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과 자전거

by 칼이쓰

6시 30분. 빗소리에 눈을 떴다. 후두둑. 비가 제법 오는 어두운 아침. 더운 날이 이어지는 8월 말, 반가운 비다. 잠이 오지 않아도 굳이 눈을 감고 더 누워 있을 아침 시간이지만 기분 좋은 빗소리에 얼른 씻기로 한다.

'이런 날은 하루를 빨리 시작해야 해.'


머리를 보송하게 말리고 장미향 바디로션의 향기를 느끼며 텔레비전을 튼다. 비가 주룩 주룩 내리는 날이면 아침이든 밤이든 상관없이 보는 영화가 있다. <미술관 옆 동물원>이다. 인공이 아직 결혼하지 않았다는 정보를 안 춘희의 미소, 그리고 이어지는 '빠바바바밤' 하는 음악 소리와 함께 시작되는 영화. 잠깐, 일시 정지.

아침으로 먹는 사과를 하나 자른다. 한입 크기로 잘게 잘라 한 접시 가득 채워 다시 텔레비전 앞으로. 재생.


춘희의 시나리오 속 여주인공 다혜는 미술관과 동물원 사이를 다닐 때 자전거를 탄다. 오늘따라 그 장면이 유독 눈에 들어와 자전거를 타고 싶어 진다. 가만 보자, 자전거라면 내가... 마지막으로 탄 것이 친구 연서와 함께였는데 언젠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연서에게 전화를 건다.

"응, 아침부터 웬 일이야?"

그러고 보니 아직 7시 15분이다.

"미안, 너무 궁금해서 시간도 안 보고 전화했네. 우리 마지막으로 자전거 탄 게 언제였지? 그 왜, 공원에서 말야."

"글쎄."

한참을 입속말로 햇수를 세어보던 연서가 커진 목소리로 말한다.

"벌써 8년 전이야!"

"우리 내일 비 안 오면 자전거 타러 갈래?"

"갑자기 타고 싶어 진 거야? 그래, 나도 좋아. 내일 비 안 오면 가자."


오후 무렵 비는 그쳤다. 그리고 다음 날 그 어느 때보다 맑고 깨끗한 하늘이 펼쳐졌다. 공원 입구에서 연서를 만나 곧장 자전거를 빌려주는 곳으로 향했다. 맑은 날씨의 주말이어서 이른 아침부터 사람이 많아 줄을 서야 했다. 그제야 연서와 그동안의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친구의 소개로 만난 남자와 꽤 오래 사귀고 있다는 연서의 이야기, 너에게 전화해서 약속 잡고 보니 컨디션이 안 좋아져 사실 자전거를 타는 게 좀 무리지만 약속은 약속이니 괜찮다는 나의 이야기.


드디어 우리의 차례가 왔다. 자전거를 관리하는 아저씨가 자전거를 여기저기 손보는 동안 하늘을 잠깐 올려다 보았다. 구름 한 점 없이 깨끗하던 하늘에 갑자기 구름이 하나 떴다.

"연서야, 저것 봐. 어쩜 구름이 저렇게 희한하지?"

웬만하면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은 다 예쁜데 그 구름만은 희한했다. 둥실둥실하지 않고 찌글찌글한 모양, 커다란 절벽이 있고 벼랑 끝에 사람이 하나 떨어질 듯 말 듯하며 비스듬히 서 있는 듯한 모양이었다. 아무리 설명해 주어도 연서는 무슨 모양인지 알아보지 못했다.


"이제 타면 됩니다."

아저씨의 말에 가벼운 감사 인사를 하고 자전거에 올라탔다. 8년 만이라 해도 8년 전에 2년 가까이 잘 타고 다녔으니 아무 걱정 없었다. 마찬가지였던 연서는 먼저 출발하겠다며 바람을 가르고 달리기 시작했다.

'좋았어, 나도 따라 간다.' 호기롭게 페달을 밟는 순간 눈 앞이 아찔했다. 중심이 왼쪽으로 치우치는 기분이었다. 바로잡으려 오른쪽으로 힘을 세게 줘 봐도 소용없었다. 하필 뒤따라 오던 다른 여자의 자전거는 갈피를 못 잡는 날 피해 가지 못했다.


연서의 울먹이는 소리에 실눈을 떴다. 입이 얼얼해 말이 나오지 않는다. 뜨겁고 기분 나쁜 무언가가 인중에서 흐르고 입술은 겉과 속이 모두 찢어진 느낌이다. 뜨거운 걸 닦아내려 손을 갖다 대자 피가 빨갛게 묻어난다.

"괜찮아." 연서를 토닥이고 뻐근한 목을 뒤로 젖히자 아까의 그 찌글찌글하던 구름이 푹 퍼진 모양이 되어 있었다. 무엇 때문인지 난 한참 동안 구름을 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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