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거창하게 이야기하며 마무리하고 싶었는데, 그냥 담담하게 브런치북을 연재하며 느낀 것을 쓰는 에필로그가 될 것 같습니다.
올해는 유독 생각지 못한 일들이 가득했던 해였습니다.
10년 만에 시작한 석사과정, 생각보다 훨씬 더 배울 것도 많고 특수대학원임에도 불구하고 학구열이 높아 가랑이 찢어지며 따라간 것도 그렇고요. (만만하게 보고 장학금 받을 줄 알았는데 역시나.. 서연고 학부생들은 이길 수가 없는 것 같아요.ㅎㅎ)
올해 새로 들어간 회사가 사정이 어려워 재택근무로 변경하는 대신 저의 연봉체계에 매우 심한 악영향을 미쳐서, 저는 또 다른 회사를 찾아야 하는 신세에 놓이기도 했습니다.
예전 같으면 이런 상황에서 끝없이 좌절하고 쓰러져서 한 동안 못 일어났을 텐데, 그래도 조금 생존력이 생긴 것 같아요. 삶의 융통성이 생겼달까요. 삶을 대하는 시각도 바뀐 것도 한 몫하고요. 과거 같으면 바로 손절했을 테지만, 그냥 제가 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환경을 만들고자 나름 고군분투했었네요.
덕분일까요.
전화위복이라고, 재택근무제도 덕분에 학교에서 일과 공부를 같이 잡으면서 올해 마무리를 앞두고 있고요.
심하게 깎인 연봉은, 저를 평소에 좋게 봐주는 친구들이 도와준 덕분에 새로운 프로젝트를 하며 체력적으로는 힘들지만 일에 있어서는 그간 꼭 해보고 싶던 브랜딩을 진행하며 숨통 트이는 삶을 살고요. 연봉 체계도 복원하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물론 저의 연봉 체계를 복원하기 위해 일이 끝나면 새로운 일을 찾아야 하는 탓에 끝없이 일하고, 일해야 하는 상황 탓에 바쁘고 숨 막히는 연말을 보내고 있습니다. (방금 숨통 트였다며..)
조금 여유가 생길 때는 학교에서 배운 심리학을 저에게 적용시켜, 제가 회사를 다니며 어떤 행동 패턴을 갖고 있었는지. 일을 대하는 태도, 삶을 대하는 태도는 어떤지 돌아보고 브런치북에 썼습니다.
쓰고 보니 저의 키워드는
도전, 성취중독, 번아웃, 즐거움, 불안함.
가 인생에서 반복되더라고요.
키워드를 인과순서대로 나열하자면,
불안함->도전->즐거움->작은 성취->또 도전->작은 성취..
이 과정을 반복 후에 번아웃 되고, 번아웃되어서 멈추면 또 불안해서 다시 또 도전하는 패턴을 갖고 있는 피곤한 삶을 사는 사람이더라고요.
가끔 하는 말이 있는데요, 저 조금이라도 욕심내면서 살면 좀 다르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불안과 도전을 번갈아가며 작은 성취를 이뤄가는 삶을 브런치북을 통해 관조롭게 바라보다 보니, 차라리 욕심을 내서 큰 것에 도전하고 이왕 깨질 거 작게 깨지지 말고 크게 부딪혀 깨질걸. 왜 이렇게 깨작되었을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변태인가요? 왜 스스로를 깨지는 환경에 못 내놓아서 안달인지.)
작은 일에만 도전했던 건 아마도 제가 그릇이 작기 때문이었을까요?
그렇다기보다는, 평소 워낙 게으른 탓에 매일 작은 성취를 하지 않으면 나아가지 못해서, 작게 작게 도전한 게 버릇이 되었던 거 같아요. 작은 성취라도 이루지 않으면 저는 나아갈 수가 없는, 불안에 허우적대는 삶을 살아왔으니까요.
불안은 어디에서 왔을까요.
누군가가 보면 마냥 좋은 환경에서 자랐기에 왜 불안이 있을까에 대해 이해할 수 없겠지만, 아마도 여러 가지 환경적인 영향이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혹은 기질이 그렇게 타고났을 수도 있고요. 언젠가 이야기할 기회가 있겠죠.
불안을 작은 성취로 극복하고 스스로 어르고 달래며 매일 조금씩 나아가다 보니, 그래도 한 발짝 삶을 나아가게 할 수 있었고, 오랜 시간 걸렸지만 대학교를 마치고, 또 대학원에 오는 성과도 이뤘습니다. 결론적으론 그냥.. 이렇게 작은 성취들을 이루고 스스로 보듬고 그것에 아주 만족하는 삶을 살다 보니. 그냥 그게 제 삶의 패턴이 된 것 같아요.
이번 브런치 북을 쓰며, 매일 무력감을 느끼고 좌절했지만 침대 밖으로 나간 스스로에게 칭찬을 해주고 싶습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환절기를 온몸으로 겪는 탓에, 가을에서 겨울이 되는 이 쯤은 저에게 가장 힘든 시기인데, 비록 12시에(???) 일어났지만, 이불을 박차고 나와 밥도 먹었고, 해야 될 게 너무 많아서 보기도 싫지만, 일단 그래도 딱 하나만 이루고 오자는 마음으로 스타벅스에서 브런치 에필로그를 쓰고 있습니다. 실상 해야 하는 것은 대학원 과제이고, 브랜딩 일이지만, 그래도 브런치북 에필로그를 쓰는 것만으로도 오늘 하루 잘했다고 합리화하려고 합니다.
(생각해 보면 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합리화일지도 모릅니다. 스스로에게 채찍을 때리는 것만큼 앞으로 합리화도 좀 많이 하려고요. 스스로에게 너무 엄격합니다.)
그동안 <퇴사하고 심리학 석사를 시작했다>라는 자아 성찰 일기를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대학원에서 배운 심리학을 최대한 곁들이려고 노력했습니다. 이론으로 무장한 해결책 역시 최대한 쉽게 이해하실 수 있도록 써보았습니다.
저는 내년에 돌아오겠습니다.
아마 또 불안하면 조금 더 일찍, 12월에 새로운 브런치북을 내놓을지도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퇴사 대신, 여러분도 2026년에는 작은 나만의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한 해가 되길 바랍니다.
take care, cha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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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카리나는..
글로벌 PR과 콘텐츠 마케팅 분야에서 활동해 온 12년 차 홍보/콘텐츠 마케터입니다. IT, 헬스케어, 유통 산업 전반에서 브랜드 론칭과 리드 전환에 전문성이 있습니다. 스타트업부터 글로벌 기업까지 다양한 조직의 성장을 함께 합니다.
현재 초기 스타트업들의 홍보를 맡은 PR 디렉터이자, 연세대학교 심리과학 이노베이션 대학원 사회혁신 심리트랙에서 심리학을 공부하며, “일하는 마음”의 구조와 번아웃, 회복에 대해 탐구하고 있습니다. PR 전문가로서의 경험과 심리학적 시각을 접목해, 직장인의 정신건강과 건강한 조직문화에 관한 이야기를 글과 영상으로 전하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