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대로 조용히 혼자 높은 기대 잣대를 들이댔던 나, 과연 이번엔..
이번 브런치북을 쓰며 얻은 가장 큰 수확은 나 자신을 조금 더 알게되었다는 것입니다.
원래 <퇴사 대신 심리학 석사를 시작했다>의 흐름은 초반 챕터에서 직장에서 누구나 경험할만한 사례로 공감을 얻고, 중반부에서는 이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한 후, 마지막에서는 직장인 정신건강 시장을 조사해보고 해당 시장의 인사이트를 전달하면서 브런치 멤버십을 시도해보려고 했습니다.
역시나, 마음먹은대로 흘러가지 않더군요.
여담이지만, 브런치북의 흐름도 기획의도대로 되지 않았는데, 촘촘한 계획을 세워서 인생을 제가 하고자 하는대로 만들려고 했던 것은 어쩌면 큰 욕심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여, 가장 가까워진 단어는 바로 '기대', 그리고 '기대관리'입니다.
제가 생각보다 기대와 실망을 자주하고, 기대와 실망의 과정을 반복하며 지난 40년을 살아왔더라고요.
조용히 기대하고, 조용히 실망하면서 의도했든 의도치 않았든 인간관계도 많이 정리했다는 것을 깨달았고요.
스스로에게 굉장히 높은 잣대를 들이밀고 성취하라고 했던 것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번 브런치북을 쓰면서 '기대'에 대한 메타인지를 얻게되었습니다.
특히, 직장생활에서 가장 많이 기대하고 실망하는 과정을 반복했더군요.
새로운 사람을 만나거나 새 직장에 합류 후, 우당탕탕 이런저런 경험을 하면서 느꼈던 감정은, 그 본질을 살펴보면 분노도 슬픔도 아닌 '실망'이었습니다.
- 유능했다고 생각했던 상사 혹은 동료가 내가 생각하는 기준(그 당시에는 보편적이라고 생각했던 기준)만큼 일을 처리하지 못할 때
- 기대했던 회사가 생각보다 체계가 없었을 때
- 분명 학력이 좋고 대기업 출신이라고 해서 어느정도 기본 직장예절, 생활 예정은 있을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은 모습을 계속 목격했을 때
-무엇보다도, 나 자신이 목표한 만큼 해내지 못했을 때
이 모든 순간, 저는 슬프거나 괴롭기보다는 큰 실망의 감정을 느껴왔습니다.
그렇다면, 기대치를 낮추면 과연 해결이될까요? 무엇보다, 기대치를 낮추는게 제가 가능할까요? 사람들 말대로 기대치를 좀 낮춰서 편해지면 제 마음이 과연 편할지 궁금합니다. 억지로 기대를 낮추면 비참해지거나, 대충 사는 것 같아서 견딜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렇다면 이쯤에서 생각해봅니다. 왜 이렇게 저의 기대치는 높게 설정이 된걸까요?
가만히 생각해보니, 저는 매 순간에.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저처럼 진심을 담아서 살아왔을 거라 생각하고, 순간에 저처럼 자신의 모든 최선을 다한다고 생각하고 살아왔습니다. 그러니까 번아웃이 왔겠죠? 사람이 대충대충하는 순간도 있고 기대를 하지 않아도 되는데 그렇게 진심을 매 순간 담아서 움직이고 내가 한 만큼 남도 그렇게 하리라는 기대를 하니, 몸과 마음이 남아나지 않죠.
오늘은 저처럼 실망하는 게 취미가 되어버린, 하지만 그 누구보다 잘하고 싶은 당신을 위해 변명 아닌 변명을 해보려 합니다.
사실, 기대치가 높다는 건 '욕심'이 많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건 우리가 삶을 대하는 태도가 만들어낸, 어쩔 수 없는 '관성' 같은 것입니다.
첫째, 스스로에게 적용하던 '최선'의 기준이 타인에게도 향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적어도 저는..ㅎㅎ) 늘 "최선을 다해야 한다", "책임감 있게 해야 한다"는 기준을 가지고 치열하게 살아왔습니다. 내가 100을 투입하면 100이 나오는 삶을 살려고 노력했죠. 그러다 보니 무의식적으로 타인과 세상도 그 정도의 온도로 살 거라고 믿어버린 겁니다.
"나는 이렇게 하는데, 상대도 어느 정도는 하겠지?"라는 생각, 그것은 오만이 아니라 나의 성실함이 만들어낸 순진한 믿음이었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결코 그렇게 돌아가지 않죠. 세상에 나와 같은 마음가짐을 한 사람만 살았다면, 그것도 참 이상할 것 같아요. (이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편합니다.)
둘째, '현재'보다 '가능성'을 먼저 보는 눈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현실에 안주하기보다 성장을 꿈꾸는 미래지향적인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사람이나 회사를 볼 때도 있는 그대로의 모습보다, "이 사람이라면 더 잘할 수 있을 텐데", "이 회사라면 더 성장할 텐데"하며 잠재력을 먼저 봅니다. 남들보다 조금 앞선 상상력, 그 가능성을 믿는 마음이 역설적으로 현실에 대한 실망을 불러온 것이죠.
셋째, 무엇보다 '성취의 역사'가 기준선을 높여놓았습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밤을 새우며 작은 성취들을 쌓아 올린 경험이 있기에, 우리는 압니다. '하면 된다'는 것을요. "난 지금까지 이렇게 해냈으니까"라는 내적 스크립트가 우리의 베이스캠프를 이미 높은 곳에 지어버린 것입니다.
즉, 우리의 높은 기대치는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그건 치열하게 살아온 당신의 삶이 당신에게 달아준 훈장이자, 그 뒤에 드리운 그림자입니다.
하지만 인정해야 할 냉정한 진실이 있습니다.
이 '성장의 동력'이 현실과 충돌할 때, 때로는 나 자신과 타인을 찌르는 날카로운 흉기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이상과 현실의 괴리(Ideal-Real Gap)'에서 오는 스트레스라고 설명합니다.
① 자신을 향한 흉기: 자기 착취와 번아웃
높은 기대치는 '자기 검열'을 강화합니다.
"더 잘해야 해", "이 정도로 만족하면 안 돼"라는 내면의 목소리는 우리를 끊임없이 채찍질합니다. 이는 이번 브런치 북에서 다룬 '번아웃'과 '성취 중독'으로 직결됩니다. 만족할 줄 모르는 마음은 성취를 해도 도파민(기쁨)을 주지 않고, 코르티솔(스트레스)만 분비하게 만듭니다.
② 타인을 향한 흉기: 관계의 단절과 고립
더 큰 문제는 관계입니다.
내가 보는 타인의 '잠재력(미래)'은 저기 앞에 가 있는데, 타인의 '행동(현재)'은 아직 여기 머물러 있습니다. 이러한 시차(Time Lag)를 견디지 못할 때, 우리는 상대를 다그치거나 비난하게 됩니다.
"왜 저것밖에 못 하지?"라는 판단은 상대방에게 '가스라이팅'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결국 주변 사람들에게 "저 사람은 맞추기 힘든 사람이야"라는 평가와 함께 고립을 자초하게 됩니다. 실제로 회사에서 결국 소외되는 것을 경험해보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기대를 버리고, 기준을 낮춰야 할까요?
아니요. 솔직히 이런건 전 잘 안되더라고요. ㅎㅎ
억지로 "기대하지 말자", "대충 살자"고 다짐하는 건, 성장 지향적인 우리에게 맞지 않는 옷입니다. 오히려 자기비하로 이어질 뿐이죠.
해결책의 핵심은 기대의 '높이'를 낮추는 게 아니라, 기대의 '속도'를 조절하는 것입니다.
내 머릿속 시뮬레이션은 5G 속도로 완벽한 미래를 그려내지만, 현실의 변화는 3G 속도로 느리게 따라옵니다. 이 속도의 차이를 '실망'이 아닌 '로딩 중'이라고 재정의해 보세요.
"저 사람이 못하는 게 아니라, 아직 로딩 중이구나."
이 인지적 완충지대가 분노를 기다림으로 바꿔줍니다.
사실, 타인에게 적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러한 로딩시간이 있음을 내 자신이 가장 먼저 인지해야 합니다. 아직 짧지만 그래도 거의 40년 살아보니, 최근 3년 사이에 저도 나이가 들었는지(?) 안하던 실수를 하더라고요. 말이나 행동도 조금 느려지고요. 스스로에게도 로딩 시간을 허용해야 = 스스로에게 자비로워야 조금 더 숨쉬고 살 수 있습니다.
사람이나 회사를 볼 때 "저렇게 되어야 하는데"라는 미래 필터를 잠시 끄세요.
대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듯, "지금 현재 모습은 이렇구나"라고 있는 그대로의 스냅샷을 찍어보는 겁니다. 실망은 언제나 '미래'를 '현재'에 덧씌울 때 발생합니다. 현재를 있는 그대로 수용(Acceptance)할 때, 비로소 진짜 변화를 위한 전략을 짤 수 있습니다.
내가 나에게 거는 기대의 속도를 조금만 늦춰주세요.
우리는 100미터 단거리 선수가 아니라, 인생이라는 마라톤을 뛰는 러너입니다. 지금 당장 100점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해서 실패한 것이 아닙니다.
높은 곳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여전히 아름답습니다. 다만, 그곳으로 향하는 우리의 발걸음이 조금만 더 다정하고, 조금만 더 여유로우면 좋지 않을까요? 가장 높은 곳을 바라보되, 걷는 걸음은 가장 다정하게. 이것이 제가 저와 이 글을 보고 있으신 독자분들에게 드리는 이야기입니다.
높은 기대를 품은 당신은 여전히 멋집니다.
다만, 그 기대가 당신을 해치지 않도록 속도만 조금 늦춰주세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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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카리나는..
글로벌 PR과 콘텐츠 마케팅 분야에서 활동해 온 12년 차 홍보/콘텐츠 마케터입니다. IT, 헬스케어, 유통 산업 전반에서 브랜드 론칭과 리드 전환에 전문성이 있습니다. 스타트업부터 글로벌 기업까지 다양한 조직의 성장을 함께 합니다.
현재 초기 스타트업들의 홍보를 맡은 PR 디렉터이자, 연세대학교 심리과학 이노베이션 대학원 사회혁신 심리트랙에서 심리학을 공부하며, “일하는 마음”의 구조와 번아웃, 회복에 대해 탐구하고 있습니다. PR 전문가로서의 경험과 심리학적 시각을 접목해, 직장인의 정신건강과 건강한 조직문화에 관한 이야기를 글과 영상으로 전하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