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면서도 출근하는 사람들

누군가를 키우며 세상을 단단하게 만드는 여자들의 일

by Karin an

나는 서울에서

아이를 키우며 다시 직장으로 돌아가는 여자들을

직업상 한동안 많이 만났다.


그들의 대부분은

마지막 수업 날, 울었다.


눈물의 이유는 늘 비슷했다.

“이게 맞는 선택인지 모르겠어요.”


아이 곁에 더 머물지 못한 미안함,

돈을 벌러 나가는 엄마가 되어버린 죄책감,

그리고 세상이 요구하는

‘좋은 엄마’라는 기준 앞에서

자꾸만 작아지는 마음.


나는 그때마다

그들의 등을 가볍게 밀어주었다.


“엄마가 한 걸음 나아가야

딸들은 다음에 조금 덜 힘들어요.”


그 말을 듣던 순간,

울던 눈빛이 잠깐 흔들리다

다시 제 자리를 찾던 얼굴들이

지금도 선명하다.



우리는 분명 예전과는 다른 시대를 살고 있다.

아들과 딸을 노골적으로 구분하던 시절은 지나갔다고 말한다.


그런데도

어느 개그 프로그램 속에서 패러디되는

‘아들 둔 엄마의 직장 생활’을 보며

나는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행동의 형태만 달라졌을 뿐,

권력과 보호를 향한 감각은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는 생각.


그래서일까.

내 편인 듯, 내 편이 아닌 상사들이 존재했고

여자는 여자에게 더 엄격해지는 장면들을

우리는 너무 자주 보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일하는 엄마는

예외가 아니라 일상이 되었다.


아이를 맡기고 출근하는 뒷모습은

망설임이 아니라

결단에 가깝다.


그 선택은

자기 자신만을 위한 것도,

누군가를 버리는 일도 아니다.


다음 세대가

조금 더 숨 쉬기 쉬운 땅을

미리 고르는 일에 가깝다.



물론 아직 완벽한 숲은 아니다.


유리천장은 여전히 존재하고,

출산 이후의 경력은

설명 없이 지워지기도 한다.


회의실 안에는

“여자가 얼마나 다니겠냐”는

말로는 하지 않지만

공기처럼 떠도는 질문이 남아 있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직장 여성의 10명 중 7명은

여전히 성차별을 경험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안다.

이 숫자가

우리의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흙이었지만

사라지지 않았다.


누군가를 키우며

동시에 세상을 단단하게 만들고 있었다.


보이도록 바꾸는 힘이

남성성이라면,

조용히 바꾸는 힘은

여성성의 방식일지도 모른다.


지금 울면서도 출근하는 여자들이

결국 세상을 바꾸고 있다는 것을

나는 믿는다.


소리 없이,

그러나 분명하게.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