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18년 차에 벌써 일곱 번째 집이니 이사쯤이야. 이사의 이유는 여러 가지였다. 직장이 멀어서, 남편이 망해서, 아이를 키우기엔 환경이 좋지 않아서, 집주인이 집을 판다고 해서, 아이 전학을 가야 해서 등등.
다른 사람들은 이사하는 거 힘들지 않냐고 하지만 나에게 이사는 한 동안 들고 다니던 가방을 다른 가방으로 옮겨 매는 것처럼 일상 같다. 그 자연스러움이 문득 이상해졌다. 쓰던 지갑을 바꿔도 아쉽던데. 오래 타던 자동차를 바꿀 때는 차를 두고 오는 마음이 그렇게 아렸다. 그런데 하물며 몇 년을 가족이 같이 먹고 자던 집인데 떠나오는 마음이 전혀 아쉽지가 않다. 새로운 집에 대한 설렘이려니 했다.
어릴 적 나에게 집은 불안하고 빨리 떠나고 싶은 공간이었다. 작은 방 한 칸에 모여있던 가족, 짐을 둘 곳이 없어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하고 섞여있던 물건들, 아빠와 엄마의 잦은 다툼과 엄마의 술주정까지. 집은 불안했고, 안전한 곳을 찾아 어디든 나가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은 늘 밖을 떠돌았다.
결혼을 했다. 여전히 나는 집이 불안했다. 남편과 사이도 좋았고, 아이도 태어났지만 여전히 집은 빨리 도망 나와야 하는 곳이었다. 집에 있으면 우울했고, 집에 있는 시간은 인생을 낭비하는 시간 같았다. 집이 먹고 자는 공간 그 이상의 감정을 주는 곳이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엄마와 불안애착이 형성된 아이가 사회관계에서도 불안이 높은 것처럼, 집이라는 공간에 불안애착이 형성된 사람은 다른 공간에서도 편히 쉬기 어렵다는 걸 늦게 알게 되었다.
우리 집은 식물이 살지 않는다. 여기저기서 얻은 물건들, 결혼할 때 사온 그릇을 이가 빠지면 하나씩 사면서 그릇도 색도 맞는 게 없었다.
심방 오셨던 권사님이 말씀하셨다.
"유미샘은 예쁘게 하고 살 거 같은데 그릇도 짝이 안 맞고 의외네."
친구들이 집에 인테리어를 하고 예쁜 그릇을 사는 모습이 낯설었다. 식물이 자라고, 애완동물을 키우는 집이 신기했다. 내가 아껴주지 않는 집은 물건이 제자리를 못 찾았고, 정리 정돈 되지 않아 너저분했다. 단순히 정리정돈은 습관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정리 습관이 잘 안 되어 있어서 그런 거라고. 깨끗한 친구 집에 다녀오면 며칠 정리 하는 듯하다가 이내 제자리였다. 나는 안 되나 보다 했다. 그런데 정리정돈에도 마음 돌봄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느 날 식탁에 앉아 지저분한 거실을 찬찬히 둘러보면서 돌봄 받지 못하고 있는 물건들이 마치 나 같이 보였다. 나 자신은 돌보지 않으면서 자꾸 다른 사람들만 신경 쓰는 내 모습 같았다. 내 방의 상태가 나의 마음 상태라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정말 그랬다. 나는 나를 돌보지 않는 것처럼 내가 머물고 있는 집을 돌보지 않고 있었다. 물건이 어디에 있든, 망가졌든 신경 쓰지 않았다. 누군가가 둔 그 자리 그대로 그냥 두었다. 나처럼.
내가 나를 돌보기로 한 날부터 내가 만지고, 입고, 먹는 모든 물건들을 자세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아팠다. 미안했다. 함부로 대하던 모든 것들에. 소중한 것과 버려야 할 것이 섞여 진짜 가치 있는 것들도 빛을 잃어버렸다. 일곱 번째 이사를 앞두고 내 마음을 돌보듯 내가 사용하는 물건을 정리해 보자고 마음먹었다.
내 마음이 성장하는 책상
내 몸을 처음 만나는 옷이 있는 옷장
아이들의 소중한 먹거리가 있는 냉장고
하루의 수고를 다독이고 에너지를 채워주는 침대
가족의 안전을 확인하는 식탁
안고 뒹굴며 놀이하는 거실
집이라는 공간의 경계를 지어주는 신발장
피로를 비우고 씻어주는 화장실
없으면 찾게 되는 서랍 속 손톱깎이까지
자세히 보고 또 보며
물건의 존재의 이유를 찾아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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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일숍에 갈 때마다 하얀 샵이 참 예뻤다. 그중에도 커튼.
하얀색의 하늘거리는 비칠 듯 가려진 하얀색 커튼.
커튼을 열면 철도 같은 레일을 달리며 "챠르르~~~" 소리를 냈다. 와~~~ 예쁘다. 처음으로 내 집에도 그 커튼을 달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사하는 날.
은행에 가는 길에 운명처럼 "OO커튼" 화살표! 가 보였다. 평소 같으면 보이지도 않았을, 설사 봤어도 지나쳤을 커튼 집 화살표를 열심히 따라 가게 앞에 도착했다. 견적과 명함을 받아 왔다. 생각보다 비쌌다. 이사 와서 사는 물건 중에 가장 비싼 물건이 될 것 같았다. 명함을 책상 옆에 두고 오며 가며 봤다. 하루, 이틀.. 일주일이 지났다. 거실에 카펫을 깔고, 소파의 커버를 씌우고.. 창문은 어쩌지?
레일에 커튼이 하나하나 달리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도 콩닥콩닥. 드디어 우리 집에도 "챠르르~~~" 열리는 커튼이 생겼다.
우리 집에 꼭 맞는 맞춤 커튼. 열어보고 닫아보고 한참을 바라봤다. 우리 집인데 우리 집 같지 않았다.
"자기야 자기야~~~ 우리 집 너~~ 무 예쁘지 않아?
나 너무 행복해. "
내 것이라고 여기는 게 없었다. 욕심도 애착도 없었다. 그저 누가 사줘서, 얻어서, 만들어 놓은 것들에 나를 맞추었다. 갖고 있지만 소유하지는 않았기에 있어도 없어도 그만이었던 물건, 사람, 나.
처음으로 꼭 맞는 마음에 드는 구두를 신은 아이처럼
나는.
참 기뻤다.
집이라는 공간과 안정애착을 만들어가는 중이다.
물건도 사람처럼 아껴주면 더 빛을 발하고, 오래 함께 할 수 있다는 걸 배우고 있다. 딱 맞는 물건이오기만 기다리는 게 아니라 봐주고 다듬어 주고 닦아주면 내 것이 된 다는 걸 알아가고 있다. 물건의 쓸모에 따라 충분히 사용하고 아껴주면서집을 사랑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