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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리스러브 이유미 Mar 24. 2022

열다섯 살에 쓴 유서-자살 일기

수비형 엄마가 공격형 엄마를 따라 하면 생기는 일

당신은 공격형 엄마인가요? 수비형 엄마인가요?


책 바깥 이야기


흰 눈이 펑펑 내리는 날 손편지와 함께 책을 한 권 선물 받았어요. 봄바람이 부는 이때가 되어 꺼내봅니다. 제목은 윤우상 작가님의  < 엄마 심리 수업 2>이에요. 첫 꼭지부터 저를 파고드는 글이 나옵니다.

"기질만 알아도 기본은 한다." 저는 제 기질과 아이의 기질을 몰라서 깊은 터널로 들어갔습니다.

공격형 엄마는 액션을 하는 엄마다. 목표가 확실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인다. 수비형 엄마는 리액션을 하는 엄마다. 이 엄마는 먼저 움직이지 않고 아이의 움직임에 맞춰 반응한다. 엄마 기질과 아이 기질의 조합이 중요하다. - 엄마 심리 수업 2-

저는 완벽한 수비형 엄마였습니다. 아이들이 자유롭게 하는 것을 지켜보고, 칭찬해주는 게 좋았어요. 한편으로는 게으른 엄마인가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주변 엄마들처럼 아이 학습과 스케줄을 챙기는 일은 꾸준히 하기가 어려웠어요.


하연이가 중학교 2학년이 되면서 코로나가 시작되었습니다. 딸이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게으르고 무기력해지는 게 내 탓이라고 생각해서 아이를 다그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는 제가 수비형 엄마의 기질인지 몰랐어요. 그저 주변에서 코로나로 교육에 대한 부모의 역할이 커지면서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엄마들을 보며 불안했던 것 같아요.


어느 날 하연이가 노란 노트를 하나 내밀었어요. 엄마가 읽었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일기장이었어요. 죽고 싶다는 이야기로 시작해서 끝맺지 못한 유서가 쓰여있던 자살 일기장.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같이 울었고, 진심으로 사과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사춘기의 자아 정체성과 삶과 죽음에 대한 고민이 다른 아이보다 더 깊이 온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더 관심을 갖고 무엇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심리상담을 예약하고, 좋아하는 그림에 집중하면 활력을 찾을 거라는 생각에 미술학원을 함께 등록했습니다.


미술학원에서 들은 예고 입시 준비 과정은 전쟁이었습니다. 공부, 실기를 위해 하루 4시간 그림과 내신 1등급을 위해 말 그대로 미친 듯이 달려야 했어요. 아이의 죽고 싶을 정도로 우울한 마음을 돌려보자고 시작한 미술이 갑자기 입시로 돌변하면서 공격형 엄마로 변신을 했습니다. 의도는 좋았습니다.  일반 중학교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아이가 일반 고등학교에 가면 힘들게 분명했습니다. 본인도 일반고 진학을 원하지 않았어요. 예고를 가려면 입시를 준비해야 하는데 본인도 원하는 일이니 열심히 할 거라고 착각했습니다. 결국 시험기간에 아이를 닦달하고, 문제집을 들이밀고, 미술학원 스케줄을 관리했습니다. 마음 근육이 약해져 있던 하연이는 돌변한 엄마로 인해 상황이 더 악화된 겁니다.


"수비형 엄마가 수비형 아이 데리고 골 넣겠다고 대들면 그 게임은 질 게 뻔하다. - 엄마 심리 수업 2-"


네. 완벽하게 졌어요. 아이는 무슨 상황인지도 모르고 부모의 공격에 끌려다니다가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

어느 날, 열여섯이 된 하연이는 타이레놀 13알을 삼켰습니다.



책 안 이야기

2021.4. 2. 초고 쓰기 넷째 날의 기록.


4 꼭지를 쓰는 날. 아이의 자살 일기를 따라 쓰며 아이의 마음을 잊지 않도록 가슴에 새기는 중이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하는 잔소리들. 그 말들이 아이를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 그 말들로 사랑하는 자녀와의 관계가 얼마나 파괴되는지. 이 일기를 통해 부모들이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고, 관계가 회복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일기슬 필사했다.

딸이 내밀었던 노란색 노트. 죽고 싶다고 쓰여있던 일기장을 필사하던 날. 꼬불꼬불 울며 썼을 그 글자를 필사하면서 참 많이 울었습니다. 일기에는 아이의 마음에 주홍글씨처럼 낙인찍힌 상처의 흔적이 그대로 담겨있습니다. 딸을 절벽으로 내몰았던 날들. 그 절벽의 끝에서 그래도 자신을 놓지 않고, 나에게 손 내밀어준 딸에게 고마웠습니다.


책에 일기를 한글자 한글자 눌러쓰며 아이의 마음을 담았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가족들! 나 없이도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어.>라고 시작하는 유서. 초고를 수십 번 들여다보면서도 이 부분은 다시 읽어지지 않았습니다. 아이의 글을 그대로 필사했으니 교정할 이유가 없다고 했지만 마음이 아려서 다시 읽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다시, 책 바깥 이야기


수비형이었던 엄마가 공격형의 엄마를 흉내 내면서 나도 힘들다고, 다 너를 위해 하는 거라고, 그런데 왜 안 따라오냐고 했던 잔소리들은 결코 아이를 살리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공격형 부모가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건 절대 아닙니다. 기질적으로 공격형인 부모님은 아이의 기질과 잘 맞춰가며 일관성을 갖고 아이를 대했을 테니까요.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하면 좋은 엄마가 되는 줄 알고 제게 맞지 않는 옷을 입고 버거워하며 아이에게도 맞지 않는 옷을 끼워 입히려 했었습니다. 그것도 자아정체성이 강하게 형성되는 사춘기에 말입니다. 더 깊이 들어가면 엄마의 낮은 자존감, 자기 신뢰감의 부족과도 연결되겠지요.


모든 기질의 충돌이 이런 심각한 상황을 만드는 건 아닐 겁니다. 그 외에도 많은 요인이 있겠지요. 제 딸은 그림을 그리는 아주 민감한 감성을 가진 아이였습니다. 다른 사람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도 민감한 아이에게 엄마의 갑작스러운 변화는 상황을 빠르게 악화시키는 촉매제가 되었을 거라 추측합니다. 아이의 속도, 마음, 기질을 무시하면서 가속도가 붙은  참사였습니다. 좋은 엄마가 사라졌습니다.


" 자기 기질을 잘 알고 아이 기질을 잘 살펴서 아이에게 맞추면서 조금씩 이끌고 받쳐주어야 한다. 그게 제일 좋은 엄마다. - 엄마 심리 수업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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