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시합에서 최선을 다하지는 마세요."
기억할 수 있는 어린 시절부터 작가가 되고 싶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내 안에 있는 가득한 이야기들을 종이에 쏟아내는 것이 즐거웠다. 지금 보면 유치하기 짝이 없는 열세 살 무렵의 일기장엔 글 쓰는 게 너무 좋아서 밥도 안 먹고 글만 쓰고 싶은데 팔이 아프고 시도 때도 없이 배가 고픈 게 한탄스러울 따름이라고 쓰여 있다. 그러한 나는, 어린 가슴속 그 많던 이야기는 다 어디로 갔을까. 꿈을 꿈으로 던져두었을 뿐 품지 않고 지낸 십 수년의 세월이 야속하기만 하다. 늘 무언가를 썼지만 가난하고 어려운 시절을 보내며 난데없이 경영학도가 되었고 말 그대로 먹고사는 일에 급급했다. 책을 매일 읽었지만 책을 내는 사람은 나랑 아주 다른 사람이라 여기면서, 온갖 변명을 늘어놓으면서 말이다.
2015년 1월. 새해는 밝았고 난 이십 대의 마지막을 맞닥뜨렸다. '마지막'이라는 단어는 그렇다. 지난날을 돌아보게 하고 애써 외면했던 것을 마주하게 하는 힘을 가졌다. 이렇다 할 이유나 결론 없이 진지하게 글을 쓰기 시작했다. 주제도 없고 목표도 없었다. 가장 나다운 글을 쓰기로 했다. 산문이든 소설이든 한 문장의 끄적임이든 그것은 모두 나였다. 스스로가 질리지 않게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십오 분, 오전 중에 두 시간, 잠들기 전 얼마간을 꾸준히 쓰다 보니 아홉 달이 흘렀다. 무엇이 되든, 아무것도 되지 않든 상관없었다. 어쨌든 쓰는 것이 좋으니까.
뜨거운 여름이 시작되던 무렵, 책을 내겠다는 욕심도 없고 돈을 벌겠다는 욕심도 없이 취미로 글을 쓰는 친구를 하나 알게 되었다. 어차피 아마추어이므로 못해도 괜찮지 않냐며. 그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멋있고 굉장해서 내 입에서 한마디의 말이 생각보다 빠르게 툭 튀어나왔다.
"진짜 좋아하는 일을 계속 좋아하는 방법."
두 달이 지나고 기세 등등하던 여름이 아침저녁으로 가을에게 자리를 뺏길 때쯤, 올해 초에 읽었던 김연수 작가의 <소설가의 일>을 다시 읽었다. 아직까지 어떤 해답을 찾지 못한 상태였고 들고 다니며 보기 좋은 책을 찾다가 얇고 가벼운 책 한 권을 집어 든 것이었다. 분명 읽은 책이건만 문장마다 새로웠다. 소장하는 책들을 접히는 자국 하나 없이 깨끗하게 보는 것을 좋아하는데 처음으로 연필로 줄을 그으며 꼼꼼히 읽기 시작했다. 그렇게 만난 하나의 문장.
"이번 시합에서 최선을 다하지는 마세요."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만한 인생의 문장 중 하나가 "이번 시합에서 최선을 다하지는 마세요"다. 스포츠용품회사의 신입사원 기타노 유지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일본 만화 <좋은 사람>에서 만난 문장이다. 말 그대로 좋고 좋기만 한 사람인 유지는 판매촉진사업부 육상경기 판촉과 계장 대리 보좌로 취임하는데, 알고 보니 후지노 대학 육상팀의 감독 자리다. 이 육상팀은 그렇고 그런 실력이라 하코네 역전마라톤처럼 큰 대회에는 나가기도 어렵다. 하물며 좋은 성적을 낸다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다. 그런 선수들에게 대회 당일 기타노 유지가 하는 조언이 바로 "이번 시합에서 최선을 다하지는 마세요"였다.
그 조언을 듣고 선수들은 외친다. "좋았어. 자, 모두 최선을 다하면 안 된다는 것을 명심하고 나가자!" 첫 주자는 기시타. 오 초를 센 뒤에 출발하라는 유지의 조언 탓에 출발부터 늦는데, 달리는 동안 이런 말이 귓전을 울린다. 최선을 다하지 마. 그 결과, 긴장이 풀린 탓인지 뜻밖에도 1등을 하다가 마지막 스퍼트에서조차 최선을 다하지 않아 결국 4등으로 들어온다. 그러자 두 번째 주자인 이케우에가 화를 낸다. "용서 못해. 기시타 놈, 감독님 지시를 어기고서 있는 대로 최선을 다했겠다. 나는 절대로 열심히 안 할 거니까." 그런데 역시 1등. "그 자식까지 최선을 다하다니." 팀원들은 좌절한다. 그러다가 마지막 주자가 계략에 빠져 최선을 다하는 바람에 팀이 3위에 그치고 만다는 내용의, 참으로 만화 같은 만화이다.
<소설가의 일> 제3부 문장과 시점_전지적 작가가 될 때까지 최대한 느리게 소설 쓰기 중 (p.226-227)
김연수 작가의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만한 인생의 문장 중 하나라는 바로 그 문장은 곧이어 나의 인생의 문장 목록에 기록되었다. 작가는 계속해서 소설가의 일을 "할 수 있는 한 가장 느리게 글 쓰는 일"이라 하며 최선을 다하지 말고 잘하려 하지 말기를 권유한다. 그래, 바로 그것이었다. 보일 듯 보이지 않던 "진짜 좋아하는 일을 계속 좋아하는 방법"에 대한 해답이었다. 그것은 그저 밥을 먹고 잠을 자듯 글을 쓰던 나의 가슴속 뭉친 무언가를 시원하게 풀어주었다. 잘하고 있다고 권위 있는 지도자에게 확인받은 것 같았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 나를 있는 그대로 좋아해주는 어느 분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언제나 글을 써주세요. 전 항상 독자가 될게요."
산타를 기다리던 아이가 성탄절 아침에 일어나 선물을 확인하고는, 시원하게 풀린 내 가슴속으로 뛰쳐들어와 폴짝거리는 기분이었다. 그 것은 주린 배에 밥이 아닌 알코올을 넣었을 때의 짜릿함과도 닮았다. 좋은 글을 혹은 다른 어떤 것을 기대하는 것이 느껴졌다면 그렇게까지 기쁘지 않았을 것이다. 그저 자신은 읽을 테니 언제나 쓰라는 한마디가 전날 얻은 해답과 다르지 않아서 그렇게 신이 났다.
여기서는 누구든 작가라 칭하고 나의 소망은 소설가가 되는 것이지만, 결국 난 아무것도 아니다. 그저 쓰는 행위에 중독 혹은 도취된 또 하나의 글쟁이일 뿐이다. 여전히 똑 부러진 주제는 없다. 주제를 찾을 때까지 기다렸다가는 평생 아무것도 쓰지 못할 사람이 나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기에 무턱대고 시작한다. '시작'이라는 단어가 주는 설렘과 약간의 기대를 안고. 그러나 분명히 말해두는데 절대 잘 쓰지 않을 것이다. 이 곳에서 최선을 다하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