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살아만 있어 아무것도 안 해도 돼
어릴 적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는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다. 나는 스스로를 지켜야 했다. 벌어진 채로 아물어버린 모난 상처를 단단한 유리로 덮었다. 사람들과 적당한 거리를 두었다. 과거의 기억이 반복해서 떠올랐고 늘 우울했다. 나는 지나간 시간에 갇혔다.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 수 없는 내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내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 내가 결혼을 하고 아이가 낳았다. 나에게 ‘엄마’라고 부르는 아이가 생겼다. ‘엄마’라는 단어는 내게 슬픔이고 아픔이었다. 아이들이 ‘엄마’라고 부를 때마다 나는 엄마라는 말이 주는 감정을 지워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 말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었다.
삐거덕대는 엄마와 나와의 관계는 나와 딸의 관계에도 영향을 주었다. 딸에게 어떤 엄마가 되어야 할지 몰랐다. 엄마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몰랐고, 딸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몰랐다. 딸로서 의무를 다하는 것처럼 엄마로서의 의무도 다하려고 했다. 사랑으로 연결되지 못한 마음이 딸의 마음을 밀어내고 있었다. 그런 마음이 아이를 병들게 한 건 아닐까.
못난 엄마여도 아이들이 붙들 사람은 결국 엄마였다. 자꾸 나약해지려는 내게 속삭였다.
“약한 생각 하지 마. 엄마와의 관계를 핑계로 우리 아이들에게 내가 엄마가 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건 무책임한 변명이야. 본능적으로 아이들은 부모를 의지하게 되어 있어. 엄마는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사랑하고 돌봐야 하는 생명이 내게로 온 이상 내가 살아내야 할 삶이야.”
집에 있는 두 아이가 생각나며 걱정되었다. 아빠가 있다지만 다섯 살 막내는 엄마가 있어야 잠이 들었다. 딸아이가 병원에서 지낼 동안 필요한 것도 챙겨 오고, 집에 있는 아이들도 보고 싶었다.
“잠깐 집에 다녀와도 될까요?”
응급실 간호사에게 물었다.
“미성년자라 보호자가 24시간 옆에 있어야 해요.”
간호사가 대답했다.
미성년자. 24시간 보호가 필요한 아이. 독립심을 키워준다고 자기 일은 알아서 하라고 했었는데 24시간 보호해야 하는 부모의 도움이 필요한 아이였다. 남편, 아이들과 잠깐 영상통화를 하면서 막내를 안심시켰다. 막내는 잠깐 울먹이기는 했지만 아빠가 잘 설명한 듯 다정하게 말했다.
“누가 많이 아파? 나는 아빠랑 잘게.”
“응. 사랑해. 잘 자.”
전화를 끊었다. 필요한 것은 아침에 편의점에서 사기로 했다.
응급실 간이침대를 끌고 와 앉았다. 아직 2월. 찬 냉기가 바닥에서 올라와 몸이 떨렸다. 엄마를 등지고 한껏 쪼그리고 누워 있는 아이의 뒷모습이 추워 보여서 이불을 끌어올려 덮어주었다. 그리고 베개도 이불도 없는 간이침대에 딸과 같은 자세로 웅크리고 누웠다. 응급실 환자들이 들어오고 나가고, 간호사 선생님이 주사기를 점검하는 모습이 몽롱한 시선 사이로 보였다. 잠이 든 건지 만 건지 모르겠는 시간이 흐르며 새벽이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