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은 엄마의 시간을 통과하며 자란다
명절이 되어 오랜만에 본가에 갔다.
요즘 따라 이것저것 정리하는 엄마를 따라 창고 정리에 합류하게 되었다.
이제는 모두 휴대폰 사진첩만 쓰는 세상이지만
창고 한쪽에는 엄마의 진짜 사진첩이자 오래된 앨범들이 남아 있었다.
엄마는 그 앨범을 넘기며 말했다.
“그 많은 사진 중에 왜 이것만 남았을까.
너무 아쉽다.”
서운함이 잔뜩 묻은 엄마의 얼굴이
그날따라 유난히 하얗게 느껴졌다.
순간 엄마의 얼굴이 아니라
어딘가 할머니의 얼굴 같았다.
엄마와 함께
엄마의 젊은 시절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진 속 엄마는
주름도 없고
그 당시 최신 유행 옷을 입고
한껏 멋진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머리는 짧았고
표정은 당당했고
함께 찍힌 사람들과
한껏 즐거워 보였다.
나는 그 사진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 내가
내 젊은 시절 사진을 보며
“저때 더 신나게, 더 재미있게 살았어야 했는데.”
라며 아쉬워했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 순간 알았다.
돌아봄의 표정이
엄마와 나 사이에서
묘하게 닮아 있다는 사실을.
가족 구성원 중
남자들은 종종
아버지를 닮아간다는 말을 듣는다.
특히 가치관이나
살아가는 방식이 닮아간다고 한다.
여자들에게는
조금 다른 방식의 닮음이 있다.
많은 딸들은
엄마와 자신을 투사한다.
특히 젊을 때는
그 닮음을 필사적으로 거부한다.
“나는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
엄마의 삶이
너무 힘들어 보였거나,
너무 희생적으로 보였거나,
너무 참고 사는 삶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딸들은
엄마와 다른 삶을 꿈꾼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조금 이상한 일이 생긴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삶의 책임이 늘어나기 시작하면
엄마를 이해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어느 날
엄마가 했던 말을
내가 그대로 하고 있는 순간을 발견하기도 하고,
엄마의 표정과
내 표정이
너무 닮아 있는 것을 보기도 한다.
그럴 때 많은 딸들은
조금 놀란다.
하지만 이제 나는
그 닮음을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엄마를 닮는다는 것은
엄마의 삶을 그대로 따라간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저
생명체가 시간을 지나며
역할에 따라 변하는
자연스러운 과정일 뿐이다.
주름이 생기고
소중한 것들을 바라보는 표정이 깊어지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조금 더 단단해지는 일.
다만 우리는
엄마라는 가장 가까운 거울을 통해
그 시간을 먼저 보게 될 뿐이다.
어쩌면 삶의 순례를 닮아가는 것이
엄마와 딸의 관계인지도 모른다.
여자에게서 결혼과 임신, 출산은
많은 이들이 겪는 삶의 순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처럼
결혼과 출산을 하지 않는 삶을 선택한 사람에게는
조금 다른 시선이 생기기도 한다.
엄마와 닮지 않으려 했던 시간이
오히려 엄마를 이해하게 만드는 시간으로
바뀌기도 한다.
하지만 시대가 다르고
선택이 다르고
가능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엄마 세대가 버텨낸 삶 위에서
딸들은 조금 더 넓은 길을 걷는다.
그래서 엄마를 닮아 늙어간다는 것은
답습이 아니라
연결에 가깝다.
마치
수십 개의 원이
조금씩 다른 넓이로 이어지는
스프링처럼.
엄마의 시간이
딸의 시간으로 이어지고
딸의 삶은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간다.
세대란
그렇게
조금씩
앞으로 움직인다.
엄마의 주름은
그저 늙음의 흔적이 아니라
한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시간을 건네는 방식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딸들은
그 시간을 지나
자기 시대의 삶을
다시 만들어 간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응원하는 엄마들이 뒤에서 늘 응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