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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가체프 Jan 27. 2022

나는 9페이지, 은유 작가는 19페이지

나는 왜 글을 쓰는가?

  6개월 가까이 뱃속에 품고 있던 생명을 떠나보낸 뒤,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신랑은 출근을 하고 6살 된 딸아이는 유치원을 갔다. 나도 살아야 했다. 살기 위해 글쓰기를 선택했다.

  ‘나는 왜 글을 쓰는가?’ 비슷한 류의 질문을 받을 때면 지금 할 수 있는 일이라 쓴다고 했다. 어릴 적부터 글쓰기를 좋아했고, 꿈이 작가였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글쓰기의 최전선>에서 은유 작가는 19페이지에 걸쳐 ‘왜 쓰는가’를 이야기한다. ‘왜 글쓰기를 좋아하는지, 왜 글을 쓰는지’ 나도 깊이 생각해 볼 시간이 되었다.



<글쓰기의 최전선> 은유 지음







이야기하기


  초등학교 시절, 담임 선생님이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책을 매일 일정 분량 읽고, 독서 일기를 쓰게 했다. 공책 1권을 빼곡히 채운 그 독서 일기장이 참 소중했다. 학급문고 맨 아래 칸 구석에 누가 기증했는지 모를 책이 있었다. 아무도 읽지 않은 티가 나는 <괴수가 사는 혹성>을 읽고 쓴 독후감으로 ‘과학의 달’ 독후감 쓰기 대회에서 상을 받았다.

  그 시절, 나의 독후감 형식은 줄글이 아닌 대화 형식 혹은 편지 형식이었다. 조용하고 말주변이 없던 나는 친한 친구 한둘은 있었지만 관계가 넓지 않았다. 나와는 다른 세상을 살고 있는 책 속 주인공들과 친구가 되어 좋았다. 내가 잘 못하는 말이 아닌 생각할 시간을 가지고 써 내려간 글로 이야기 나눌 수 있어 편안했다.





표현하기


  중고등학생이 되어서도 여전히 부끄러움이 많고 말하기를 싫어했다. 표현하지 못하는 내 마음과 상황을 교과서 속 문학 작품에서 찾았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 윤동주 <별 헤는 밤> 중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

- 이상 <날개> 중




  내 마음을 알아주는 이가 있어 반가웠다. 그들 마음을 훔쳐보는 재미도 있었다.

  ‘나도 쓰다 보면 나를 잘 표현할 수 있을까?’ 감추기만 하던 속내를 드러내고 싶어 시를 쓰기도 했다.



친정집 벽에 걸린 내 시화 작품들





재구성하기


  국어국문학과 밖에 모르던 문학소녀가 공대 여자가 되면서부터 철저히 글쓰기를 외면했다. 언젠가 제대로 배우고 쓰리라 미루고 있었다. 글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다.

  근 20년 만에 비전공자로 글쓰기를 다시 시작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시작한 공부는 실패했고, 남들 둘셋 잘도 낳을 동안 유산만 2번 한 내가 이 세상 병신 같던 그때였다.

  뭐라도 쓰기 위해, 글감을 찾기 위해 지난날 나를 돌아보았다. 오늘 내 모습도 들여다보았다.



  '나 참 열심히 살았구나.'

  ‘나 괜찮은 엄마구나.'

  '지금도 충분하구나.'



  은유 작가가 말한 자기 언어로 삶을 재구성한다는 것이 이런 걸까? 되는 일 없는 실패자가 아니었다. 읽고 싶은 책을 읽고, 쓰고 싶은 글을 쓰는 나는 꿈을 이룬 사람이었다.





살아가기


  메모장에 적힌 아픈 기억들이 수시로 내 마음을 쑤셔댔다. 조각조각 흩어진 아픔들을 한 덩이로 모으고 싶었다. 아픔의 실체를 명확히 하고 감정의 폭풍에 대비하고 싶었다.

  그 누구도 위로해 줄 수 없는 유산의 아픔을 스스로 위로하기 위해 글을 쓴다 했다. 상처와 공존하며 잘 살기 위함이라는 거창한 명목도 붙여 브런치북을 출간했다. 내가 유산한 해에 둘째, 셋째를 출산한 그들의 위로는 불편했다. 내 글을 읽는 새로운 독자들에게 무한 위로를 받고 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브런치북] 그럼에도, 쓰다 보면 살아진다. (brunch.co.kr)







  책을 내고 싶은 생각이 있냐는 지인들의 물음에 에세이 책은 싫다고 손사래 친다. 공개된 블로그와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지만 내 이야기를 책으로 내는 건 또 다른 일이다.

  나인 듯 아닌 듯, 가면을 쓴 소설가가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박완서 작가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같은 자전 소설이든 아니든, 그 시작은 어쨌든 내 이야기 쓰기부터 아닐까? 글쓰기의 본질은 나란 사람을 알아가는 것이라는 말에도 동의한다. 몇 편이나 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올해도 나의 글쓰기, 내 이야기 쓰기는 계속된다.




당신이 가진 이야기는 이 지구 상의 다른 누구도 당신과 똑같은 방식으로 들려줄 수 없다는 점을 기억해라. 당신의 이야기는 중요하다는 사실, 누군가는 그것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라.             

                   P 365 <작가의 시작> 바버라 애버크롬비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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