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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리스러브 이유미 Mar 23. 2022

책을 다 쓰고 나면 마음도 아물까?

D-day 21 초고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2021.3.31. 초고 쓰기 1 꼭지를 마쳤다. 책을 쓰기 시작한 게 비로소 실감이 난다. 다른 사람들보다 하루 늦어 조급함도 생겼지만 그 기간 딸과 더 친해지는 시간을 가졌으니 만족한다. 수정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읽고 또 읽으며 자꾸 수정을 한다. 내일은 로미처럼과 함께 새벽에 글을 쓰고, 시간을 정해서 마감해야겠다. 괜찮을 줄 알았는데 여전히 아프다. 다 쓸 때쯤 이 아픔이 아물면 좋겠다.
로미처럼 책쓰기 과정에서 초고를 쓰며 매일 기록했던 초고일기


"초고는 쓰레기다."

글을 쓰는 분들이라면 거의 관용어처럼 쓰고 있는 이 말을 저는 처음 들었습니다. 책을 쓰기 전에는 전혀 들어보지 못했어요. 그만큼 내게 책 쓰기는 전혀 다른 세상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런 제가 책을 썼어요. 35일 동안 초고를 쓰면서 기록한 초고 일기를 다시 열어봤어요. 그때의 마음을 더듬어 그때는 차마 다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써보려 합니다.


초고 쓰기 첫날

2021년. 그러니까 작년 3월. 로미처럼 책 쓰기 과정에서 9명의 작가님들과 책 쓰기를 시작했어요. 2주에 걸쳐 목차를 잡았습니다. 이제 목차에 따라 35일 동안 매일 A4지 2페이지를 어떻게든 채워 나가야 합니다.  9명은 새벽 5시~7시까지 매일 모여 초고를 썼어요. 책을 쓰기로 한 첫날. 저는 첫 날도 다시 아이와 친해지기 위해 무언가를 했나 봅니다. 아니면 첫 글을 떼기 망설여졌을 수도 있겠어요. 저의 첫 꼭지(소제목) 제목은 "타이레놀 13알"이었어요. 1 꼭지는 하연이가 타이레놀을 13알이나 먹었다고 연락을 받고, 아이를 데리러 가는 이야기예요. 여전히 그날의 기억은 아주 먼 기억 같기도 하고, 너무 생생해서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합니다. 하루 늦은 수요일. 드디어 책의 첫 줄을 썼습니다.  


"사고는 언제나 예고 없이 일어난다. 그날도 그랬다.     

2021년 2월 9일 화요일. 

퇴근 후 가방을 던져놓고 바쁘게 아이들 먹일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다. 메뉴는 된장찌개."


A4 지를 2장 채우는 일은 쉽지 않았어요. 첫 줄을 쓰는데 한 시간이 넘게 걸린 것 같아요. 모니터를 노려보다 생각을 더듬다가 쓰고 수정하고, 다시 쓰고를 얼마나 반복했는지. 첫날에 벌써 글은 엉덩이로 쓰는 거라는 말이 실감이 났습니다. 초고는 절대 돌아보거나 수정하지 말고 일단 쓰라고 한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겠더라고요. 2시간이 넘어 3시간을 향해 가는데 한 장을 못 넘기고 있었어요. 지쳐갔고 어떻게든 채워야겠다는 생각에 그때부터는 두 번째 페이지의 끝을 향해 Enter를 치는 일에 의의를 두었습니다. 마감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아마 첫날 그 시간을 놓치면서 혼자 표류된 듯했습니다. 


상처를 기록하는 일

괜찮을 줄 알았는데 처음 초고를 쓸 때도 여전히 아팠습니다. 나의 표정, 통화내용, 그때의 감정, 나의 움직임, 눈에 보이던 것들, 학원 앞에서 축 늘어져 있던 아이를 처음 보았을 때의 떨림. 1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의 상황이 생생하게 살아납니다. 충격적인 사건이어서 그랬는지, 글로 쓰고 수정하면서 기억이 재생되어 장기기억으로 남은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과연 끝까지 쓸 수 있을까.' '그리고 다 쓰면 마음도 아물까.' 의문이 들었어요. 1년 후의 지금 돌아보면 둘 다 틀리기도 맞기도 해요. 끝까지 쓰고 출간을 기다리고 있지만 여전히 다 쓰지 못한 이야기 가 있어요. 


마음은 아물었을까요. 

초고는 마음에 뭉쳐 있던 커다란 덩어리를 꺼내어 껍질을 까고 또 까서 늘어놓은 모습이었어요. 중심으로 들어갈수록 몸서리치게 거부하고 싶었어요. 그냥 덮어두자고. 이 정도면 되었다고. 그런데 마지막까지 꺼내지 않으면 내 딸이 그렇게 아픈 이유를 설명할 길이 없었어요. 널어놓은 상처들을 마주하는데 한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내 것이라고 인정하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어요. 수정하려고 글을 대할 때마다 같은 상황이 끝없이 재연되었고 아물고 있는 상처 딱지를 일부러 떼어내고 딱지가 생기는 일의 반복이었어요. 그렇게 1년을 반복하면서 면역력이 생겼습니다.


터널 속에서

딸과 저는 캄캄한 터널 속에 있어서 서로를 제대로 볼 수 없었어요. 그런데도 함께 있으니 되었다 했거든요. 서로를 이해하고 수용하지 못한 채로 마주하면 더 상처가 된다는 걸 알았어요. 책을 쓰는 동안도 싸우고 화해하는 일을 반복했고, 그럼에도 끊임없이 대화하면서 책을 만들어갔던 시간을 통해 다시 터널 밖으로 나올 수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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