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로 찰나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이들에게
눈을 뜨고 일어났는데 몸이 천근만근처럼 느껴지는 날이 있다. 눈은 떴는데 무거운 철근에 눌린 것처럼 이불에 붙어서 손가락조차 움직일 수 없는 기분. 이런 상태의 대부분은 어떤 스트레스 요인으로 인해 몸에 신호가 온 경우다. 나의 트라우마를 건드리는 어떤 신호탄이 터진 것이다. 애써 괜찮다고 머리로는 생각하고 있었지만,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내 몸은 경계태세를 갖추고 모든 에너지를 그 스트레스를 방어하는데 쏟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우울증을 앓아왔고, 많이 회복되었다. 우울의 주기도 짧아지고, 회복하는 능력도 좋아졌다. 그럼에도 이렇게 갑자기 신호가 나타나면 한동안은 그런 나를 그대로 받아줘야 한다. 나는 정신과 의사 반 데어 콜크의 <몸은 기억한다>를 읽고 나의 몸 상태를 많이 이해하게 되었다. 그래서 내 몸이 이유 없이 가라앉고, 두통, 복통이 오면 이 책을 펼쳐 든다. 오늘 읽은 내용에는 이런 구절이 있었다.
절망을 이겨 내려면 필사적인 방법이 필요하다.
순전히 살아남기 위해서 하는 행동에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소요되는지 잘 알기에, 생존을 택하는 대신 자기 자신의 몸과 마음, 영혼을 아끼고 돌볼 줄 모르는 상태가 되는 것도 당연한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몸은 기억한다. 439P
나는 때때로 아주 이기적이 된다.
날 도와준 사람, 내게 손 내밀어준 사람, 곁에 있어준 가족들, 기도해주는 사람들, 내가 돕고 기여해야 할 사람들까지 모두 잊은 채 철저하게 자기중심이 된다. 전에는 그런 내가 참 한심하고 작은 사람처럼 보일 때가 있었다. 그런 내가 싫었다는 게 더 맞는 것 같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당연한 일일 수 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생존을 위해 내 몸과 마음, 영혼조차 아끼고 돌볼 수 없는 상태가 되기도 하는데 하물며 다른 사람을 위하는 일일까. 모든 에너지를 소진해서 다른 곳에는 쓸 수 없는 상태가 되는 배터리 방전의 상태를 막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을 알아주기로 했다. 생존을 위한 선택이었다고. 먼저 살아야 하니 지금은 그게 맞는 거라고. 괜찮아지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올 거라고 내게 말해준다.
모든 감정들은 느껴야 할 필요가 있다. 발버둥 치며 날뛰어야 할 필요가 있고, 흐느껴 울거나 엉엉 울어야 할 필요가 있으며, 두려움으로 벌벌 떨 필요도 있다. 이 모든 것은 시간이 걸린다. 감정의 회복이란 과정이지 하나의 사건이 아니다. 그러나 거의 즉시 나아지곤 한다.
상처받은 내면 아이 치유에서
모든 감정들은 느껴야 할 필요가 있다.
나는 오늘 차 안에서 소리치다 엉엉 울다 흐느껴 울었다. 너무 아프다 말하고, 이런 나를 애도했다.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내 마음이 그 모든 감정들을 충분히 느끼고, 지금은 괜찮다고 말해주는 또 다른 나의 위로가 전해지기를 바라면서. 시간이 지났다. 사무실로 가던 차를 돌려 자주 가는 강가의 카페로 갔다. 바람을 저항하며 걷고, 4초간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2 주간 멈추고 다시 4초간 길게 내쉬고, 멍하니 앉아 온전한 이기심으로 나만을 위한 시간을 보냈다. 내 안에 에너지를 다시 채웠고 호흡이 정상으로 돌아왔고 손과 발에 채워져 있던 모래주머니 같은 무거움이 사라질 때쯤 지금을 다시 인지할 수 있었다.
드러난 약점은 약점으로 남고,
드러낸 약점은 강점이 된다.
약점을 드러낸다는 것은 강해졌다는 것이다.
못난 사람은 약점을 감추고, 난 사람은 약점을 보여준다.
드러낸 약점은 그 사람을 흔들지 못하고 더 빛나게 해 준다.
모든 일은 나를 위해 일어나는 것이며, 나를 더 좋게 만들 거라는 걸 믿는다.
남편에게 톡이 왔다. "약점을 드러낸다는 것은 강해졌다는 것이며, 드러낸 약점은 그 사람을 흔들지 못하고 더 빛나게 해 준다." 내가 약점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하나하나 드러낼수록 더 투명해짐을 느낀다. 물론 그 과정이 차라리 세상이 끝났으면 하고 바랄 만큼 두렵고 아프지만, 나는 계속 강해질 것이고 빛날 것을 믿는다.
깊은 나락으로 떨어질 때면 마치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 이런 것일까 싶을 만큼 끝없는 우주로 떨어지는 기분이 든다. 만약 그때 단 한 사람이 도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며 나는 이렇게 아팠는데 이겨냈다고 말해주었다면 영원한 어둠에서 눈을 떴을까. 나의 처량한 울음만 들리던 귓가에 노랫소리도 들렸을까. 외로움. 그 처절함을 알기에 우주에 혼자 남겨진 이들을 찾고 있다. 빛나는 내 빛으로 그 들의 세상에도 빛이 스며들도록 계속 나의 약점을 드러내고, 더 강해질 것이다.
내 신호가 들리나요.
내가 여기 있어요.
당신의 절망을 아는 내가 여기 있어요.
지금은 이기적이어도 괜찮아요.
그렇게 살아요.
그러다 보면 또 원래의 빛나는 당신으로 돌아올 거예요.
내 말을 믿어요.
나도 그랬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