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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리스러브 이유미 Mar 29. 2022

사춘기 딸과 '대화' 말고
'OO'하는 방법

그래서 책을 쓰고 있습니다 

2021년 2월 9일. 밝기만 하던 열여섯 큰 딸이 타이레놀 13알을 먹었다. 급하게 응급실로 데리고 가면서 모든 일상이 그대로 멈추었다. 아이와 힘겨운 3일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삶은 다시 아무 일 없는 듯 흘러갔지만 더 이상 그 이전과 같지 않았다. 고요한 일주일이 흐르고, 딸과 하룻밤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날 밤의 대화로 사춘기 세상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하연이가 들려주는 십 대의 속마음은 어른이 생각하는 것과 많이 달랐다. 


내가 말했다.

"다른 엄마들도 사춘기 자녀와 갈등이 많던데. 사춘기 자녀와 대화하는 방법 같은 책을 쓰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까?"


딸이 말했다.

 "엄마도 완성된 어른이 아니라서 엄마가 화나는걸 나한테 풀고 나랑 싸운 거잖아. 그러니까 엄마! [사춘기 딸과 대화하는 방법]이 아니라 [사춘기 딸과 화해하는 방법]이라고 해야지. 서로 싸워서 마음이 상했는데 대화가 하고 싶겠어? 엄마도 나한테 진심으로 사과했기 때문에 우리가 대화할 수 있는 거잖아." 


그 말이 맞았다. 아이들의 관점에서 생각해 보지 않았다. 육아서나 사춘기에 관한 책들이 대부분 어른의 관점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밤의 깊은 대화는 서로를 이해하고, 안아주고, 화해하는 시간이었다. 하연이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같은 사춘기의 세상으로 나를 초대했다. 10대는 전혀 다른 세상이라고 말했다. 사춘기가 말하는 사춘기의 세상을 글로 쓰고 싶었다. 나의 문제, 아이의 문제, 그사이 해결되는 과정이 우리 가정만의 문제는 아닐 테니.


하연이에게 책을 같이 쓰자고 했다. 잠깐의 침묵. 그리고 좋다고 했다. 자신도 어른들에게 할 말이 있다고, 어른들 마음대로 그어놓은 10대들의 속마음을 이야기하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하연이와 나는 같이 책을 쓰기 시작했다. 하룻밤의 같은 대화, 같은 상황이었지만 달라도 참 달랐다. 하연이의 글을 받을 때까지 나도 독자가 되어 딸이 쓰는 글을 기대하며 기다렸다. 하연이의 글은 생각보다 어른스러웠고, 또 재밌어서 혼자 키득거리며 웃기도 했다. 글보다 그림이 편한 하연이는 컷 만화를 함께 그렸다. 4컷에 담겨있는 그림, 표정, 대사가 글보다 더 많은 말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나는 아이를 키우며 어릴 적 풀리지 않은 엄마의 내면의 문제들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많은 영향을 주는지 깨달았다. 그 잘못된 감정의 고리가 아이에게 상처를 주고 결국 어떤 방법으로든 얼굴을 드러냈다. 아이와 대화를 하려면 그전에 화해가 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말은 자녀를 하나의 인격으로 대해야 함을 깨닫게 해 주었다. 주변에서 자녀의 갈등으로 힘들어하는 가정을 많이 본다. 아이의 모습은 반항, 우울, 비행, 자해 등 여러 모습을 하고 있지만 마음은 하나일지도 모르겠다. 1년의 시간을 지난 지금 여전히 싸우고 다시 화해하지만 이제는 방법을 조금은 알 것 같다. 이 책이 '상처받은 엄마, 죽어가는 아이들 그리고 이로 인해 상처 입는 가정'을 보듬는 그런 책이 되기를 바랐다.


물론 처음부터 이런 이타적인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건 아니었다. 


다음 이야기 : 솔직하고 애처롭고 보면서 울 엄마들 많을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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