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든다는 건, 다시 배우는 일

버티는 법이 아니라, 오래가는 법을 배우는 시간

by Karin an

내가 중년의 여성에 대해 처음 깊이 생각하게 된 건
국립암센터에서 유방암 환우들을 위한 무용 수업을 하러 갔을 때였다.


그곳에는
소위 말하는 ‘퍼펙트한’ 슈퍼우먼들이 많았다.


아이를 잘 키우고,
집안을 책임지고,
일도 놓지 않고,
늘 웃고,
늘 단단해 보이던 사람들.


그들이 암과 싸우고 난 뒤 장기적 추적검사를 하는 분들이었다.


수술을 받고도
몸을 쉬게 두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다.


수업 중간에 급히 나가야 한다며
시댁 과수원의 사과를 따러 간다고 말하던 분도 있었다.


그 힘든 수술을 겪고도
몸보다 역할이 먼저였던 것이다.


또 어떤 분은
네 번이나 재발을 겪었다.


그분은 조용히 말했다.

“재발 한번 할 때마다, 하나씩 내려놓게 되더라고요.”


그 말이 오래 남았다.


무엇을 위해 그렇게까지
완벽해지려 했을까.


지금 돌아보면
조금은 화가 난다.


그 완벽함이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


몸은 이미
충분히 신호를 보내고 있었는데
아무도, 심지어 본인조차
그 신호를 듣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그때 처음으로
여자의 몸과 삶에 대해 생각했다.


특히 엄마로서,

중년으로서 살아가는 몸에 대해.


젊을 때는
배우지 않아도 되는 것들이 있었다.


몸은 스스로 회복했고,
마음은 참고 넘기면 됐고,


역할은 많이 할수록 잘 사는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중년의 몸은
그 방식을 더 이상 허락하지 않는다.


회복은 느려지고,
피로는 오래 남고,
감정은 쌓인다.


이건 약해진 게 아니다.

문법이 달라진 것이다.


젊음은 확장하는 시간이라면,
중년은 조정하는 시간에 가깝다.


무엇을 더 붙잡을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내려놓아야
오래갈 수 있는지를 배우는 시간.


예전에는
버티는 것이 미덕이었지만

버티는 방식이
나를 먼저 닳게 만든다는 것을 알게 되는 시간이다.


그래서 나이 든다는 건
잃는 일이 아니라
다시 배우는 일처럼 느껴진다.


힘으로 사는 법에서
구조로 사는 법으로.

속도로 증명하는 법에서
리듬으로 존재하는 법으로.


중년은
무너지는 시기가 아니다.


몸이 더 이상 참아주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몸과 마음에 대해 배우게 되는 시기다.


어쩌면
우리는 너무 늦게 배웠는지도 모른다.


내 몸이 나보다 먼저
나를 지키려 했다는 사실을.


그리고 이제는
무엇을 더 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묻게 된다.


버티는 삶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삶을.


완벽해지는 삶이 아니라
덜 어내며 심플하지만 단단해지는 삶을.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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