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을 때는 몰랐던 것들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
하지만 이제 뒤돌아 보니
우린 젊고 서로 사랑을 했구나
눈물 같은 시간의 강 위로
떠내려가는 건 한 다발의 추억
그렇게 이제 뒤돌아 보니
젊음도 사랑도 아주 소중했구나
언젠가는 우리 다시 만나리
어디로 가는지 아무도 모르지만
언젠가는 우리 다시 만나리
헤어진 모습 이대로
- 이상은/언젠가는 -
요즘 매체에서는
‘오지콤(아저씨 지만 컴플리트)’ 같은 단어까지 등장하며
마흔의 남자를 능력 있고 매력적인 나이로 묘사한다.
공유와 이동욱 같은 배우들이
마흔이 훌쩍 넘었음에도 여전히 멋지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어렸을 때도
양조위나 제레미 아이언스를 보며
나이가 들어도 저렇게 매력적일 수 있구나
막연히 느꼈던 기억이 있다.
그들의 중후한 분위기는
어린 나이에도 분명히 느껴질 정도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여자를 지칭하는 말에는
비슷한 표현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면서도
젊음을 유지하는 연예인의 비결을 묻는 질문은 많지만
마흔 이후에도 미혼으로
멋지게 살아가는 여성의 매력을 설명하는 단어는
좀처럼 만들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의 오래된 연애 이야기나
지나간 스캔들을 끌어오는 댓글들이
끝없이 달리곤 한다.
평균 이상의 아름다움과
빛나는 삶을 사는 연예인에게도 그렇다면
마흔 이후의
평범한 여성들의 삶에 대한 이미지는
얼마나 더 무겁고 퀴퀴하게 그려질까.
그래서인지
얼마 전 식당에서 들었던
40~50대 여성들의 대화가 떠오른다.
저녁을 먹으며
가볍게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지만
그 이야기의 분위기는
어딘가 삶에 대한 불만과 피로로 가득했다.
사실 술자리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나는 평소에도 비슷한 이야기들을
꽤 자주 듣는다.
마흔이 넘으면
사람들은 자주 청춘을 떠올린다.
특히 여성에게는
이 시기가 더 직접적으로 다가온다.
몸은 서서히 갱년기를 향해 움직이고
마음 역시, 이전과 다른 변화를 느끼기 시작한다.
마치
삶의 어떤 찬란한 계절이
서서히 끝나가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그래서 종종 후회를 한다.
왜 그때는 몰랐을까.
왜 더 용감하지 못했을까.
왜 더 열심히 살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은
미혼이든 기혼이든 크게 다르지 않다.
누군가는 결혼을 선택한 것을 후회하고
누군가는 결혼하지 않은 것을 고민한다.
누군가는 일에 대해
누군가는 관계에 대해
각자의 방식으로
삶을 돌아본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젊은 시절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비로소 이해하게 된다.
그 시절의 나는
지금의 내가 아니었다는 것을.
지금처럼 차분하지도 않았고
지금처럼 이해심이 많지도 않았고
지금처럼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도 없었다.
그때의 나는
그저 미숙했고
실수투성이였고
때로는 창피한 선택도 많이 했다.
하지만 한 가지는 기억해야 한다.
그 시절의 우리는
언제나 그때의 나에게 가능한 최선의 선택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지금의 내가 보기에는
어리석어 보일 수도 있지만
그때의 환경과
그때의 조건과
그때의 마음 안에서는
분명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었다.
그래서 그 모든 시간은
지금의 나를 만드는 밑받침이 되었다.
청춘은
완벽한 시기가 아니었다.
오히려
실수와 창피함이 가득한 시기였다.
그래서
마흔 이후의 삶은
흔들리지 않는 삶이라기보다
다시 일어나는 삶에 가깝다.
넘어졌던 시간을
조금 더 이해하고
자신에게
조금 더 너그러워지는 시간.
불혹이란
흔들리지 않는 나이가 아니라
넘어지고도
다시 일어나는 법을 배우는 나이인지도 모른다.
김미경 씨가 강의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사람이 정말 성숙해진 뒤에 출산을 해야 한다면
아마 그 나이는 50살쯤일 거예요.”
그때는
모두 함께 웃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말이 꼭 농담만은 아니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