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열다섯 살에 쓴 유서

그냥 살아만 있어 아무것도 안 해도 돼

by 카리스러브 이유미

“엄마, 화장실 가고 싶어.”

딸의 말에 화들짝 놀라 일어섰다. 아, 잠이 들었구나. 하연이가 약을 먹었었지. 몇 시쯤 되었을까.

링거와 주렁주렁 달린 끈들을 바퀴 달린 링거대에 옮겨 걸고 아이를 일으키곤 손을 잡았다. 손과 발에 유독 땀이 많은 딸은 손을 잡을 때마다 축축했다. 그 손을 꼭 잡고 걸어갔다. 화장실에 다녀온 아이를 다시 눕히고 나니 잠이 다 깨었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곰곰이 생각해봤다. 그러다 생각나는 일이 있었다.

작년 6월의 어느 밤이었다. 산책하러 나갔다가 학원에 다녀오는 딸을 보고는 놀라게 해주려고 조용히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 아이는 통화를 하고 있었다.

“엄마에게 말하려고. 응. 근데 엄마가 화내면 어쩌지?”

더 들으면 안 될 것 같아 통화 내용을 못 들은 척 크게 불렀다.

“하연아!”

깜짝 놀라며 뒤돌아본 하연이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눈빛이었다. 큰 잘못을 하다가 들킨 것처럼 몸이 떨리는 것도 같았다.

“엄마, 할 얘기가 있어. 엄마랑만 하고 싶어.”

아이의 말에 집으로 올라와 아이 방에 가서 마주 않았다.

“이것 좀 봐.”

아이가 내민 진한 노란색 스프링 노트에는 피카추가 수줍게 웃고 있었고, “절대 보지 마시오”라고 씌어 있었다.

첫 장에는 얇은 잉크 펜으로 쓴 글씨가 보였다.


힘든 하루 중에서, 잠깐 마음껏… 소리 지르고 가는 곳.


그리고 다른 날 붓펜으로 쓴 글씨도 보였다.


나의 인생이 절벽으로 내몰렸을 때.ㅠ_ㅠ


한 장을 조심스레 넘겼다. 딸은 내 눈과 노트를 번갈아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다.


2020년 4월 20일
밝게 웃으며 다녔다. 힘들다고 말하면서도 얼굴은 웃었다. 난 웃기밖에 못하는 기계 같다. 아니 울기도 잘하지. 음, 아마 감정 로봇? 나도 내 감정을 모르겠다. 그냥 살고 있으니까 산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오늘은 가출해서 지낼 만한 곳을 생각해보았다. 결국 내가 내린 결론은…… 그냥 얼어 죽든가 굶어 죽든가. 죽는 게 가장 좋은 것 같아, 나 같은 아이는.

(자살 일기 중 일부만 올려요. 전체는 책에 수록되어 있어요.)



여기서 잠깐 멈춘 일기는 6월 9일부터 다시 시작되었다. 그리고 6월 20일. 무슨 말인지 잘 알아보지도 못할 글씨들이 울고 있었다. 처절하게 몸부림치고 있는 것 같았다. 토해내듯 형태도 알아보기 힘들게 써 갈긴 글씨들이 뒤죽박죽 섞여 한 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 장.


유서

가족에게
사랑하는 우리 가족들 나 없이도 행복하게 살아줬으면 좋겠어.
그래도 가끔은 내 생각해줘.
그렇게 열심히 날 키워줬는데 이렇게밖에 못 살아서 정말 미안해.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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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그냥 살아만 있어 아무것도 안 해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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