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 9일. 딸아이가 타이레놀 열세 알을 삼켰다. 딸아이를 응급실로 데리고 가는데 시간이 멈추어버린 것만 같았다.
‘왜 아이가 약을 먹었을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아이가 잘못 될까 두려웠다. 처음엔 죄책감이 들었다. 그러다 그런 선택을 한 아이에게 화가 났다. 그러다가도 이러다 아이가 죽는 게 아닐까 싶어 겁이 났다. 내 아이를 지켜야겠다고 생각했다.
돌이켜보니 내 마음도 해결하지 못하고 덜컥 엄마가 되었다. 아빠의 부재, 알코올에 의존했던 엄마, 심리적 트라우마로 인해 나는 우울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정서적 안정을 찾지 못해 방황했다. 우울감은 사는 내내 나를 따라다녔고, 결혼 후에도 해결되지 않았다. 나의 전부를 줘도 아깝지 않을 정도로 아이를 사랑했지만, 정작 아이를 사랑하는 법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우울감을 견디며 아이를 키우는 것만으로도 벅찬 하루하루였다.
다행히 아이는 잘 자라주었다. 밝고 적극적이고 에너지가 넘쳤다. 그러다 중학교 2학년생이 되면서 아이가 변했다. 그저 사춘기이려니 생각했다. 게으르고 무기력하고 반항하는 아이를 억지로 끌고 나오려고 했다. 하지만 아이는 요지부동이었다. 아이를 이해할 수 없었고, 나의 우울감도 더욱 깊어졌다.
아이를 이해해주고 참아주려고 했다. 그런 엄마가 될 수 있길 간절히 원했다. 하지만 참으면 참을수록 우울은 분노로 변했다. 엄마의 우울은 아이에게 분노의 형태로 전달되었다. 그렇게 둘 다 만신창이가 되었다.
우리는 같이 심리 상담을 받으러 갔다. 심리 검사 결과, 나는 성인 우울증이고 딸은 청소년 우울증이란 진단을 받았다. 둘 다 ‘우울 정도 심각’이라는 소견이 나왔다. 그렇게 우리는 같이 상담을 받기 시작했고, 그걸로 괜찮은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급기야 딸이 약을 먹고 만 것이다.
뒤늦게 공부를 시작했다. 사춘기, 중2병, 청소년 우울증에 관한 책을 읽고 자료를 찾았다. 청소년 우울증은 사춘기와도 달랐고, 성인의 우울증과도 달랐다. 아이가 내보이는 감정에 반응하는 데 급급한 나머지 절벽 끝에 서 있는 아이를 밀고 있었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 이미 늦은 건 아닐까? 너무 멀리 와버린 건 아닐까? 딸과의 관계를 돌이킬 수 있을까?
다행히도 딸은 자신의 사춘기 세상으로 나를 초대해주었다. 우리는 하룻밤 동안 긴 대화를 나누었다. 대화를 하다 보니 딸의 시선으로 보는 세상은 내가 보는 세상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그제야 아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같은 행동이 하나둘씩 이해되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편안하게 교감했고, 안정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은 청소년 우울증에 걸린 딸과 소아 때부터 우울증에 앓고 있던 엄마의 화해와 치유의 기록이다. 서로 다른 세계에 살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들이 마주 앉아 길고 어두운 터널을 함께 지나 마침내 터널 밖으로 나오게 된 이야기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우리가 서로 다른 앨리스임을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그리고 서로 다름에도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이해의 폭을 넓혀갈 수 있었다.
물론 아직 완결된 것은 아니다. 사는 동안 이 길은 완결되지 않을 것이다. 그저 같이 걷는 일만 있을 뿐. 그 보폭이 항상 일정하지는 않겠지만 같이 걷고 있는 게 중요하다. 서로 충분히 의견을 나누며 이해하며 걸으면 될 뿐이다.
어제도 뉴스에서 아파트 옥상에서 몸을 던진 청소년 소식이 나왔다. 예전 같으면 어쩜 저런 일이 다 있느냐고, 참 안됐다고 혀를 차며 잠시 안타까워했겠지만, 지금은 평범한 가정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런 소식을 접할 때마다 마음이 무겁다.
사춘기 청소년에게 생과 사는 아슬아슬한 줄타기다. 아이들의 선택은 충동적이고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내 아이는 아닐 거라고? 나는 이제 감히 그렇게 말할 수 없다. 나는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다. 그래서 말하고 싶었다. 죽음을 선택한 아이와 고통받는 가족의 이야기를. 사실 너무 내밀한 이야기라 주저되었던 것도 사실이나, 나의 케이스가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용기를 내었다. 아이의 선택 앞에 죽을 만큼 두려웠지만 그 와중에 나름의 해답을 찾을 수 있었던 나는 운이 좋은 케이스니까. 그런 내가 받은 숙제일지도 모르겠다.
이해의 폭을 넓혀가고 있는 어느 날, 딸에게 물었다.
“‘사춘기 딸과 대화하는 법’과 같은 책을 쓰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해?”
“대화가 아니라 화해가 먼저지. 엄마들도 화나서 우리한테 소리 지르고 같이 싸우는 거잖아.”
생각지 못한 부분이었다. 대화를 거부한다고만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안 좋은 감정을 풀어내고 싸움을 멈추는 것이 우선이었다.
“대화보다 화해가 먼저구나.”
우리는 화해를 시도했고 여전히 화해 중이다. 이 책은 그 과정을 그대로 담았다. 딸의 글과 그림으로 아이들이 보는 세상도 담았다. 그런 만큼 이 책을 자녀와 함께 읽어주면 좋겠단 생각이 든다. 그리고 자녀와 더 많은 대화를 하는 데 계기가 되었으면 하고 바란다. 아니, 먼저 싸우면 좋겠다. 그러고 난 후 꼭 화해하기 바란다.
그 일이 있고 한 달 후 딸에게 생일카드를 받았다.
고마워.
무엇이 고맙냐고 물어본다면
역시 따라오는 그 물음이 고맙다고 말할래.
-나선비, 〈네가 있어줬잖아〉
엄마도 고마워. 네가 있잖아.
2022년 3월
비로소 진짜 엄마가 되어가고 있는
이유미
이 브런치 북은 예민한 엄마와 청소년 우울증 딸의 화해와 치유를 향한 여정을 쓴 < 그냥 살아만 있어 아무것도 안 해도 돼 > 의 이야기를 일부 발췌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