 입과 입술, 귀와 목과 머리와 턱을 하나하나 탐조하듯 찍고 있는데
갑자기 아이가 눈을 깜빡이며 뜨기 시작했다. 불현듯 '너무 일찍 눈을 떠 각막에 손상이 가는 그런 일'이 생길까 깜짝 놀라 간호사님께 물으니 아까도 눈을 떴다고 웃으며 말하신다. 마치 내가 무슨 걱정을 하며 물어봤을지, 다 예상하고 있다는 듯한 느낌이었다. 다행스러운 감정과 함께 부끄러움이 스치고 지나갔다. 왜이렇게 유난이지? 그래도 본심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의도치 않게 마주한 아주 짧은 아이 컨택트는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눈을 감고 있을 때의 얼굴과 떴을 때의 얼굴이 이렇게 다를 수 있다니.
너무 신기했고,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아주 소중한 경험이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만난 다른 과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님들이 아이가 예쁘다며 딸이냐고 물으셨다.
퉁퉁 부은 아이 얼굴을 보며 혹시 나를 닮아 못생긴 건 아닐까? 잠깐 스친 걱정을 말끔히 씻겨 나갔다.
(물론 나중에 생각해 보니 서비스 멘트 같기도 했다.)
그렇게 2분도 채 되지 않는 시간을 뒤로하고 아이는 신생아실로 갔다.
그제야 엄청난 후회가 밀려왔다. 아! 조금 더 영상과 사진을 찍을 걸.
오늘 보면 내일 면회 시간까지 다시 볼 수도 없는데, 더 남겨둘 걸.
후회는 썰물보다 몇 배는 빠른 속도로 가슴을 채웠다. 하지만 이미 밀물따라 떠나간 배는 돌아오지 않는다.
바다의 사진과 영상을 잘 정리해 양가 어른들께 보내드렸다.
고슴도치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바다가 너무 예쁘다며 하나같이 똑같이 말씀해 주셨다. 역시, 고슴도치 가족다웠다.
폭풍 같은 시간이 지나고 분만실 앞 대기실에 앉아 있으니 이상하게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아이를 낳았다는 것, 내가 아이의 아빠라는 사실이 전혀 실감 나지 않았다.
잠깐이나마 아이와 함께 있을 때는 마치 벼락을 맞은 듯, 찌릿한 느낌과 함께 벅찬 감격이 몰려왔는데,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나니 “뭐가 달라진 거지?”라는 생각만 남았다.
다만, 아주 깊은 여운이 남아 있었다.
마치 스쳐 지나간 누군가의 향기가 오래 기억에 남아 뒤돌아보게 되는 것처럼.
바다와의 짧은 시간은 깊은 여운과 향기를 남겼고, 그 향기만이 내가 아빠라는 사실을 조용히 말해 주는 것 같았다.
속이 타들어 가는 긴장감과 짜릿한 감격,
그리고 달라진 것 없이 실감 나지 않는
깊고 짧은 여운을 남긴 하루였다.
그렇게, 41세 아빠의 첫날이 지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