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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굿모닝선샤인 Jan 27. 2022

내가 좋아하는 삶의 공간

공원과 도서관에서 마음을 쉬다



이사를 가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있다. 그 동네의 공원과 도서관을 확인하는 것이다.  집 근처에 이곳들이 가까이 있으면 좋은 집이라고 여긴다. 결혼 후 두 번의 이사를 했다. 지금 사는 곳은 호수공원을 곁에 두고 있다. 도서관도 여럿 지어졌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자신만의 영혼이 숨 쉬는 공간이 필요하다. 내게 도서관, 공원이 그런 장소다. 이사를 마차고 바로 이 장소들을 탐색한다. 내 마음이 편안해지는 장소를 찾아본다. 그렇게 도시에서 나만의 공간을 마련한다.


아이를 키우는데 공원은 중요하다. 유모차를 끌고 갈만한 만만하고 편한 장소다. 아이를 데리고 카페에 가는 것은 때론 보통일이 아니다. 아이가 울거나 떼를 부리면 커피를 마시다가도 나와야 한다. 공원은 부담이 없다. 언제든 공짜로 이용할 수 있다. 아이가 뛰어다닐 수 있다. 몇 바퀴를 돌며 산책을 할 수 있다. 그런 넓은 수용성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첫째가 6개월 무렵, 아침에 일어나면 부지런히 나와 공원 산책을 했다. 그때는 수변공원이 집 바로 옆에 있었다.




공원을 걸었다. 벚꽃나무가 흐드러지게 핀 길을 통과했다. 4월, 아직 얇은 코트를 입어야 하는 찬 바람이 가시지 않은 초봄이었다. 금세 폈다 지는 벚꽃의 찰나를 놓치지 않으려고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무작정 나왔다. 오랜만의 바깥공기가 괜히 마음을 붕 떠오르게 했다. 짙은 검은빛 갈색의 벚꽃나무줄기가 웅장하게 서 있었다. 여린 분홍빛의 꽃잎들이 나비처럼 환하게 간질거리며 흩날리고 있었다.  그 사이를 걷고 또 걸었다. 봄의 물기를 머금은 바람 한줄기가 가슴속을 지나갔다. 박하사탕을 입에 문 듯 속이 시원해지는 느낌이었다.


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고소한 라테 한잔을 테이크 아웃했다. 벤치에 앉아 사람들이 지나가는 것을 바라봤다. 벚꽃잎이 떨어지고 그 자리에 연둣빛 새싹이 돋아다는 것을 관찰했다. 그렇게 나만의 작은 여정이 시작되었다. 날씨가 괜찮으면 매일 길 위에 발자국을 찍었다. 답답한 집안에서 벗어나 공원에서 숨 쉬다 가는 길. 똑같은 일상에서 벗어났다. 아이에게 웃어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공간을 마련해주는 특별한 일이 되었다.



리베카 솔릿은 <걷기의 인문학>에서 이렇게 말했다.


새로운 장소는 새로운 생각, 새로운 가능성이다. 세상을 두루 살피는 일은 마음을 두루 살피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세상을 두루 살피려면 걸어 다녀야 하듯, 마음을 두루 살피려면 걸어 다녀야 한다.




아이 유모차를 밀며 자연과 바깥세상을 살피는 동시에 내 마음을 살필 수 있었다. 집에서는 집안일과 육아에 밀려 내 마음속이 어떤 상태인지 헤아릴 여유가 없었다. 공원은 내 예속된 상태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 사라진 공간이었다. 벤치에 앉았다. 커피 한잔 마시며 아이가 잠든 유모차를 앞뒤로 흔들었다. 바람 한줄기, 햇살 한 줌이 머물렀다. 내 마음에 일광욕을 허락해주는 시간, 그 벤치 위에서 마음을 살짝 내려놓고 허물어진 모서리를 메만졌다.







도서관은 내가 좋아하는 또 다른 장소다. 두 아이 육아와 집안일이 벅차게 나를 짓누르는 날, 아이들 등원을 마치자마자 도서관을 찾는다. 그곳에서는 혼자여도 마음이 외롭지 않았다. 서가에는 수많은 작가들의 영혼이 반짝이며 숨 쉬고 있었다. 표지와 제목을 읽으며 돌아다니는 것이 즐거웠다. 어느 책을 펼치든 그곳엔 작가의 영혼이 내뱉는 호흡이 가득했다. 그 문장들을 따라가다 보면 깊은 날숨을 내 쉴 수 있었다. 위로가 되는 마음의 조각을 발견했다. 가끔 한 문장이 그날 하루를 구원했다.



대학생 시절에도 도서관은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었다. 도서관 앞에 작은 동산 하나가 있었다. 그곳엔 벤치들이 띄엄띄엄 다리를 뿌리처럼 박고 자리했다. 공강 시간이면 그 벤치에 앉아 사람들이 지나가는 것을 구경했다. 혼자서도 친구와도 참 오래 자주 엉덩이를 대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짧은 날엔 거기에서 매점 김밥도 먹었다.


그 벤치 앞에서 어느 날 작은 나무 하나를 발견했다. 나무라고 말하기엔 너무 작고 새싹이라고 하기엔 좀 커다란 10센티 정도의 식물이었다. 인생의 경력이 많은 키가 큰 소나무들 사이로 얼굴을 삐죽 내민 식물이 기특하고 갸륵했다. 나처럼 느껴졌다. 이제 막 기지개를 켜고 뭐라도 해보고 싶어서 부풀어 있던 나처럼 보였다. '씩씩한 나무'라고 이름 지었다. 볼 때마다 그의 성장을 응원했다. 그 작은 나무가 두 손으로 열정적으로 햇살을 빨아들이고 땅속으로는 뿌리를 뻗어내고 있는 것을 보며 나도 부지런히 달려가야겠다는 자극을 받았다. 그 나무는 지금쯤 얼마만큼 자라 얼마나 하늘에 닿아 있을까. 나를 숨쉬기 했던 그 장소들이 문득 그립다. 마음이 머무를 만한 나만의 비밀 벤치가 있어서 마음이 어지러운 날도 버틸 수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공간들은 단순히 장소를 넘어선다. 그곳은 내 시간을 담고 영혼이 머무르는 공간이다. 공간이 주는 힘은 크다. 앉고 싶은 책상을 만들면 그곳에 오래 앉아 머무르고 싶어 진다. 아이 키우느라 바쁘던 몇 해 동안 내 책상은 부재했다. 작년 내 책상과 서재를 만들고 좋아하는 식물과 책들을 올려놨다. 오렌지색 조명도 올려두었다. 아이가 잠들고 천장 등이 꺼지면 내 책상의 작은 조명은 불을 밝힌다. 고요를 밝혀 영혼에 빛을 쐬어준다. 영혼이 밝아진다. 조명이 밝아지는 공간만큼 내 쉴만한 자리가 마련된다. 그 공간에서 읽고 쓰고 꿈을 꾼다. 오늘 하루를 돌아보고 더 좋을 내일을 계획한다.




도시에 조금씩 마련한 내 자리들이 나의 영혼과 꿈을 구성한다. 그 공간들이 나로 하여금 사유의 바다에 빠지게 허락한다. 내 지친 영혼을 속박에서 풀어주고 더 많은 용기를 불어넣어 준다. 정신적인 성장과 내면의 성찰을 도모하는 기반이 된다. 그 공간들의 힘으로 오늘도 읽고 쓰는 여유를 선물 받는다. 오늘 밤, 고요히 내 자리를 밝히는 조명 빛을 응시한다. 여기서 오늘 밤 마음을 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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