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빛나라 오드리 Jan 27. 2022

소금 약간, 된장 한 스푼

글감에 관한 이야기

하얀 대를 가지런히 모아 적당히 자른다. 오목한 접시에 담은 후 파를 쫑쫑 썰어 넉넉히 넣고 계란 두 개를 잘 풀어준다. 한 대 섞어 소금과 후추로 간하고 잘 달궈진 팬에 젓가락으로 적당량을 덜어낸다. 제법 큰 팬에 일곱 개가 가지런히 모양을 갖춘다. 입은 셋인데 일곱 개니 하나는 잘 나눠야겠다.  


늦은 밤 남편이 선물 받아 온 젓갈 상자를 열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낙지젓갈이다. 

우선 청양고추와 고추를 다지고 마늘과 함께 섞는다. 낙지를 조금 작게 자른 후 참기름과 깨를 뿌려 한대 비빈다. 통마늘과 양파도 조금 추가.  압력밥솥이 요란하게 딸랑거린다.


고슬고슬 잘 익은 밥 한 공기에 3일째 먹는 된장찌개, 낙지젓갈, 팽이버섯전. 오늘 아침상이 완성됐다.  혼자 먹는 밥상치곤 진수성찬이다. 하지만 아이들을 생각하니 뭔가 허전하다. 냉장고를 요리조리 살펴 미역무침과 봄동 겉절이를 내놨다. 


신선한 재료로 만든 음식은 특별한 간을 하지 않아도 맛있다. 된장은 끓일수록 맛있다더니 정말이다. 벌써 3일째인데 오늘이 제일 맛있다. 간이 세질까 봐 쌀뜨물을 살짝 넣었는데 오히려 덕분에 부담이 덜어졌다. 뽀얀 두부와 잘 어우러진 버섯들이 감칠맛을 더한다. 오늘은 아침부터 잘 먹었으니 하루가 든든하겠다.



음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선한 재료. 글쓰기에 있어 중요한 건 글감이다. 

세 번째 글쓰기 스터디를 마감하는데 낭독할 글이 써지지 않아 일주일째 고민했다. 그냥 쓰면 될 것을 어찌 쓰지 못하는지. 내가 찾고 싶은 글감을 찾지 못한 걸까? 


남들은 발행조차 못한 임시저장 글이 차고 넘친다는데 나에겐 그런 글도 다섯 손가락 안에 꼽는다. 아침 운동 후 글감에 대해 고민하다 샴푸로 샤워를 했다. 향이 다르다 생각했는데 온 몸을 구석구석 다 닦아낼 때까지 샴푸인 걸 몰랐다. 문득 바디워시든 샴푸든 크게 문제 될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꼭 글감이 있어야지만 글을 쓸 수 있을까? 


신선도가 유지된 야채만큼 몇 년째 잘 묵은 된장도 그 맛은 일품이다. 

글감도 어떻게 잘 익혀 내놓는지에 따라 글이 다른 맛이 난다. 된장찌개 맛을 좀 내는데 10년이 걸렸다. 글을 잘 쓰겠다고 마음먹은 지 이제 2년 차다. 욕심이 컸다.


재료 선택부터 관리, 보관, 다듬는 법 그리고 조리하고 마지막에 내놓기까지 모든 과정이 중요했다. 친정엄마가 알려주는 국간장 약간, 맛술 조금, 후추 살짝은 진짜 고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다. 언젠가 내게도 그런 날이 오겠지. 


맛을 좀 더 봐야겠다. 

일주일째 도서관을 못갔다. 아쉬운데로 글쓰기 스터디에 읽었던 책을 다시 꺼냈다. 내가 밑줄 친 부분부터 색색으로 표시해둔 곳까지. 어쩌면 처음보다 더 깊은 맛을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팽이버섯 식감이 너무 좋다. 요 녀석은 소화가 잘 안 되지만 아이들은 쫄깃한 맛에 좋아한다. 된장에도 버섯이 한 움큼 들어갔는데 버섯 잔치라고 한 소리 듣겠다. 아침을 차리며 점심이 걱정이다. 점심에는 또 뭘 먹이나...

딸그락 거리는 소리에 첫째가 눈을 비비고 나온다. 발그레한 볼이 예쁘다.

9시 20분.

아차차 오늘 둘째 방과 후 줄넘기가 있는 날인데 늦었다.

그래도 따뜻한 밥 한 술을 먹여 보내야지.




매거진의 이전글 마음이 원하는 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