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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실 Jan 29. 2022

마음이 원하는 일

 “내가 웃긴 거 말해줄까?”

 채팅방에 새로운 메시지가 떴다. 고등학교 친구들이 모여 있는 단체 채팅방이다.

 ”이혼 안 한대. 아니 못 한대. 애 때문에 못 한대.”

 대기업에서 차장으로 근무하며, 여섯 살 딸아이를 키우고 있는 친구였다. 그녀는 조금 전 사주 풀이 전화상담을 하고 왔다.

 “남편이 덩치 좀 있죠? 고집도 엄청 셀 텐데.”

 친구는 전화로 들은 이야기를 그대로 전했다. 친구 남편을 떠올렸다. 덩치가 크긴 크다. 사주에 덩치도 나오나? 사주를 봐준 사람은 신내림을 받았다고 했다. 한동안 채팅방은 사주 이야기로 들썩거렸다. 친구가 보내준 명함을 내 휴대폰에 저장했다.     


 나는 스물아홉 살에 결혼했다. 남편은 신혼 생활을 즐기다가 아기를 갖자고 했다. 결혼하고 2년 후, 임신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두 번째 시험관 시술까지 마치고 나서야 임신에 성공했다. 결혼한 지 5년 만이었다. 2017년 1월에 임신을 확인하자마자 육아 휴직을 신청했다. 어렵게 가진 아이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2017년 9월 첫째가 태어났고, 2020년 5월에 둘째가 태어났다. 2022년, 나는 여전히 휴직 중이다.


 두 아이와 부대끼며 살다 보니 어느새 서른아홉 살이다. 작은 입으로 젖을 빨던 아이는 쉴 새 없이 떠드는 말동무가 되었다. ‘아기 안는 법’을 검색하던 초보 엄마는 양팔로 두 아이를 한 번에 안아 올릴 수 있게 되었다. 아이가 배 속에 있을 땐 건강하게만 커 달라고 빌었다. 아이가 건강하게 태어나 할 줄 아는 게 많아지니, 더 대단한 걸 바라는 욕심이 비집고 올라왔다. 그럴 땐 책을 펼쳤다. 어떻게 하면 아이가 행복하게 잘 자랄 수 있을까? 책을 읽으며 깨달았다. 부모가 행복하게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면 되는 거였다.


 ‘지금 행복한가?’

 나에게 물었다. 가족 모두 건강하고 화목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거면 충분히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평소처럼 바쁜 하루를 보낸 어느 날, 공허함이 찾아왔다. 지치고 힘든 마음이 내게 보내는 신호였다. 나는 그동안 좋은 엄마, 좋은 아내,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가족을 위한 게 나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자신을 다그치며, 남에게 인정받기 위해 노력했다.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으려고 애쓴 일, 남을 지나치게 배려한 일을 떠올리며, 그때 내 마음이 어땠을지 헤아려 보았다. 미안했다.   


 거실 한쪽에 나를 위한 공간을 마련했다. 그곳에 내가 좋아하는 그림책이 모여 있다. 울고 싶은 날에는 ‘고래옷장’을 펼친다. 아이에게 화를 내서 마음이 무거운 날에는 ‘고함쟁이 엄마’를 꺼내어 읽는다. ‘괜찮아, 천천히 도마뱀’, ‘나는 기다립니다’와 같이 제목만 보아도 마음이 편해지는 그림책도 있다. 나는 그림책을 읽으며 마음과 대화를 나눈다. 다른 사람 속을 헤아리느라 바빴던 내가 나를 먼저 돌보기 시작했다. 구석진 마음에 볕이 들기 시작했다.      


 휴대폰에 저장해둔 명함을 찾아 메시지를 보냈다. 약속한 시간에 전화가 왔다. ‘최근에 이사 한 번 하셨어요? 남편이랑 인연이 오래됐지요? 사주에 자식이 아들밖에 없네요?’ 어머나! 나는 얼마 전에 이사했고, 남편은 스무 살에 만난 첫사랑이다. 나는 아들만 둘이다. 한참을 듣고 있다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저는 그림책 작가가 되고 싶은데요.”

 누군가에게 처음 하는 이야기였다. 그림책을 읽으며 남몰래 키워온 꿈이다. 나는 글도 그림도 서툴다. 터무니없는 꿈이라고 느껴져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 그녀는 내가 이름을 날려야 하는 팔자라고 했다. 40세 이후로 운이 충분하다며 꼭 해보라고 했다.


 그녀는 내 과거와 현재, 미래를 보았을까? 사실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나는 마음속에 숨겨둔 이야기를 꺼낼 용기가 필요했다. 말을 꺼내며, 수줍지만 간절한 내 마음을 보았다. 그림책 작가, 마음이 원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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