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고양이와의 저녁 식사
학자금 대출금을 갚고 핸드폰 요금, 차비 등 기본적인 생활비를 제외하면 아주 맞춘 듯 남는 것이 없었다. 낮동안 아르바이트를 하고 저녁이면 도시락을 싸서 도서관으로 갔다. 토익과 자격증 공부를 하기 위해서였다. 일하는 내내 배가 고파 밥 먹을 시간만 기다렸던 여자는 도서관에 도착하자마자 벤치로 직진했다. 실내에 매점이 있지만 주인 아주머니가 도시락을 먹는 사람에게 어찌나 눈치를 주는지 여간 치사한 것이 아니었다. 살 것이 있을 때가 아니면 가지 않았다. 오늘 낮에 가장 먹고 싶었던 것은 맥주와 브라우니와 아이스 바닐라라떼였다. 모든 걸 참아냈으니 맛있게 밥을 먹을 차례였다.
도서관에 들어설 때 입구 쪽에 못 보던 고양이가 호기롭게 누워있었다. 고양이는 여자의 발걸음을 주시하더니 벌떡 일어났다. 여자가 흠칫하고 쳐다보자 고양이는 먼 산을 바라보며 멈춰 섰다. 기분이 싸했지만 배가 고픈 여자는 걸음을 서둘러 벤치에 앉았다. 나무 테이블이 함께 있어 밥을 먹기에도, 간단히 책을 읽기에도 좋은 자리였다. 혼자 밥 먹는 일은 아무리 반복해도 익숙해지는 일이 아니었지만 여자에게는 다른 곳보다 그곳이 편했다. 고양이는 까맣게 잊고 도시락을 열었다. 식은 밥 한 공기, 반찬은 김치와 스팸.
'도시락은 찹찹해야 제 맛이지.' 여자는 설레는 마음으로 젓가락을 집어 들었다. 바로 그때 입구에서 봤던 고양이가 맞은편 의자 아래에 살그머니 앉는 것이 느껴졌다. 교태로운 야옹 소리를 내고 있었다. 고양이든 개든 친해본 적이 없는 여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밥을 한 숟갈 떠 먹고 김치를 하나 집어 먹었다. 뒤이어 스팸을 집어 들자 고양이가 갑자기 얼굴을 드러내더니 여자를 빤히 쳐다봤다. 입을 아 벌리고 있는 상태에서 사람이 아닌 생명체와 눈이 마주친 것은 처음이었다. 여자는 당황했지만 애써 담담한 척 하며 앙 하고 스팸을 입에 넣었다.
무엇이든 입에 넣을 때마다 놀란 눈으로 쳐다보고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는 고양이 때문에 여자는 왠지 모르게 눈치가 보였다. 스팸 한 조각이라도 줘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가슴속 어딘가에서 스멀스멀 올라올 때 고개를 들자, 대문짝 만한 글씨로 '고양이에게 절대 먹이를 주지 마시오!!'라고 쓰여 있는 종이가 보였다. 비에 젖지 않도록 꼼꼼히 코팅까지 되어있었다. 여자는 남의 말을 잘 듣는 성격이 아니었지만 공공장소의 규칙을 어길 수는 없었다. 심지어 느낌표가 두 개라니.
"넌 글을 못 읽겠지만 저것 봐. 주지 말래. 안됐지만 나도 어쩔 수 없어."
여자는 고양이를 애써 외면하고 심술 난 듯한 얼굴로 우걱우걱 밥을 먹었다. 그러자 고양이는 포기한 건지 한 걸음 물러나 왼쪽 테이블 의자 아래로 들어가 앉았다. 잠이 오는 듯 웃는 얼굴로 눈을 꾸욱 감았다가 이내 치켜떴지만 여자를 보지는 않았다.
왼쪽 테이블엔 키 160cm 정도에 8-90kg쯤 되어 보이는 여자 하나가 아까부터 통화 중이었다. 들으려 하지 않아도 그녀의 목소리는 여자의 귀로 쏙쏙 들어왔다. 새벽 두시에 집을 나왔다, 남편의 연락이 없어서 전화를 걸었더니 받지 않아 되려 본인이 걱정을 했다, 슬리퍼를 질질 끌고 나와 다리도 아픈데 새벽이라서 너무 무서웠다는 이야기를 15분째 장황하게 늘어놓고 있었다.
그녀의 이야기가 저절로 들리듯 여자의 시선은 저절로 고양이를 향했다. 어느새 여자를 빤히 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토라진 사람 마냥 고개를 저편으로 홱 돌렸다.
"아무리 그래도 너 줄 건 없어. 내가 오늘 배가 얼마나 고팠다고."
미동 없이 앉아있던 고양이는 다시 슬며시 다가와 이제는 여자의 오른쪽 앞에 앉았다. 테이블에 가려져 앞발만 보였다. 뽀얗고 새하얀 두 발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그것을 보고 있자니 마치 인형 같아서 사랑스러운 기분 마저 들었다. 그 바람이었는지 여자는 스팸 반조각을 놓쳤다. 스팸은 여자의 왼쪽 아래로 툭 떨어졌다. 다시 한번 흠칫. 고양이가 고개를 쑥 내밀어 여자를 쳐다보고는 주저하고 있었다. 당장 스팸을 향해 튀어가고 싶은데 여자의 동태를 살피며 참고 있는 듯했다. 여자는 일부러 떨어뜨린 건 아니었지만 이왕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먹으라는 의미로 고양이가 지나갈 수 있게 발을 살짝 비켜주었다. 고양이는 기다렸다는 듯이 잽싸게 스팸을 물어 처음에 앉았던 여자의 맞은편으로 가서 먹기 시작했다. 그러나 고작 스팸 반 조각이었다. 고양이는 이전보다 더 허기진 눈빛을 하고 여자의 바로 옆으로 바짝 다가왔다. 이제는 대놓고 교태를 부리며 보채기 시작했다.
"아까는 주려고 준 것이 아니라 실수였어. 다시 그럴 일 없으니까 저리 가. 너 줄 것 없다고!"
무슨 말을 해도 고양이는 떠나지 않았다. 꼬리를 세우고 앞발을 쭉 뻗어 자세를 낮추었다가 하품을 찢어지게 했다. 여자는 밥을 다 먹고 도시락을 챙겼다. 용케도 먹는 소리와 다 먹고 치우는 소리를 구분한 고양이는 난데없이 앞발을 들어 여자의 오른발을 퍽 때렸다. 때렸다기 보다는 내리 찍었다는 표현이 어울렸다.
"참나, 너 지금 나한테 화내는 거니?"
고양이는 볼일 끝났다는 듯 홱 뒤돌아 마른 세수를 했다. 여자 역시 돌아섰고 옆에서 줄곧 통화하던 여자는 "너도 살아보면 연애할 때랑 얼마나 다른 지 알 거야"라고 말하고 있었다.
다음날 여자는 언제나처럼 도시락을 챙겨 도서관으로 갔다. 도서관 입구에 누워 있던 고양이는 여자의 발걸음을 주시하더니 벌떡 일어났다. 여자는 벤치로 향하다가 발길을 돌려 오랜만에 매점에 갔다.
"소시지 하나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