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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라 오드리 Apr 05. 2022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한 시간 전.

우선 밝은 노래로 텐션을 끌어올린다. 옷은 지난주에 입지 않은 걸로 겹치지 않게 골라 입는다.

카메라를 켜서 조명과 얼굴 상태를 확인한다.

물을 한 모금 물고 조금씩 삼킨 후 입을 푼다.

오늘 첫 영상은 Spring~

단편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데 얼마 전 정말 멋진 작품을 찾았다.

일찍 오는 친구들을 위해 보관함에 잘 넣어두고 확인을 끝냈다.


친구들의 이름을 한 번 확인하고 수업 안내 문자를 보낸다.

오늘 읽은 책은 벌써 책상 위에 놓아두었다.

수업 자료를 하나씩 열어보고 작은 아이콘으로 내려놓고 줌을 연다.


눈을 감고 주문을 외운다.

오늘도 나를 믿고 잘해보자! 준비는 끝났다!



내 첫 번째 꿈은 아버지 꿈이었다.


아버지는 공부를 정말 하고 싶었지만 가정형편이 어려워 자신의 꿈을 포기했다. 어렵게 독학으로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서 책만 보는 아버지로 사셨다. 그런 아버지의 기대는 장녀인 내가 한 몸에 받게 되었는데 내 어린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사진은 볼이 빨간 어린 꼬마가 힘겹게 간신히 법전을 들고 찍은 사진이다. 

맏이는 법관으로 둘째는 경찰관으로 만드는 것이 아버지의 꿈이었다. 


사진 찍기도 어려웠을 그 시절에 법전을 든 사진은 가족앨범에 첫 페이지에 등장한다. 약주를 거하게 하고 오신 날은 잠든 나를 깨워 꼭 법관이 되어야 한다며 다짐을 받으셨다. 아버지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어린 나이에 떠난 유학길은 내가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 일깨워줬다. 법관이 될 만큼 똑똑하지도 않았고 인내심도 없었다. 그리고 공부에 흥미도 없었다. 학교 후 돌아오는 길에 들린 작은 서점은 내게 위로가 되었다. 내 손바닥보다 조금 큰 사이즈의 세계문학 문고는 가격이 크게 비싸지도 않았고 책을 읽는 동안은 내가 처한 상황을 잊을 수 있었다. 인형의 집에 갇힌 로라는 남편의 보호와 사랑 속에 안전하다고 믿었고 그 사랑은 진심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웃지 못할 해프닝으로 자신의 처지를 깨닫는 로라를 보며 안타까운 마음에 분노가 치솟았고 인간의 순수하지 못한 마음에 아팠다. 중국 농민의 삶을 대작으로 그려낸 펄벅의 대지는 몇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 느낀 감동이 파도처럼 휘몰아친다. 다시 읽는다면 그 감동 그대로 느낄 수 있을까?


그 시절은 내게 지우고 싶은 페이지로 남아 문득문득 떠오를 때면 가슴이 저민다. 다행히 중학교는 가족의 품에서 다닐 수 있었고 그런 아픔 때문인지 어느 순간 내 꿈은 문학을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Pixabay

국어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매번 나가는 시화전과 글짓기 대회는 내가 글을 좀 잘 쓴다는 착각을 하게 만들었다. 더 중요한 건 나는 책이 좋았다. 방과 후 학교 도서관은 내 아지트가 되었고 도서관과 관련된 모든 동아리와 봉사활동은 무조건 참여했다. 아마 그때도 아버지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나 보다. 


고등학교 3년. 성적이 좋지 않았다. 

이쯤 되면 아버지도 포기하실 줄 알았는데 법관 대신 꿈을 조금 낮추셨다. 결국 나는 내 꿈을 꾸는 대신 아버지의 꿈을 좇았고 내게 맞지도 좋아하지도 않은 일을 위해 13년을 버텼다. 다들 그렇게 사는 거라고 정말 꿈을 이룬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고 되지도 않은 위로를 하면서... 

적당이 나와 현실 사이에서 타협하며 살았다. 다행히 경제적 여건이 나쁘지 않았고 낙천적인 성격 덕분에 사회생활도 적당히 즐거웠다. 간간히 떠나는 여행은 20대 내 삶을 풍요롭게까지 했다. 가끔 이대로 살면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넌 꿈이 뭐니?

결혼을 하면서 남편에게 한 가지를 부탁했다. 아이는 꼭 내가 키우고 싶다고. 일을 그만둬도 되겠냐고. 다행히 우린 둘 다 큰 욕심이 없었고 가진 것에 만족하며 살자고 약속했다. 

"있잖아, 네가 진짜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해봐. 난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 좋겠어."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 놓고 도서관을 기웃거리며 다양한 수업을 듣는 내게 남편이 툭 던진 한 마디였다. 어쩌면 꺼져버렸을지도 몰랐을 그 불씨는 조금씩 커져 다시 내 마음을 환하게 가득 채웠다. 책에서 만나는 이야기들은 나를 꿈꾸게 만들었다. 내 꿈과 아이의 꿈은 함께 자라고 있었다.


내 발음과 녹음파일을 들으며 몇 번이고 다시 읽어보았다.

오늘 진행할 수업의 순서도 다시 되새겨보고 자리에 앉아 아이들의 이름표를 하나씩 눈에 익힌다.

아이들의 출석부


딩동~ 소리와 함께 입장이 시작되었다.

호기심이 가득한 얼굴 반 낯섦 반이 교차한다. 앞으로 5분이면 이 친구들은 내 편이 될 것이다.

내가 원해서 온 친구들은 자신의 선택이 반가울 테지. 엄마가 강제로 신청해서 어쩔 수 없이 앉아있는 친구는 잠시 괴롭겠지만 금세 나와 장난치고 내가 하는 이야기에 마음을 빼앗길 것이다.

두근두근 콩닥콩닥 

가슴이 뛴다. 비디오를 켜고 얼굴을 공개한다.

"Hello everyone~ welcome to the Audrey Show!"


나는 아이들이 더 큰 꿈을 꿀 수 있도록 도와주는 영어 그림책 강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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