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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리스러브 이유미 Oct 24. 2021

2. 바가지 머리 그 녀석, 해피봉

후광

아이러브스쿨은 친구들을 불러 모았다. 나는 동창회가 싫다. 초등학교 6학년 동창회. 외롭고 창피했던 6학년 기억을 다시 만나는 일은 반갑지 않았다. 이름도 모르던 아이가 친한 척을 한다. 가벼운 인사말이 오가면 이어질 말이 없었다. 다른 친구를 찾아 두리번거리는 시선이 싫어서 다시는 나가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절대. 그런데 다시 동창회에 오다니. 그 애가 온다고 했는데.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찐빵같이 생긴 바가지 머리 그 녀석에게 호기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호프집이 동창들의 목소리로 들썩들썩했다. 전세를 냈나. 유독 목소리가 큰 아이가 테이블을 옮겨 다니며 분위기를 띄운다. 4명씩 나눠진 테이블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그 아이는 왜 안 오지. 

      

어느 날부터 아이러브스쿨에 매력적인 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모두가 사회 초년생의 어려움, 실업난, 평생 벌어도 집도 못하는 청년 신세 (그때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를 하소연할 때 ‘사랑해. 괜찮아. 행복할 거야.’ 얼마나 이상하던지. 한량처럼, 득도한 것처럼 이상적인 말만 하는 글을 묘하게 쫒고 있었다. 앙칼진 발톱을 세우고 세상을 보던 나에게 묘한 호기심을 자극했다.    

  

어? 봉! 이 아이는 초등학교 때부터 나를 좋아한다고 말만 들었던 ( 직접 고백한 적은 없다. 친구들을 통해 전해 들었다.) 바가지 머리 그 녀석이네. 아이들은 그 녀석을 '해피봉'이라 부르고 있었다. '그냥 호기심이야. 나를 그렇게 쫓아다니던 그 아이가 어떻게 자랐나 보려는 거지.' 그때 문이 열리고 종이 울렸다. 아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몰렸다. 내 눈을 의심했다. 


겨자색 재킷을 받친 다부진 어깨, 말끔한 청바지.

당당한 이마와 날렵한 턱선.

활짝 웃는 미소에 보이는 가지런한 이.

훈훈한 청년이 당당하게 손을 흔들며 들어왔다.


세상에, 빛이 났다.

하와가 눈을 뜬 것처럼 세상이 밝아졌다.     


'바가지 머리 똥글이는 어디 간 거니? 뭐야. 나 반한 거야? 반하면 안 돼. 반전 매력인 거야. 기대치가 너무 낮았던 거지. 상대는 초딩부터 나를 좋아하던 코 찔찔이 바가지 머리라고. 입이 작아 볼이 더 통통해 보였는데 바가지 머리까지 얹어 완전한 동글 체 찐빵이었잖아. 이름도 봉이 뭐야.

봉봉.

달봉이.

절봉이.


이름 세 글자에 O이 있어 더 동그래 보이던 그 녀석. 만화 속 주인공들과는 한참 먼 얼굴이었다. 캔디와 주디처럼 주인공은 시련이 많은 거라고 맘을 달래며 울었었다.  들장미 소녀 캔디, 키다리 아저씨의 남자 주인공은 키가 크고, 얼굴이 갸름하고, 살짝 옆가르마를 탄 머리가 웨이브 치듯 양쪽으로 넘어갔다. 남자 친구는 마땅히 그래야 했다. 그러니 나를 좋아한다던 절봉이의 아기 같은 바가지 머리가 그렇게도 싫었다. 나도 키가 작은데 나보다 앞줄이라니. 백만 년을 쫓아다녀도 땡이다 했던 그 아이를 힐끗힐끗 보면서 호시탐탐 말할 기회를 노리고 있다니. 

    

나를 향한 짝사랑의 역사는 길었다. 같은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나는 합창부 동아리에 들어갔다. 그 소식에 무작정 지원한 해피봉은 심한 음치였나 보다. 오디션도 안 본다는 합창부에 기적적으로 떨어졌다. 그 이후 합창부 캠프에 와서 장작을 팼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제는 쳐다보지도 않네. 이제 안 좋아한다는 건가. 뭔 지조가 없어. 자존심 상하지만, 절대 먼저 마음을 주지 않기로 했지. 상처 받지 말고 나를 지켜야 해.' 

그런데 자꾸 눈이 간다.  해피봉은 모두에게 인기였다. 테이블은 아이들로 북적였다. 해피봉 앞자리를 릴레이하고 있었다. 그 마지막에 줄을 서고 싶지는 않았다. 한바탕 다녀가고, 드디어 자리가 비었다. 기회가 왔다. '에잇, 그래. 몇 년을 나 좋다고 쫓아다녀 준 고마운 녀석인데 술 한잔 하자 하지 뭐.' 침착하게 소주병과 잔을 들고 그 자리로 갔다.     

“안녕, 잘 지냈어? 오랜만이다. 자, 한잔 받아.”     

싱글벙글 웃으며 대답하는 너.     

“요즘 비장이 안 좋아서 소주 안 마셔.”     

이런 젠장. 쪽팔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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