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심리 검사 소견서에 적힌 딸의 '우울 정도 심각'

사춘기 딸의 심리 상담 검사 결과

by 카리스러브 이유미

딸은 청소년 우울증


딸이 자살 일기를 보여준 다음 날, 아이의 담임 선생님에게 전화를 했다. 선생님은 상황을 알고 계신 듯했다. 진로 상담 시간에도 힘들다고 했단다.


“아이가 그렇게 엄마 보라고 여기저기 두는 건 이해받고 싶고 자신에게 더 관심을 가져달라는 표시일 거예요. 정말 자살하려는 아이는 주변에 알리지 않아요. 하연이는 워낙 밝은 아이인데 사춘기 시기라 힘들어하는 것 같아요. 조금 더 관심을 가져주세요.”


선생님의 말을 일단 믿기로 했다.

인터넷에 ‘청소년 자해’라고 검색해보니 ‘자해 놀이’가 보였다. 관련 기사도 보였다. 한 2년 전 기사긴 했는데, 손목을 긋는 자해 문화가 청소년 사이에 번지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청소년 자해 문제는 사회적으로도 이미 이슈였고, 코로나로 온라인 교육이 많아지면서 SNS를 보는 시간이 많아진 내 딸도 많이 영향을 받았겠구나 싶었다. 놀이라고 생각한다면 다른 재미있는 놀이를 발견하면 그만 둘까? 학교가 정상적으로 돌아가면 괜찮아질까? 여러 가지 의문이 있었지만 더 관심을 갖고 이해해주고 집중할 만한 것을 찾으면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엄마, 심리 상담 받고 싶어요.”


마침 얼마 전 4주간 심리 상담을 받을 때 선생님이 알려준 심리 상담 바우처 제도가 생각났다. 주민센터에 문의하니 신청 서류를 알려주고는 상담센터에 소견서를 제출하라고 했다. 내가 다니던 상담센터에 예약을 하고 하연이와 함께 방문했다. 몇 가지 심리 검사를 받고 3일 후에 아이의 상태를 진단한 소견서를 받았다. 소견서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었다.


1. 호소 문제

내담자는 최근 미래에 대한 걱정과 가족 간의 갈등으로 인해 예민하고 불안이 높아져 내원하여 심리 검사 및 상담 진행함.


2. 치료 및 과정

내담자는 집안 분위기가 자신 때문에 좋지 않고 집에서 혼나니까 집안 분위기를 험악하게 만들다 보니 내가 가치가 없나, 나 없으면 행복할까, 라는 생각이 든다고 함. 중학교에 들어오면서 성적이 떨어지다 보니 잘하는 주변 사촌들과도 비교되어 위축감이 든다고 함. 집에서 실수할까 봐 무섭고 눈치가 많이 보이고, 나쁜 애라고 할까 봐 늘 열심히 해야지 하는 생각이 든다고 함. 울어야 될 상황에 웃고 거짓말이 습관화되었다고 함.


3. 검사 종류—SCT, MMPI, HCP, BDI

SCT(문장 완성 검사)에서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 주변 사람들이 떠나는 것이다

내가 가장 우울할 때는 — 다른 사람들을 실망시켰을 때

다른 사람들은 나를 — 평가한다

나를 가장 화나게 하는 것은 — 나다

MMPI(다면적 인성 검사) : 척도 6 편집증 상승 — 불안, 낮은 자존감, 부정적 정서

HCP(심리 스케치 검사) : 자아 강도 약하고 좌절 및 애정 욕구가 강하게 나타남. 혼자 사는 집을 그림.

BDI(우울 척도 검사) : 22점. 우울 정도 심각.

4. 소견 내용


내담자는 주변 사람에게 어떻게 맞추어야 할지 중심이 서지 않아 이거 가지고 혼나려나, 저거 가지고 혼나려나 불안해하고 매사에 확신 없는 모습이 나타남.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고 누르는 모습은 억압된 애정 욕구 및 좌절로 내면에 불안과 분노가 내재되어 있을 것으로 보임. 대인관계에 민감하며 타인의 의견에 과도하게 반응하며 경계심과 의심이 많고 비판에 과도하게 민감하고, 타인의 행동을 자기와 연결시키는 부분이 나타남.

슬프고 불안하며 현실 도피적인 경향이 있고, 감정 변화가 많을 수 있는데, 부모와 자녀 관계 중 감정 표현을 제대로 하지 못해 말로는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하다 보니 자기 합리화를 시키는 경향이 많아 자존감이 낮아진 것으로 보임. 위축된 모습은 내담자의 불안한 심리가 반영되며, 눈치 보는 모습이 내담자의 행동을 수용해주고 격려해주는 데 중점을 둔 심리 치료가 제공되어 정서적 안정감을 충분히 경험하게 해주어 억눌린 감정 및 불안 행동을 감소시키는 과정이 필요함.

내담자의 감정이 자연스럽게 표출되도록 하여 긍정적 자기 개념을 갖게 하는 것이 필요하며,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고 표출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필요함.




우울 정도 심각, 억눌린 감정과 불안 행동이라……. 왜? 무엇 때문에?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사춘기 반항과 자기 정체성을 찾는 과정에서 생기는 과도한 자기 인식이라고 합리화하고 싶었다.

무기력한 아이는 엄마의 잔소리에도 움직이지 않는 자신을 한심하게 여기고 눈치를 보고 더 우울해지는 감정에 반복적으로 빠져들면서 자기에 대한 믿음마저 잃고 점점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청소년 우울증. 상황은 이해했지만 받아들이기는 어려웠다. 학교도 잘 다니고, 친구들과 떠들고 웃는 소리도 들리니 심각한 것은 아니겠지. 갑자기 통제력을 잃고 충동적으로 행동할 수도 있다는 심각성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어쩌면 그 마음을 마주하는 게 두려워 회피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중심을 잡고 차분하게 들어줄 자신이 없었다. 아이의 모습을 보며 요동치는 내 마음도 어쩌지 못했다. 내 상처가 아파서 아이의 다친 마음을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현명한 엄마라는 가면을 쓰고 세상이 가르쳐준 대로 어른의 시선에서 해결 방법을 찾는 데에만 집중했다.


‘자존감이 낮다니 즐거운 경험과 성취감을 느끼게 해줘야지. 학교 수업 때문에 매 시간, 매일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미술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예고에 보내면 되겠다.’


아이를 위한 최선이라고 생각하고 나는 하연이에게 예고에 갈 것을 권했다. 하지만 이는 엄마의 욕심만 가득한 선택이었다.

예고 입시 과정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성적 관리는 물론이고 하루 4~8시간 정도 실기 준비를 해야 했다. 좋아하는 미술이니까 잘할 거라고 생각했다. 잘해야 한다고도 생각했다. 미술 심리 상담도 같이 시작했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이 정도면 훌륭한 엄마지. 남들에게 괜찮아 보이는 게 뭐 그리 중요했을까. 아이가 우울증이라는데 나는 여전히 남의 시선이 더 중요했다. 사회적 체면은 그동안 가면을 쓰고 죽을힘을 다해 쌓은 견고한 성이었다.

미술 심리 상담과 예고 입시는 우리 아이가 우울증이에요, 하는 것보다는 꽤 괜찮은 모양새였다. 분명히 상황도 좋아지고 있었다. 아이는 미술 학원을 열심히 다녔고, 상담 선생님과 나눈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려주기도 했다. 예전의 하연이로 돌려놓았다고 만족하며 나는 빠르게 나의 일상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아니었다. 하연이는 끝내 타이레놀을 삼키고 만 것이다.





이 글은 책 <그냥 살아만 있어 아무 것도 안 해도 돼>의 내용을 일부 발췌해서 연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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