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오늘. 학원 선생님한테 전화가 온 것이다. 학원 선생님의 전화는 늘 반갑지 않은 소식을 전해 온다. 결국 전화를 받았다.
“네, 선생님.”
“안녕하세요, 하연이 어머님. 여쭤볼 게 있는데요, 하연이가 평소에 약을 자주 먹나요?”
“네? 약이요? 아니요.”
“하연이가 속이 안 좋다고 화장실에 갔는데 오지 않아서 가보니 없어졌어요. 약을 많이 먹었다고 하는데 거짓말인지 정말인지 알 수가 없어서요. 진짜면 너무 걱정돼서요.”
“네? 약을 먹어요?”
“네, 타이레놀 열세 알을 먹었다고…….”
“네? 열세 알이요?”
생리통으로 아프다고 해서 사준 빨간색 타이레놀 박스가 영화의 한 장면처럼 눈앞에 나타났다. 떨리는 손을 붙잡았다. 거짓말이면 좋으련만, 겁이 많아서 그런 거짓말은 하지도 못하는 아이다. 아무 생각도 나질 않았다. 아이를 데리러 가겠노라 하고 전화를 끊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일단 검색창을 열어 다급하게 타이레놀 과다 복용 시에 어떤 문제가 일어나는지 알아보았다.
하루 최대 정량은 8알이며, 10알 이상 넘으면 간 손상이 올 수 있음. 미국에서는 타이레놀을 자살 약으로 사용하기도 하며…….
심장이 세차게 뛴다. 마음이 급해졌다. 아이를 찾아 병원에 데리고 가야 하는데.
딸의 번호를 누르는 손이 떨렸다.
‘안 받으면 어쩌지? 사라졌으면 어떻게 해.’
“여보세요.”
얼마나 울었는지 꽉 잠긴 목소리였다.
“엄마, 나 오늘 집에 못 가겠어. 친구네 집에 가서 하룻밤 자고 내일 가서 이야기하면 안 될까?”
어떻게든 병원에 데리고 가야 한다. 달래볼까, 협박을 할까.
“너 친구네 그냥 가면 엄마도 타이레놀 스무 알 먹고 죽을 거야.”
이런 말도 안 되는 협박이라니. 그래도 내 딸에게는 통할 것이다. 동시에 달래도 본다.
“먼저 병원에 가자. 병원에서 괜찮다고 하면 엄마가 친구네 데려다줄게.”
“알았어.”
바로 남편에게 전화를 거는데 눈치가 빠른 둘째가 물었다.
“뭔 일 있어?”
“응, 누나가 좀 아프대. 동생 데리고 편의점 다녀올래? 아빠 곧 오실 거야.”
그렇게 아이 둘을 편의점으로 보내고 뛰쳐나갔다.
‘운전할 수 있을까? 해야지. 죽어도 해야지.’
마음을 다잡고 시동을 걸었다.
학원 앞에 도착해서 선생님과 함께 내려온 딸을 보았다. 약을 먹어 그런 건지, 너무 울어 그런 건지 퉁퉁 부은 얼굴에 기운도 의욕도 없어 보였다. 선생님께 감사하단 인사를 드리고, 아이 손을 붙잡고 차를 세워둔 쪽으로 이끌었다. 축 늘어져 엄마 손에 이끌려 터벅터벅 걷는 모습이 너무 낯설었다. 너무도 밝고 어여쁜 소녀였던 내 딸은 그렇게 죽어 있었다.
“왜 그랬어!”
엄마의 말에 눈물만 주르륵 흘린다.
“아프면 말을 하지, 왜 몸을 상하게 해.”
나도 눈물이 흘러 더 물어볼 수가 없었다. 침묵 속에 아이를 차에 태워 근처 응급실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