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나의 몸을 살펴보는 습관 만들기
버튼처럼 모드가 바뀌면 얼마나 좋을까?
이건 제가 살면서 자주 하는 생각이에요.
일할 때는 똑 부러지고 싶고,
쉴 때는 말랑말랑하고 싶고,
사람들 앞에서는 씩씩하고,
혼자일 때는 부드럽고 싶은 마음.
근데 현실은 다르죠.
성격이라는 건 스위치처럼 탁탁 바뀌지 않으니까요.
저는 굉장히 진취적이고 행동이 빠른 사람이에요.
새로운 일에 겁이 없고, 주도적으로 움직이고,
어떨 땐 너무 단도직입적이라는 말을 듣기도 해요.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누군가를 만날 때—
특히 소개팅이나 관계를 시작할 때는
그런 저의 면모가 ‘센 사람’, ‘벽이 있는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하더라고요.
그럴 때마다 생각했죠.
“조금 더 조용하고, 부드러운 사람이었다면 어땠을까?”
그런데…
그건 결국 내가 아닌 모습이잖아요.
이걸 느끼면서 문득 ‘몸’도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요즘 피트니스나 운동 쪽 마케팅을 보면,
너무나 자주 이런 문구가 보입니다.
“이 운동만 하면 당신도 이 몸을 가질 수 있어요.”
“이 선생님처럼 되고 싶지 않나요?”
사실 그런 광고를 보면, 저조차도 자극을 받아요.
그리고 어느새 나도 모르게 내 몸을 타인의 기준에 맞추려 하고 있죠.
하지만 정작 중요한 건,
내 몸의 구조, 성향, 회복 속도, 감각 자체가 모두 다르다는 사실이에요.
우리는 저마다 다른 몸을 타고났어요.
누군가는 근육량이 쉽게 붙고,
누군가는 유연성이 타고나고,
어떤 사람은 느리지만 깊은 움직임을 잘하고요.
그런데도 우리는 마치 정답처럼 제시된 하나의 몸을 따라가려 애쓰죠.
이건 마치, 모든 사람이 같은 성격이 되어야 한다는 말과 같아요.
말이 안 되잖아요?
몸도 성격처럼,
내가 자주 쓰는 움직임,
익숙한 감각,
그리고 나에게 어울리는 습관으로 만들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운동은 단순히 ‘하는 시간’이 아니라,
몸의 언어를 다시 배우는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나에게 어울리는 모드를 찾아가고,
내 몸만의 방식으로 살아가게 해주는,
매우 사적인 시간이죠.
그래서 저는 이제 이런 말을 자주 해요.
“필라테스는 당신을 누군가처럼 만드는 게 아니라,
원래의 당신을 더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과정이에요.”
조금 느리더라도,
조금 다르게 생겼더라도,
그게 진짜 나의 몸이라면
그대로 아름답고 가치 있어요.
버튼처럼 바뀌지 않는 몸.
그 속에 진짜 내가 살아있다는 걸
우리는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오늘도, 나다운 속도로
조금씩 움직여볼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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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기준보다,
나의 기준에 귀 기울이는 시간이
몸에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운동으로 자신을 살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