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은 또 돌뿐이다.
때가 되면
나무는 모든 것을 내려놓는 순간을 맞는다.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충분히 살아낸 계절이 지나가면
추워지는 시간 속에서
잎사귀를 하나둘 떨군다.
화려했던 것들은 사라지고
결국 남는 건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나무 본연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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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기의 나무는
밖에서 보기에는
살아 있는지조차 알기 어렵다.
마른 것처럼 보이고,
멈춘 것처럼 보이고,
어쩌면 이미 끝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 시간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견디고 있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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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자신의 시간을 알고 있다.
언제 잎을 피우고,
언제 꽃을 내고,
언제 열매를 맺고,
언제 내려놓아야 하는지.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을
매년 반복한다.
한 번 태어나
한 계절만 버티고
사라지는 나무는 드물다.
대부분의 나무는
여러 번의 계절을 지나며
자신의 시간을 이어간다.
사람도
다르지 않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여러 번 잃는다.
관계도,
몸의 감각도,
익숙했던 모습도
어느 순간
하나씩 내려놓게 된다.
그때 우리는
자주 착각한다.
이제 끝난 것 같다고.
더 이상 예전 같지 않다고.
하지만
그건 끝이 아니라
계절이 바뀐 것뿐이다.
나무가 잎을 잃었다고 해서
죽은 것이 아니듯
사람도
무언가를 잃었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시간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다른 방식의 생존이다.
그래서 살아낸다는 것은
항상 무언가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까지
버텨내는 일에 가깝다.
보이지 않는 시간,
설명할 수 없는 시간,
누군가에게는 멈춘 것처럼 보이는 시간까지
그 모든 시간을
통과하는 것.
하나의 옹이가 나무를 두꺼워지게 하는
시간은 나이테는 우리와 같다.
그게
살아내는 일이다.
우리는
한 번의 계절로 끝나는 존재가 아니다.
그래서 오늘도
조금 느리더라도,
조금 마른 것처럼 보일지라도,
여전히
지나가고 있는 중이다.
그래도,
살아내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