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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칼이쓰 Feb 15. 2016

꿈꾸는 공간

서른의 꿈

나는 아직 나의 집을 소유하고 있지 않다. 즉, 나에게는 집이 없다.

노년화 되어가는 시대, 취업과 결혼이 늦어지는 시대라지만 그렇다고 해도 서른은 어린 나이가 아니다. 몸과 머리는 서른보다 더 되어 이곳저곳이 삐그덕거리건만 정신과 마음은 아직  십 대 시절을 벗어나지 못한 채 철없기 그지없다. 나의 속은 온 세상을 훨훨 날아다니며 꿈꾸고 있으나 나의 겉은 부모님께 한없이 신세 지며 부모님의 집에서 조그만 방 하나를 나만의 공간으로 허락받아 공으로 살고 있는 것이다. 그것마저 온전한 '나만의' 공간은 되지 못하지만 말이다. 아직은 얹혀살고 있지만 '내 집'을 향한 소망은 언제나 줄어들지 않고 부푼 꿈으로  가슴속에 있다.


집. 집이라는 곳은 그저 잠자고 옷 갈아입는 곳이 아니다.

나의 공간. 어느 누구의 시선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안정을 취할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어야 한다.


내 몸 누일 침대 하나, 글을 쓰고 책을 읽을 수 있는 책상과 목과 어깨가 늘 말썽인 내 몸에 안성맞춤인 의자 하나가 있었으면 좋겠다. 침실과 주방은 작아도 괜찮지만 책상과 의자가 자리할 서재는 아주 컸으면 한다. '집'이라고 이야기를 시작했으나 사실 내가 가장 원하고 필요로 하는 공간은 '서재'인가 보다. 어쩌면 나의 작업공간이 될 수도 있는 서재엔 지난날 내가 읽어온 책들이 나름의 규칙을 따라 꽂혀 있다. 그리고 딱 그만큼의 빈 공간이 있다. 아마도 내 집을 마련했을  때쯤이면 내 인생의 3분의 2 이상을 살았을 때가 아닐까 싶다. 그러니 여생에 구입해 읽고 넣어둘 책들을 위한 공간을 일찌감치 넉넉하게 비워두는 것이다(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욕심의 자리 같다). 반은 차고 반은 비어있으나 이미 모두 가득 찬 것이나 다름없다. 그곳에서 나는 책을 읽고 나의 이야기를 끄적거리고 가끔 악기를 연주할 것이다.


아파트보다는 마당이 있는 작은 주택이었으면 좋겠다. 현관을 나서면 마당이 있어, 한쪽 구석에서 조그만 텃밭을 가꾸고 다른 편엔 나무 몇 그루를 심어 함께 살아가고 싶다. 가장 사랑하는 곳이 될 나의 서재를 남쪽을 향하는 방에 두어 하오의 햇살이 깊이 스며드는 자리에 툭하면 앉아 있고 싶다. 말이 '조그만'이지, 이 모든 것을 하려면 돈과 노력이 엄청나게 들 것이다. 누군가는 손에 쥔 것 하나 없이 꿈만 거창하다고 조소할 수도 있다. 그래서 여기다가 풀어놓는 것이다. 나의 공간이라 할 만한 곳이 아직 내게 없으니까. 지금의 나로선 무척이나 환상적이고 비현실적인 이야기지만 글로 쓰고 말로 내뱉으면 그렇지 않을 때보다 원하는 것을 향해 훨씬 가까이 가게 된다는 걸  몇 번이나 겪었으니까.




내가 초등학교 2학년이었을 때, 참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하나 있었는데. 그 친구는 우리 학교 고학년 담임 선생님의 딸이었고 우리 동네에서 제일 최신식인 아파트에 살았다. 내가 살던 곳은 파란 슬레이트 지붕 아래 여러 집이 붙어 있는 곳, 여덟 가구가 바깥에 있는 재래식 화장실을 함께 쓰는 그런 집이었다. 어느 날 그녀는 우리 집을 보고 그 길로 날 모른 척했다. 이유도 모르고 당하다가 이유를 알았을 때, 아마 난 가난의 의미를 처음으로 체감한 것 같다.


그녀를 미워하고 나쁜 애 빨리 잘 끊었다 생각했다면 속 편히 잊고 살았을까. 어린 나는 친구를 미워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내 잘못 같았다. 그 일은 하나의 트라우마처럼 마음에 깊은 칼자국을 남겼고, 나의 타고난 성향인지 꼭 그 일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좋은 집에 살게 된 이후로도 집에 누군가를 데려오는 것이 달갑지 않다. 또 하나, 정말 내 사람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아니면 속내를 절대 보여주지 않는다. 한마디로 사람을 못 믿는 것이다.


도로에서 고개를 약간만 숙이면 보이는 집에 살아 봤으니까. 구경꾼들의 어쩜 저런 곳에 사람이 사냐는 말도 들어봤고 잘 보이는 집 때문에 친구도 잃어봤으니까. 난 절대 남의 집을 보지 않는데 이 사진을 찍으며 처음으로 남의 집을 보았다.


이제야 좀 무뎌진 건가. 약 20년의 세월이 흘렀으니 마음에 남아있던 흉터도 희미해진 걸까.


-2015년 3월 어느 날의 일기-


어린 시절 내내 지독하게 가난했다. 하지만 나는 어느샌가 알았다. 가난한 것은 조금 불편한  것뿐이지 불행한 것도, 나의 잘못도 아니라는 것을.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에 꿈을 꾸고 기도하고 작은 것에도 기뻐하는 내가 된 것을 나는 진심으로 감사한다.


어린 나는 그만큼 어렸던 나의 친언니와 일어서면 천장에 머리가 닿는 다락방에 엎드려 틈만 나면 그림을 그렸다. 도로와 멀리 떨어진 집을 그리다가 화장실이 실내에 있는 집을 그리다가 부모님의 방과 우리의 방이 따로 있는 집을 그리다가 언니와 나의 방이 따로 있는 집을 그렸고 나중엔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언니는 결혼 후 자신의 집을 장만했고 나는 이제 나의 집을 스스로 그려보는 것이다.


긴 세월이 흘러 이것이 정말 내가 쓴 글인가 싶을 만큼 오늘의 글이  생소해질  때쯤 이 글을 읽고 싶다.

나는 여전히 나인지, 오늘의 꿈은 몽상으로 남았는지 현실이 되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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