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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로북극성 Feb 10. 2022

이별의 순간에 만난 미덕

헤어짐이 영원한 이별은 아님을 믿으며...


버스 창으로 따스한 햇살이 비친다.

뜨겁지도 않고 적당히 따스한 햇살의 온기가

내 머리에 와닿는다.

어릴 적, 엄마 무릎을 베고 누워있으면

엄마가 머리를 쓰다듬다

살살 귀지를 파주던 그날이 떠오른다.

솔솔 잠이 온다.


깜빡 졸았나 보다.

고개가 휘청하며 번쩍 눈을 떴다.


'아, 내가 졸았구나.

어떻게 졸 수가 있지?

지금 이 순간, 잠이 들 수가 있다니...

아빠를 땅속에 묻으러 가면서 딸이 어떻게 졸 수가 있니?

네가 인간이야?'

나 자신에게 욕을 퍼붓고 싶었다.


십 년 정도, 영구차에서 졸았다는 이야기를 누구에게도 하지 못했다.

인륜을 저버린 불효녀인 것 같은 죄책감에.

잠의 본능도 이겨내지 못한 모질이같아서.




1997년 5월 2일.

우리 아빠는 하느님 나라로 떠나셨다.

4월 12일 뇌출혈로 쓰러져 뇌 수술을 두 번 받고, 

깨어나지 못하셨다. 


병원에서는 일부러 재운다고 했다. 

깨어나면 자신의 상황을 생각하느라 

뇌가 활동할 것이고

그럼 다시 출혈이 올 것이고, 

그러면 사망이라고 했다.

그렇게 아빠는 잠들어 있었다.


'나한테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어?

아빠! 얼른 일어나!!!

우리를 이렇게 두고 가는 건 아니지!!!'


하루에 한 번, 면회할 때마다

속으로 울부짖었다.

원망했다.


'이건 아니잖아!'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엄마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남편을 포기하는 배우자라니, 그건 배신이지! 엄마도 나쁘네!' 

맘속은 전쟁터였다. 

분노와 원망, 슬픔과 두려움이 세계 챔피언 매치처럼 

서로에게 주먹질을 해댔다. 


그렇게 3주를 중환자실에서 버티다

이별의 말을 전할 기회도 주지 않고 떠나셨다.

현실을 받아들이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때, 나는 스물세 살이었다.




오늘 장례미사에 다녀왔다.

남편과 같은 나이, 51세.

중3이 되는 쌍둥이 아빠.

80대 노부모의 장남.

공부 잘하고 인기 많았던 의사 아들은

평생 부모님의 자랑거리였다.


그가 오늘 가족들을 남겨두고 하늘나라로 들어갔다.

영정을 든 딸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부축을 받으며 지팡이를 짚고 

아들의 관을 따라 걷는 아버지.

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는 어떻게 눈을 감았을까?

우리 아빠는 우리를 두고 어떻게 눈을 감았을까?


그들에게 묻고 싶은데

답을 들을 수가 없다.




이제는 알 것 같다.

사람이 어디까지 욕심을 낼 수 있는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살아있는 동안 하루하루

사랑하고 사랑받고 감사하고 감동받고

나눠주고 베풀고 행복해야 하는 것뿐.


딱 거기까지.

그 이후는 우리 영역이 아니다.

그걸 아는데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깨를 들썩이며 울음을 참던 어여쁜 딸이 

나보다 빨리 현실을 받아들이고 평온해지길 기도한다.

차마 관을 바라보지 못하고 등 돌리고 서있던 아들이 

서둘러 떠난 아빠를 용서하길 기도한다.

지친 표정으로 눈물도 못 흘리던 아내는 

기운을 찾고 아이들과 잘 견뎌내길 기도한다.

세상에서 제일 잘난 아들을 앞세우신 늙은 부모님들의 건강을 기도한다.


이생에서는 이제 못 만나지만 완전히 헤어진 건 아니다. 

우리는 정신으로 연결되어 있다. 

서로를 사랑하고 위해주던 마음은 

영원히 함께한다는 것을 나는 이제 안다.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님을 느낀다. 

그러니 예고도 없이 가족을 떠난 아빠를 

이해하고 용서해 주었으면 한다. 

나보다 일찍 깨달았으면 좋겠다. 





오늘 미사 때, 나는 아빠와 이야기를 나눴다.

오늘 하늘나라에 들어간 냥반, 

아빠와 비슷한 분이니 잘 좀 부탁한다고.


난 아빠를 많이 사랑했고

지금도 사랑한다고.

하늘나라에서 우리 가족 잘 되게 팍팍 밀어달라고.

여기 있을 때보다 더 열심히 지켜달라고.


아빠도 떠날 때 얼마나 힘들었을지

이젠 나도 알 것 같다고.

그건 우리 힘으로 어쩔 수 없었다고.

나는 영원히 아빠를 사랑한다고.


괜찮다고, 괜찮다고.


이별의 순간에도 가족 간의 사랑을 느낍니다.

가족과 함께할 수 있음에 기쁨과 감사를 느낍니다.

슬프고 힘든 일 중에도 마음의 평온함을 기원합니다.



이별의 순간에 만난 미덕


오늘의 미덕 : 사랑, 기뻐함, 감사, 평온함


사랑

나는 사랑으로 충만한 사람입니다.


기뻐함

나는 오늘 내가 받은 선물에 감사합니다.


감사

당신은 당신 주변과 마음속에서

매일 일어나는 작은 일에 대해서

감사할 수 있습니다.


평온함

나는 나의 내면에서 평온함의 미덕을 찾아내어

평온함이 나의 일상을 인도하도록 합니다.


버츄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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