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게, 사랑이 버겁다.
지금도 나는 가끔 내 몸의 신호를 놓친다.
그러면 예전처럼 괜히 주변이 날 힘들게 하는 것 같고
기분이 가라앉는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감정은 마음에서 시작되는 게 아니라,
몸에서 올라오는 신호라는 것.
감정이 버거운 날,
그건 마음이 약해진 게 아니라
몸이 ‘그만 좀 쉬자’고 말하는 것일 수 있다.
그럴 땐 몸부터 챙기자.
감정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감정은 근육과 닮았다.
지속하려면 에너지가 필요하고,
유지하려면 회복이 필요하다.
특히 아이를 키우는 여성들에게는
‘하루의 감정 노동’이
육체노동만큼이나 무겁게 다가온다.
그 무게를 견디려면
스스로 회복할 수 있는 몸의 바탕이 필요하다.
작은 말에도 날카롭게 반응하게 되는 날이 있다.
사랑을 하고 있는데도, 외롭고 버거운 날이 있다.
마음은 여전히 그 사람에게 있는데,
자꾸 짜증이 나고, 대화가 피곤하게 느껴진다.
사랑보다 피로가 먼저 앞설 때,
나는 그 이유를 체력에서 찾았다.
한때, 정말 늘 화가 났던 시기가 있었다.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모든 일상에 짜증이 났다.
허리가 아프기 시작할 때였다.
아픔은 모든 일상의 움직임을 멈추게 했다. 앉을 때도, 걸을 때도 허리 속 깊은 곳에서 통증이 순간순간 송곳으로 누가 나를 찌르는 느낌이었다.
기침할 때도, 의자에 앉는 일도, 화장실 가는 것조차 불편하고 두려웠다.
아프다는 게, 단지 몸의 ‘통증’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걸
그때 처음 실감했다.
통증은 몸이 아니라 마음으로 순식간에 퍼졌다.
나중에 알았지만 통증은 감정의 영역이다.
통증이 퍼트린 참을 수 없는 부정적인 감정은 내 안에 가득 차고도 멈추지 않았다는 것이다.
통증은 단지 신체의 문제를 넘어마음을 무너뜨리는 힘이 있었다.
나는 그 시기에 만나던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꾸만 화를 냈다.
그가 말 한마디를 하면, 작은 말에도 날카롭게 반응했다.
서운함은 쌓이고, 대화는 피로해졌다.
내 몸은 아팠고, 그 아픔은 결국 감정의 여유를 다 깎아먹고 있었다.
나는 그걸,
센터에 찾아오신 수많은 회원들과의 만남에서도 반복해서 본다.
“애가 뭘 잘못한 건 아닌데, 그냥 내가 지쳐서 그런가 봐요.”
“말 한마디에도 욱하게 되고, 혼자 후회도 많아졌어요.”
“그냥 체력이 안 따라줘서 내가 지쳐서 그런가 봐요”
말은 감정에서 나오지만,
그 감정은 몸의 상태에서 나온다.
체력은 감정을 지탱하는 바닥이고,
몸이 단단할 때 마음도 덜 흔들린다.
그래서 감정이 힘들어질 때는
그 감정을 붙잡기 전에 몸을 살펴야 한다.
"내가 지금 어딘가 아프고 있는데 무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요즘 내가 너무 안 쉬고 있는 건 아닐까?”
“제대로 먹고 자고 있는가?”를 먼저 물어야 한다.
몸이 아프고 지치면, 감정도 쉽게 무너진다.
에너지가 모자라면, 이해심도 줄어든다.
좋은 마음을 유지하는 데도 몸의 근력과 체력이 필요하다.
운동은 그래서 내게
몸을 단련하는 수단이 아니라,
감정을 회복하는 방법이 되었다.
내 몸이 다시 편해지자,
감정도 덜 격해졌다.
말투가 부드러워지고,
상대의 말에 여유 있게 반응할 수 있게 되었다.
감정이 버겁다고 느껴질 때,
그건 내 마음이 약해진 게 아니라,
몸이 나에게 쉬자고 말하고 있는 것일 수 있다.
그럴 땐 먼저 내 몸을 돌보자.
그러면, 감정도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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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은 근육과 비슷하다.
지속하려면 에너지가 필요하고,
유지하려면 회복이 필요하다.
특히 아이를 키우는 여성들에겐
‘하루의 감정 노동’이 육체노동만큼 무겁게 다가온다.
그리고 그 무게를 이겨내기 위해선
스스로를 회복할 수 있는 몸의 바탕이 필요하다.
운동은 그런 의미에서
‘몸을 움직이는 시간’이라기보다는
‘감정을 회복하는 바탕’이 되어준다.
내가 단단해질수록
감정도 덜 흔들리고,
예민함보다 여유가 조금 더 자주 찾아온다.
누구나 지치는 날이 있다.
그러니 내가 오늘 조금 무너졌다고
스스로를 탓할 필요는 없다.
다만, 감정이 흔들릴 때
감정이 버거울 땐, 몸부터 살피는 게 빠르다.
체력이 감정을 지탱할 수 있을 때,
우리는 관계 안에서도 덜 흔들린다.
사랑도, 결국 에너지가 있어야 지속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