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을 꺼내러 냉장고로 가는데 식탁 위의 핸드폰이 울렸다. 하연이 미술 학원 선생님이었다. 하연이는 예고 입시를 준비 중이었다.
식탁 의자를 빼서 앉았다. 선뜻 전화를 받기가 망설여졌다. 2주 전 일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날은 학원 수업이 여덟 시간이나 있는 날이었다. 새벽 5시에 하연이 방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컴퓨터를 하며 날을 샌 것이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화를 참으며 이를 꽉 다물고 노크를 했다.
“하연아, 오늘 수업 여덟 시간이나 하는 날이잖아. 밤새고 수업 받을 수 있겠어? 이제라도 빨리 자.”
“네.”
네 시간 후 딸을 깨워야 한다. 아무리 반복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일이다. 커피를 진하게 타서 마셨다.
“하연야, 학원 가야지!”
다섯 번쯤 불렀을까, 아이가 힘겹게 일어나 앉더니 울먹였다.
“엄마, 나 예고 안 가면 안 될까?”
“……그래, 그렇게 하자.”
선생님께 연락을 했다.
“선생님, 아무래도 하연이 예고는 포기해야겠어요. 너무 힘들어하네요.”
“어머니, 어제 아이들 몇이 지각을 해서 제가 좀 세게 말했어요. 안 그래도 지각이 좀 잦았거든요. 아마 그래서 그런가 봐요. 입시 미술반 시작 시기에는 아이들이 오래 앉아 있는 거 힘들어해요.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져요. 지금 포기하면 나중에 대입 준비할 때 후회할 수도 있어요. 하연이 재능이 아까우니 제가 잘 이야기해볼게요. 오늘은 푹 쉬라고 하시고, 다음 주에 보내주세요.”
선생님 말씀을 들으니 그런 것도 같았다. 아니, 욕심이 났다. 입시 미술이 마냥 재미가 있을까. 이렇게 쉽게 그만두고 나중에 후회하면 어쩌나.
“하연아, 오늘 학원 쉬고 너 좋아하는 마라탕 먹으러 가자!”
마라탕의 알싸한 국물을 마시고 기분이 좋아진 하연이는 조금만 더 힘내보자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2주간 잘 다니는 것처럼 보였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