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같은 애
"형님, 밥 좀 더 드실래요?"
교복을 입은 고등학교 남학생 두 명이 마주 보고 앉아 있다. 후배로 보이는 학생이 선배의 대답이 나오기 전에 이미 자기 그릇에서 밥을 반 이상 덜어 선배의 그릇에 담는다. 밥 숟가락에 얹어져 이동하는 하얀 쌀밥 여기저기에 두루치기 양념이 묻어 있다. 선배는 고개를 끄덕이며 흐뭇하게 밥을 먹는다.
내 앞엔 여자친구와 싸우고 난 다음날이면 꼭 날 불러내는 녀석이 있다. 화가 나고 답답할 때마다 내 얼굴을 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나. 함께 했던 대학 시절을 추억하며 대학가에 있는 식당 '두루두루'에서 밥 한 끼를 먹는 일은 혼자서도 할 수 없고 다른 사람과도 할 수 없는, 오직 나와 함께 해야 약이 되는 일이라고, 보름에 한번 꼴로 하는 소리를 또 한번 지껄이고 있었다.
십 년 넘게 환절기마다 걸쳐 입어 낡을 대로 낡은 남색 체크무늬 남방을 옆에 벗어두고서 밥상의 주인공 격인 두루치기에게는 눈길 한번 주지 않은 채 콩나물 무침과 고구마 줄기 무침을 후루룩대는 녀석 뒤로 한 남학생이 앉았다. 메뉴는 두루치기뿐이지만 매일 다른 반찬들이 나오는 식당에서 두루치기를 시키고 덧붙이는 말이 "밑반찬은 하나도 주지 마시고요."였다.
"봉식이 생각난다."
젓가락질을 잠시 멈춘 성민이 말했다.
"그러게. 넌 날개만 먹고 난 다리만 먹고 봉식이는 가슴살만 먹었지. 치킨집 갈 때 최고의 조합이었는데."
"그렇지? 만약 지금 같이 있었으면 이 동그랑땡만 잔뜩 먹었을 걸? 밥은 제대로 먹고 사는지 모르겠네."
봉식이 생각에 동그랑땡을 하나씩 들고 잔을 마주치듯 짠하고 먹었다. 식당 문이 드르륵 열리고 한 여학생이 들어서자마자 "이모, 순두부랑 두루치기 주세요. 밥 많이 주세요." 하고 외쳤다. 뒤이어 남학생이 따라 들어와 여학생과 함께 우리의 옆 테이블에 앉았다. "이모, 밥 진짜 진짜 많이 주세요." 여학생이 애교 섞인 목소리로 다시 말하자 이모는 "싫은데." 하고 웃으며 농을 던지고 두 학생은 마주 보며 키득거렸다. 남학생이 식당에 들어서기 전 하던 이야기를 이어하려는 듯 입을 열었다.
"그랬더니 교수님이 나보고 먼저 발표하라는 거야."
"아까 그 선배 나한테 예뻐졌다고 한 거 들었지?"
"몰라, 못 들었는데. 내 얘기 듣는 거야? 말 끊지 마. 그래서 알겠다고 했더니"
"아무래도 선배가 나한테 반했나 봐."
"뭐야, 그건 완전히 딴 얘기잖아. 너랑 얘기하나 봐라."
"그래서? 알겠다고 해서 어떻게 됐어? 2조가 그냥 했어?"
"됐어. 말 시키지 마."
티격태격 대던 두 학생은 밥이 나오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른 이야기를 하며 밥을 먹었다. 서로의 밥을 뺏어 먹는 모습이 예전의 성민과 내 모습 같았다. 피식하고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턱이 떨려왔다. 웃음을 꾹 눌러 참는 내 얼굴을 빤히 보던 성민은 후루룩 마시고 남은 콩나물 한 줄기를 나에게 양보했다.
"멈춰져 버린 시간을 뚫고 옛날의 공간에 들어온 것 같지 않아?"
콩나물 한 줄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성민의 진지한 얼굴에 결국 참았던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여기가 예전 그대로긴 하지. 나도 그래, 옛날 생각 많이 나."
아련한 추억에 잠겨 동공이 풀리려던 찰나, 밥을 다 먹은 옆 테이블 학생들의 대화가 다시 시작되었다.
"너네 동아리에 좀 괜찮은 애 없어? 소개 좀 시켜주라."
부른 배를 문지르며 여학생이 말했다.
"어떤 애?"
남학생은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건성으로 되물었다.
"너 같은 애."
"나 같은 애가 어디 있냐?"
남학생은 살짝 고개를 들어 여학생과 눈을 마주치며 다시 말했다.
"그럼 나랑 사귀든지."
"정말? 나 너랑 사귈까?"
"다 먹었지? 가자."
핸드폰의 잠금 버튼을 누르자마자 가자고 일어서는 남학생 뒤로 얼른 뒤따라 나서는 여학생이 보였다.
"여자애가 남자애 좋아하는 거 같지?"
두 학생이 나가자마자 성민은 신이 난 듯 말했다.
"아까 무슨 선배가 자기보고 예쁘니 반했니 하는 것도 남자애 떠 보려고 한 말 같아."
같은 생각이었지만 웃기만 할 뿐 아무 대답하지 않았다. '너 같은 애' 소개해 달라고 했더니 정말 자기 같은 친구, 봉식을 만나게 한 장본인이면서 처음 보는 여학생의 사랑은 잘도 눈치채는 성민이 얄미워 이모가 더 가져다준 콩나물 무침을 한입에 먹어버렸다. 더 늦으면 안 될 것 같다며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떠난 봉식과 콩나물 무침이 담겨 있던 접시를 보고 날 노려보는 성민은 한 사람을 두 명으로 복사해놓은 듯 닮은 꼴이었다.
서로가 편안했던 우리는 셋이 함께 친구가 되었다. 이곳 이름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