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그래도 살아 낸다.

계절은 또 돌뿐이다.

by Karin an

때가 되면

나무는 모든 것을 내려놓는 순간을 맞는다.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충분히 살아낸 계절이 지나가면


추워지는 시간 속에서

잎사귀를 하나둘 떨군다.


화려했던 것들은 사라지고

결국 남는 건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나무 본연의 모습이다.



그 시기의 나무는

밖에서 보기에는

살아 있는지조차 알기 어렵다.


마른 것처럼 보이고,

멈춘 것처럼 보이고,

어쩌면 이미 끝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 시간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견디고 있는 시간이다.



나무는

자신의 시간을 알고 있다.


언제 잎을 피우고,

언제 꽃을 내고,

언제 열매를 맺고,

언제 내려놓아야 하는지.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을

매년 반복한다.



한 번 태어나

한 계절만 버티고

사라지는 나무는 드물다.


대부분의 나무는

여러 번의 계절을 지나며

자신의 시간을 이어간다.



사람도

다르지 않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여러 번 잃는다.


관계도,

몸의 감각도,

익숙했던 모습도


어느 순간

하나씩 내려놓게 된다.



그때 우리는

자주 착각한다.


이제 끝난 것 같다고.


더 이상 예전 같지 않다고.


하지만

그건 끝이 아니라


계절이 바뀐 것뿐이다.


나무가 잎을 잃었다고 해서

죽은 것이 아니듯


사람도

무언가를 잃었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시간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다른 방식의 생존이다.


그래서 살아낸다는 것은


항상 무언가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까지

버텨내는 일에 가깝다.


보이지 않는 시간,

설명할 수 없는 시간,

누군가에게는 멈춘 것처럼 보이는 시간까지


그 모든 시간을

통과하는 것.


하나의 옹이가 나무를 두꺼워지게 하는

시간은 나이테는 우리와 같다.


그게

살아내는 일이다.



우리는

한 번의 계절로 끝나는 존재가 아니다.


그래서 오늘도


조금 느리더라도,

조금 마른 것처럼 보일지라도,


여전히

지나가고 있는 중이다.



그래도,

살아내고 있는 중이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