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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리스러브 이유미 Nov 28. 2022

만약

만약은 과거일 거라는 착각

글을 쓰고 싶었어요. 언젠가부터 생각이 꼬리를 물고 흘러가다가 어느 자리에 머물러 뱅뱅 돌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컴퓨터 앞에 앉아요. 하나씩 풀어내고 싶은데 5가지 정도의 언어가 동시에 튀어나오면 맥락도 없고 연결도 없는 나만 아는 단어들이니 난감해져요. 그래서 혼자 쓰는 글을 써왔어요. 


그런데 이제는 공유하는 글을 쓰고 싶어요. 친구에게 수다하는 것처럼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갑자기 말문이 막히면 그냥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내쉬기도 하면서요. 오늘은 어떤 글을 쓸까 떠올리는데 "만약에~"라는 말이 계속 떠올라요.


치유에 관한 칼럼을 쓰고 있거든요. 칼럼을 써 본 적이 없어서 형식도 모르겠고, 시작도 끝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으니 자료만 계속 모으고 있어요. 나는 상담사도 아니고, 치유 전문가도 아니니 그저 내가 경험한 치유와 치유 이후의 경험을 나눠달라 했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과거의 기억들을 끄집어냅니다.


만약에 그때 내가 그 자리에 없었다면?

만약에 엄마가 내 말을 들어줬다면?

만약에 내가 더 용기 있는 아이였다면?


만약이라는 단어는 과거를 후회하거나 상처의 책임자를 찾기 위해 핑계하는 일이라 생각했어요. 실제로도 만약에를 시작으로 시나리오를 만들며 상처의 기억에서 나를 도망시켜주기도 했고요. 그렇지만 그 도피가 떳떳하지는 않았어요. 내가 더 연약해 보였거든요. 


오늘 문득,

나는 요즘도 만약을 생각하나? 떠올려봤어요. 생각하기는 하더라고요. 변한 게 있다면 과거의 일이 아니라는 것이었어요. 일단 과거의 기억들을 애써 데리고 와 나를 괴롭히는 일을 멈추었고요. 계획하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어요. 한 달 후, 1년 후, 5년 후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를 떠올리고 그 방향으로 가기 위해 계획을 세우고 있었어요. 자연스럽게 나의 만약은 미래를 향하고 있더라고요.


만약에 10년 후에 딸을 만난다면 어디에서 만날까?

만약에 1년 후에 내 책이 출간된다면?

만약에 5년 후에 많은 사람들 앞에서 강연을 한다면 나는 어떤 주제를 말할까?

만약에 내일 그 사람을 만난다면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과거의 만약은 결국 아무것도 바꿀 수 없으니 나를 더 깊이 그 상황에 각인시켜요.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아 갑갑해요. 그런데 미래의 만약은 마음껏 상상할 수 있고, 얼마든지 그 상상을 이룰 수 있다는 기대가 있어요. 더 좋은 것을 선택할 수 있고, 그렇게 되지 않더라고 또 다른 만약을 그려볼 수 있어요.


만약에 매일 이렇게 글을 써서 1년 후 한 권의 책이 된다면?


저는 오늘 이 만약을 상상 하며 글을 써요. 

당신의 만약은 어디에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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