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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생이라고요? 매일 무력감을 느낍니다.

겉은 의욕적이고 도전적이며 성취하는 사람 같지만, 침대 붙박이일 뿐입니다

by 카리나

작가, 화가 그리고 저의 전 직장상사이자 이제는 멘토 언니인 김유미 작가님이 지어주신 별명이 있습니다. 바로 '유노 아영'인데요. 동방신기 멤버인 유노윤호가 열정의 대명사로 불리던 10년 전, 그 당시 팀장님을 비롯한 많은 분들이 그렇게 불러주시더군요.


연차가 12년 차인 지금.

그때를 회상해 보면 주니어 시절이라 더 의욕적이었던것 같아요. 무엇이든 열심히 했기에 받을 수 있었던 좋은 별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니어가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칭찬이라고 생각하고 늘 감사하게 생각하며 살고 있어요. (그 당시의 유노윤호 기준입니다.PERIOD 선 긋는거 맞아요..)


지금도 가끔씩 지인분들에게 "아영이는 참 열심히 살아. 늘 뭔가 하고 있어."라는 이야기를 종종 듣습니다. 예전에는 이런 칭찬을 들으면 조금 씁쓸했습니다. 왜냐하면..


학창 시절 '공부 열심히 하지만 성적 안 나오는 애'와 같이 들릴 때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만큼 슬픈 게 없죠. 이런저런 커리어 활동을 했는데도 소위 남들이 알아주는 기업에 가지 못한 것. 스포트라이트 한 번 못 받은 것.


어머. 너 대기업 못간거 여러 번 언급하는 것으로 봐서 꽤나 미련이 있나 보네 -라고 생각하실 수 있을 겁니다. 없다고는 못하겠네요. ㅎㅎ


사실 또래에 비해 오래 걸렸지만, 한양대 광고홍보학과에 진학했다는 자부심도 있고요. 연세대 심리과학 대학원도 가서 솔직히 뿌듯합니다. 네임벨류 많이 따진다고요? 네, 깔끔하게 인정합니다.


저희 부모님도 소위 명문대에 약대 출신이었기 때문에 사실, 누군가에게는 실례가될 수도 있지만 좋은 대학에 가서 괜찮은 직업을 갖는게 저에게는 당연한 일이었어요. 좋은 환경에서 태어났기에 삶에게 거는 기대와 수준이 높았습니다.


뭐, 인생은 상대적인 것이라서, 서울대 집안, 아이비리그 집안에게는 한참 모자랄 수도 있지만, 강남에서 태어나 서초에서 30년 살아온 인생은 꽤 괜찮은 인생이었어요. 그런 점에서는 부모님께 감사하죠.


자격지심이었을까요? 동기들은 다들 글로벌 에이전시에서도 잘 버티고, 결국 대기업을 갔지만 저는 안되더라고요. 그래서 할 수 있는건 제가 잘하고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글쓰기요.


브런치도 쓰고, 인스타그램도 1.6k에, 블로그 방문자는 얼마 전 100만을 돌파했지만, 저는 여전히 '열심히'하는 사람일 뿐입니다. 소위 사회에서 알아주고 조명해 주는 대기업 출신의 엘리트도 아니고, 그저 살아남고자 발버둥 치는 '프로N잡러'에 가깝죠.


여담이지만, 그나마 다행인 건, 뭔가 시작하면 잘 멈추지 않아요.

솔직히 콘텐츠 만드는 거 재미있어요. 할 이야기도 많고요. (타고난 이야기꾼..??)

모두 공개하지 않았지만 평범하지만 비범한 인생의 서사도 꽤 있습니다. (아니 그렇게 많이 공개했는데 아직도 있다는건..?ㅎㅎ)


하고 싶은 말을 다양한 플랫폼에서 해당 콘텐츠의 톤 앤 매너로 전하는 것? 저만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며 꽤나 즐기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브런치에서도 500여 명의 구독자, 유튜브도 200여 명의 팬들을 만들어가면서 활발한 콘텐츠 활동을 하고 있는데요.


용기내서 하나더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하루에도 수 십 번씩 제가 하는 이 활동 모두를 포기하고 싶습니다. 갓생이요? 어머나.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 하루는 또 어떻게 버티지'라는 생각과 함께 이불속에서 나오기 힘들어합니다. 가능한 한 모든 걸 미루고 싶고, 이불 밖으로 나가는 게 세상에서 가장 힘든 사람 중 하나입니다. '무기력'과 '무력함'을 인간화하면, 오전 6시에 눈을 뜬 카리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일어나 이렇게 글을 쓰는 건, 도대체 어떤 대단한 마음가짐 때문일까요?




침대에 누워 '의미'를 찾고 있나요?


결론부터 말하면, 아무 생각 없을 때 가장 잘 일어날 수 있습니다.

과거의 저는 이불속에서 눈을 껌뻑이며 아침부터 치열한 전투를 벌였습니다. '일어나야 한다'는 마음과 '더 눕고 싶다'는 마음의 전쟁터였죠. 특히 무력감이 덮쳐올 때면, 제 뇌는 미친 듯이 '의미'를 찾기 시작합니다.


"내가 지금 일어나서 글 하나 더 쓴다고 뭐가 달라지나?"

"이렇게 고생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지? 어차피 결국엔 또 지칠 텐데."


우리는 무력감을 이겨보려고 비장한 '마인드셋'을 하려 합니다. 하지만 심리학적으로 볼 때, 에너지가 바닥난 상태에서 '삶의 의미' 같은 고차원적인 사고를 하려는 건 방전된 배터리로 고사양 게임을 돌리는 것과 같습니다.


결국 과부하가 걸린 뇌는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최악의 결론을 내립니다. "아무 의미 없어. 그냥 자자." 의미를 찾으려 할수록 몸은 더 무거워지고, 무력감은 깊어지는 역설. 이게 바로 우리가 침대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의욕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


그렇다면 어떻게 이불을 걷어찰 수 있을까요?

답은 '행동 활성화(Behavioral Activation)'에 있습니다. 우울증 치료의 핵심 기법이기도 하죠.


우리는 흔히 '의욕(Motivation)이 생겨야 → 행동(Action)을 한다'라고 착각합니다. 그래서 의욕이 생길 때까지 침대에 누워 천장만 바라보죠.


하지만 뇌과학적 진실은 정반대입니다.

행동(Action)을 먼저 하면 → 뇌가 '어? 움직이네?'라고 인지하고 → 의욕(Motivation)이 생깁니다.

자동차 시동이 안 걸린다고 차 안에 앉아서 기도만 하고 있으면 안 됩니다. 내려서 밀기라도 해야 엔진이 걸리죠. 우리 뇌도 똑같습니다. "하기 싫다"는 생각이 들어도 일단 몸을 움직여야 뇌의 측좌핵이 자극받아 도파민이 나옵니다.




그런데, 나를 구원한 건

'이불 개기'가 아니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유튜브 동기부여 영상에서 단골처럼 나오는 "아침에 일어나 이불부터 개라"는 조언조차 저에겐 버거웠습니다. 무력감이 온몸을 짓누를 땐, 이불의 각을 잡는 행위조차 사치스러운 노동처럼 느껴지거든요.


그래서 저는 저 자신과 아주 비굴하고(?) 소소한 협상을 시작했습니다. 거창하게 벌떡 일어나는 게 아니라, 일단 껌뻑이는 눈을 뜨고 스스로를 어르고 달래는 것입니다. 마치 등원하기 싫어하는 다섯 살짜리 아이를 달래듯이요.

"아영아, 일어나는 거 힘든 거 알아.
그러니까 우리 딱 앉아만 있자.
앉아 있다가 정 힘들면 다시 눕자.
괜찮아, 다시 누워도 아무도 뭐라 안 해."


목표를 '기상'이 아니라 '좌식'으로, 아니 그보다 더 낮게 '일단 앉았다가 힘들면 다시 눕기'로 낮춘 겁니다.

실패할 확률이 0%인 제안이죠.

그런데 신기한 일이 벌어집니다. 스스로를 달래서 겨우 상체를 일으켜 앉혀 놓으면, 막상 다시 눕는 게 귀찮아집니다. 앉은 김에 물이나 한 잔 마실까 싶고, 물 마신 김에 식탁에 앉게 되죠.


셀리그먼이 말한 '통제감'은 대단한 성취에서 오는 게 아니었습니다.

"힘들면 다시 눕자"라고 나에게 허용해 주는 자비,

그리고 실제로 몸을 일으켜 앉은 그 사소한 행동이 '누워있기'라는 강력한 관성을 깨뜨린 것입니다.




일단, 상체만이라도 일으켜볼까요?


'어차피 안 될 거야'라는 생각은 머릿속에서 싸워서 이길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몸을 움직여야 사라집니다. 설령 다시 눕더라도 말이죠. (딱 이 마인드셋을 기억하세요!)


오늘 하루, 대단한 성취를 이루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당신은 그 무거운 중력을 거스르고 상체를 일으켰고, 앉아 있었고, 밥을 챙겨 먹었습니다. 그 정도면 충분히 위대한 승리입니다.


자, 거창한 다짐은 다 접어두고, 우리 딱 하나만 약속할까요?

"일단 앉아나 보자. 정 힘들면 다시 눕지 뭐."

우리의 위대한 탈출은 바로 그 헐렁한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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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카리나는..

글로벌 PR과 콘텐츠 마케팅 분야에서 활동해 온 12년 차 홍보/콘텐츠 마케터입니다. IT, 헬스케어, 유통 산업 전반에서 브랜드 론칭과 리드 전환에 전문성이 있습니다. 스타트업부터 글로벌 기업까지 다양한 조직의 성장을 함께 합니다.

현재 초기 스타트업들의 홍보를 맡은 PR 디렉터이자, 연세대학교 심리과학 이노베이션 대학원 사회혁신 심리트랙에서 심리학을 공부하며, “일하는 마음”의 구조와 번아웃, 회복에 대해 탐구하고 있습니다. PR 전문가로서의 경험과 심리학적 시각을 접목해, 직장인의 정신건강과 건강한 조직문화에 관한 이야기를 글과 영상으로 전하려 합니다.


https://litt.ly/kar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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