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론과 예지론, 운명과 과정 사이에서

운명도 미리 알 수가 있나요?

by Karin an


30대 무렵, 나는 문득 내 인생이 이미 정해져 있고, 그 길을 따라 살아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자주 했다. 어릴 적부터 엄마가 점을 보셨기 때문이다.


“몇 살에는 이런 걸 조심해야 해.”
“그 나이에는 이걸 하지 말아야 해.”


그런 말들을 반복해서 들으며 자란 나는, 마치 인생이라는 책이 이미 누군가에 의해 집필되어 있고, 나는 그 책의 페이지를 순서대로 넘기는 독자에 불과한 듯 느껴졌다.

엄마가 운명론을 믿게 된 데에는 분명한 계기가 있었다. 큰 사고를 당해 생사의 갈림길에 섰을 때, 이미 세 명의 주위에 명리나 사주를 취미 삼아하던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큰 사고가 올 운명”을 말했지만, 무시한 끝에 실제로 사고를 당하신 것이다. 그 순간부터 엄마는 삶이란 결코 우연이 아니라 ‘이미 짜인 운명’의 필연이라는 믿음 속에 살게 되셨다.


동양에서는 조금 다르게 접근한다. 명리학은 흔히 ‘사주팔자’로 단정하는 미신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인간의 성향을 파악하는 틀이자, 삶의 주기와 리듬을 읽어내는 도구에 가깝다.

강헌선생님이 말했듯, 이는 동양판 MBTI처럼 나를 이해하고 맞는 성향에 일과 인연을 만나는 것이 명리학의 주 역할이다. 즉 메타인지의 개념이지 토속신앙과 섞지 마라고도 이야기하는데 이건 강헌 선생님의 이론 같다.

여하튼 명리라는 오행의 성향은 타인을 이해하는 언어일 수도 있다.


나도 이것이 궁금해서 명리학을 공부했지만 어쨌든 나의 선택은 오히려 가톨릭으로 종착되었다.

(언젠가 이 이야기도 한번 적어보겠다.)



서양의 예정론과 예지론

최근 성당 피정에서 다시 들었던 예정론과 예지론의 이야기는 내게 오래 남았다. 예정론은 말 그대로, 삶이 이미 신의 섭리에 따라 정해져 있다는 관점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의 구원조차도 오직 하나님의 예정에 달려 있다고 보았다. 칼뱅은 이를 더욱 철저히 밀고 나가, 어떤 이는 태어날 때부터 구원으로, 또 다른 이는 심판으로 예정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반대로 예지론은, 신은 모든 것을 아시지만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주어져 있다는 시각이다. 신의 시선은 과거·현재·미래를 모두 아우르지만, 우리가 매 순간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가는가는 인간의 몫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나의 모든 우연한 선택마저 하늘은 이미 알고 있다는 게 가톨릭에서 이야기하는 예지론이다.



삶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

나는 이런 생각들을 곱씹으며, 요즘 나 자신을 돌아보았다.

사실 나도 그렇고 대다수의 갈망과 고통은 삶을 ‘컨트롤’하고 싶다는 욕망에 자주 사로잡힌다.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삼재라 그렇다” 위로하고,

언제쯤 좋은 인연이 나타날지 사주를 펼쳐본다.


이건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요즘 젊은 세대 사이에서 사주, 명리, 타로는 자기 이해의 언어로, 때론 놀이처럼 자리 잡았다.

무엇이든 물으면 대답해 주는 AI 시대에, 미래를 알고 싶어 하는 마음은 어쩌면 당연하다.


우리가 감히 신의 영역에 어디까지 발을 들여놓으려 하는 걸까?


그러나 적어도 내 삶에 비추어 보면, 결국 중요한 건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라는 깨달음이다.

우리는 자꾸만 “언제 좋은 배우자를 만날까?”, “언제 부자가 될까?” 같은 질문으로 삶을 측정한다.

그러나 삶은 예정된 결과가 아니라, 그 길을 걸어가는 과정이다.

예를 들어 사업의 성공 여부나 외부의 평가가 아니라, 그 목표를 향해 가는 길에서 만난 사람들, 겪은 시행착오, 성장의 흔적이야말로 삶의 본질이다.

삶은 예정되어 있을 수도 있고, 신의 예지 속에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길 위에서 내가 어떤 태도로 서 있느냐, 어떤 선택을 하느냐이다. 과정이야말로 우리의 자유가 발휘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그리고 나는 이것을 종교적으로 하느님 앞마당의 강아지처럼 살 자로 이야기한다.)


결국 내가 배운 것은, 삶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라는 것이다.

성공해 얼마를 벌었는가는 외부의 평가일 뿐이다. 그 목표에 도달하기까지의 시행착오, 실패, 다시 일어남, 만남등의 성장의 흔적이야말로 삶의 본질이다.

삶은 예정되어 있을 수도 있고, 신의 예지 속에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길 위에서 내가 어떤 태도로 서 있느냐, 어떤 선택을 하느냐다. 결과는 한순간이지만, 과정은 평생을 함께하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삶은 이미 정해진 궤적 위에 놓여 있다고 믿으시나요, 아니면 신의 예지 속에서 각자가 자유롭게 선택해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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