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에 남은 옹이처럼
어느 날 아침부터 느꼈다.
매일의 몸이 다르다.
매일의 아침이 다르다.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은
수면의 질이나 잠의 시간 때문일까
생각했지만,
어느 순간 그것은 예외가 아니라
일상이 되었다.
무리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회복에는 시간이 더 걸렸고,
하루를 버텼을 뿐인데
다음 날까지 피로가 남았다.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다만
그전까지는 한 번도
몸을 이렇게 의식하며
살아본 적이 없었을 뿐이다.
젊을 때의 몸은
앞으로만 나아가는 법을 알고 있었다.
아프면 참고,
피곤하면 밀어붙이고,
버티면 다음 단계로
갈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어느 시점부터
몸은 다른 방식으로
신호를 보내기 시작한다.
더 이상 밀어붙이지 말라고,
예전의 방법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고.
그때부터
나이 든다는 건
잃는 일이 아니라
다시 배우는 일처럼 느껴졌다.
이제는
얼마나 할 수 있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회복할 수 있는지가 중요해지고,
얼마나 빨리 가느냐보다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는지가
기준이 된다.
이 변화는
결혼한 여자에게만 찾아오는 것도,
아이를 낳은 여자에게만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시간을 통과한 몸이라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찾아온다.
역할이 많았던 사람일수록
몸은 더 오래 참아왔다.
관계를 먼저 생각했던 사람일수록
자기 신호를
나중으로 미뤄왔다.
그래서 중년의 몸은
갑자기 약해진 것이 아니라,
그동안 나에게
말을 아껴왔던 것이다.
이제부터의 이야기는
누군가의 아내로서,
누군가의 엄마로서,
혹은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은 사람으로서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제부터는
시간이 남긴 흔적을
몸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의 이야기다.
나이 든다는 건
끝이 아니라,
새로운 문법을
익히는 일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